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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를 배로 실어 나르는 방법은 사실 수소가 아니다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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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수소를 배로 나른다는 말이 이상했다

수소 경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걸리는 지점이 있었다. 수소를 액체로 만들려면 영하 253도까지 냉각해야 하는데, 그런 극저온 상태를 유지한 채 몇 주씩 걸리는 항해를 배로 한다는 게 기술적으로 말이 되나 싶었다. 실제로 찾아보니 이 방식은 현재 선박 건조 기술로는 경제성도 안정성도 떨어져서, 상용화 단계에서는 다른 우회로를 쓴다고 한다. 수소를 그대로 실어 나르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물질로 바꿔서 옮긴다는 얘기였다.

그 다른 물질이 암모니아다.

전기차가 늘면 중동과는 멀어질 줄 알았다

내연기관차가 줄고 전기차가 늘면, 원유 수요도 줄고 자연히 한국과 중동의 관계도 느슨해질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중국산 전기차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런데 여러 분석을 종합해보면 얘기가 반대로 흐른다. 화석연료 축이 사라지는 대신 청정에너지 축이 새로 생기면서, 오히려 두 지역의 결속이 더 단단해질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예상과 결이 다른 방향이라 한 번 더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중동이 가진 두 가지 카드: 햇빛과 빈 유전

중동은 연중 일조량이 압도적이라 태양광 발전에 최적화된 지역이다. 여기에 하나 더, 원유를 다 뽑아낸 폐유전이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CCS)하기에 완벽한 지질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있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뽑아내고(그린수소), 여기에 천연가스 기반 수소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폐유전에 묻어버리는 방식(블루수소)까지 더하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청정수소를 대량 생산할 조건이 갖춰진다.

한국은 이 반대편 조건에 놓여 있다.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아서, 전 국토에 태양광 패널을 깐다 해도 국가 전체 에너지 수요의 15% 정도밖에 감당하지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소 경제를 실제로 굴리려면 해외에서 청정에너지를 대량으로, 안정적으로 들여오는 수밖에 없다. 중동은 만들 수 있는 곳, 한국은 만들지 못하는 곳. 이 비대칭이 그대로 새로운 협력의 이유가 된다.

암모니아로 바꿔 보내고, 다시 수소로 돌려받고

그래서 나온 우회로가 이거다. 중동 현지에서 만든 청정수소를 질소와 결합해 액화 암모니아로 합성한다. 암모니아는 상온에 가까운 조건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서, 기존에 쓰던 일반 화학 운반선으로도 운송이 가능하다. 극저온 유지 설비를 새로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실어 온 암모니아를 한국에 도착시킨 뒤, 정밀 화학 플랜트에서 다시 분해해 수소로 되돌린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건 결국 ‘수소를 옮기기 어려우니 옮기기 쉬운 형태로 바꿨다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우회 전략이다. 비효율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지금 기술 수준에서는 이게 가장 현실적인 답이라는 게 중론이다. 액체수소 운반선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암모니아를 합성·분해하는 화학 공정을 개선하는 쪽이 상용화까지 훨씬 빠르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A blue and green hydrogen production facility with solar panels in a desert landscape, industrial pipelines, wide sho
A blue and green hydrogen production facility with solar panels in a desert landscape, industrial pipelines, wide sho

흐름을 그림으로 보면

글로만 따라가면 단계가 헷갈릴 수 있어서, 공급망 흐름을 그림으로 정리해봤다.

그린수소와 블루수소, 뭐가 다른가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게 그린수소와 블루수소의 구분이다. 그린수소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서 뽑아낸다.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블루수소는 천연가스를 개질해서 수소를 뽑되, 이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내보내지 않고 포집해 땅에 묻는 방식이다. 완전히 무탄소는 아니지만, 기존 화석연료 기반 수소(그레이수소)보다는 훨씬 깨끗하다. 중동이 유리한 지점은 이 둘을 다 가졌다는 데 있다. 태양광으로는 그린수소를, 폐유전을 활용한 CCS로는 블루수소를 동시에 저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어서다.

생산 단가 문제도 짚을 필요가 있다. 현재 청정수소 생산 단가는 화석연료 기반 수소보다 여전히 비싸고, 이 격차가 얼마나 빨리 줄어드느냐가 상용화 속도를 좌우한다. 국내 기업들이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암모니아 장기 수입 계약이나 SK 계열의 수소·암모니아 사업 추진처럼 선제적으로 계약을 걸어두는 이유도, 단가가 내려가기 전에 공급망 자리부터 확보해두려는 움직임으로 읽을 수 있다. 정작 관건은 가격이라는 얘기다.

줄을 서 있는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다

이 시장을 노리는 게 한국뿐인 것도 아니라는 점은 짚어야 공정할 것 같다. 일본도 중동·호주산 청정수소 도입 계약을 여러 건 추진 중이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 역시 UAE·사우디와 그린수소 협력을 서두르고 있다. 다들 자국 내에서 청정에너지를 자급하기 어렵다는 같은 문제를 안고 있어서, 결국 중동의 생산 능력을 두고 여러 나라가 동시에 줄을 서는 모양새다. 한국이 정밀화학 인프라와 기존 신뢰 관계에서 앞서 있다고는 해도, 이 경쟁이 느슨해질 거라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누가 먼저 대규모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항만·플랜트 인프라를 완성하느냐의 속도 싸움에 가까워지고 있다.

수소로 되돌리는 것 말고, 그냥 태우는 방법도 있다

암모니아의 쓰임이 수소 재전환 하나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최근 국내 발전 업계에서 논의되는 방식 중 하나는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석탄과 암모니아를 함께 태우는 ‘혼소’ 발전이다. 암모니아를 굳이 수소로 되돌리지 않고 그대로 연료로 써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인데, 기존 발전 설비를 크게 바꾸지 않고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도기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수소 재전환 인프라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이런 혼소 방식이 암모니아 수요를 먼저 만들어내는 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화석연료 동맹의 다음은

이 구조가 완성되면 한국의 역할은 저가 원유를 고급 석유제품으로 바꾸던 정제 기술에서, 암모니아를 수소로 되돌리는 정밀화학 기술로 옮겨간다. 중동의 역할도 원유 공급에서 태양광·CCS 기반 청정에너지 공급으로 이동한다. 관계의 성격 자체가 ‘원유를 사고파는 동맹’에서 ‘청정에너지 공급망을 함께 운영하는 동맹’으로 바뀌는 셈이다.

다만 이게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큰 규모로 실현될지는 아직 열려 있는 질문이다. 암모니아 운반선 확보 속도, 국내 정밀화학 플랜트의 재전환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그린수소·블루수소 생산 단가가 실제로 얼마나 떨어질지에 따라 이 그림의 완성 시점은 달라질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확신을 갖고 몇 년 안에 어떻게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다만 방향 자체는, 적어도 지금 나와 있는 자료들을 보는 한 꽤 뚜렷해 보인다.

정유 산업의 역사를 놓고 보면, 한국은 원료를 값싸게 들여와 정밀하게 가공해 되파는 능력으로 반세기를 버텨왔다. 수소·암모니아 밸류체인에서 요구되는 능력도 결국 비슷한 종류다. 형태를 바꿔 들여오고, 다시 필요한 형태로 되돌리는 정밀화학 공정. 원유가 수소로, 정제소가 화학 플랜트로 바뀔 뿐, 한국이 잘해왔던 일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건 지금 시점에서의 추측에 가깝고, 실제로 그렇게 흘러갈지는 몇 년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전환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 결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동이 청정수소를 아무리 값싸게 생산해도 받아서 되돌릴 인프라가 없으면 소용없고, 한국이 정밀화학 기술을 아무리 갖춰도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무용하다. 결국 이 미래는 두 지역이 각자의 역할을 계속 맞춰가야만 완성되는 그림이고, 그래서 ‘전기차가 늘면 관계가 식을 것’이라는 처음의 짐작이 틀렸다는 게 지금으로선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참고자료
  1.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 교수 중동 에너지 전환 분석
  2. UAE 정부 2050 에너지 전략 및 탈석유 로드맵
  3. 국제에너지기구(IEA) 수소 및 저탄소 암모니아 보고서
  4.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암모니아 공급망 연구자료
  5. 산업통상자원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6. 한국가스공사 청정수소 발전 및 도입 계획
  7. SK이노베이션·SK가스 암모니아·수소 사업 관련 발표자료
  8. 포스코인터내셔널 암모니아 수입 계약 관련 공시
  9. 한국석유공사 신재생에너지 협력 현황
  10. 사우디 아람코·ADNOC 블루수소·CCS 프로젝트 자료
  11. 한국무역협회 수소·암모니아 무역 통계
  12.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걸프 지역 태양광 잠재량 자료
  13. 한국선급(KR) 암모니아 운반선 기술 기준
  14. 환경부 탄소중립 시나리오 자료
  15. 에너지경제연구원 중동 청정에너지 협력 전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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