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이 사진 한 장을 내보냈다.
남자가 생선 가공공장에서 갓 만든 캐비어를 맛보고 있는, 딱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푸틴이었고, 장소가 쿠릴열도의 이투루프섬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도쿄가 발칵 뒤집혔다. 일본 외무성은 곧바로 주일 러시아대사를 불러 항의했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본 국민의 감정을 해치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2000년 집권한 뒤 26년 동안 단 한 번도 밟지 않았던 땅을, 하필 지금 이 시점에 푸틴이 찾은 이유는 뭘까.
캐비어 시식과 병원 방문, 학교 견학까지 곁들인 이 일정을 그냥 지역 민심 챙기기로만 보기는 어렵다.
크렘린궁이 굳이 이런 일상적 장면을 골라 공개한 것부터가 계산된 연출에 가깝다.
쿠릴열도는 2차대전 막바지에 소련이 점령한 뒤 지금껏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면서도 일본과는 80년째 평화조약조차 맺지 못한 땅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방문은, 얼음이 녹으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 뱃길로 떠오른 북극항로를 놓고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자리를 다투고 있는 시점에 이뤄졌다.
얼핏 별개로 보이는 영토 문제 하나가 왜 물류 전쟁의 신호탄으로 읽히는지, 그 맥락부터 풀어보려 한다.
푸틴이 하필 지금 쿠릴열도에 간 이유는 뭘까
시점이 공교롭다.
푸틴은 쿠릴열도 방문 하루 전 사할린을 찾아 “일본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러시아에 일방적인 제재를 가했다"고 공개 비판했다. 다음날 곧장 분쟁 섬으로 이동해 태평양함대 기함을 시찰하고 군사훈련 보고까지 받았다. 관광이 아니라 메시지였다는 뜻이다.
메시지의 수신자는 일본만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와의 북극 개발 협력을 끊고 북극이사회 7개국이 러시아를 뺀 채 사실상 보이콧을 선언한 지 4년이 지났다. 러시아 입장에서 서방이 등을 돌린 자리를 대신 채워줄 나라는 중국뿐이고, 그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물리적 통로가 바로 북극항로다.
쿠릴열도는 이 항로가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걸쳐 있다. 영유권을 다시 못 박아두는 일이 곧 항로의 동쪽 관문을 지키는 일과 겹치는 셈이다.
일본으로서는 뼈아픈 타이밍이다. 대러 제재를 이어가는 와중에 코앞의 섬에 러시아 대통령이 태평양함대 기함까지 끌고 나타났으니, 실효 지배를 눈으로 확인시켜준 셈이 됐다. 러시아 국가원수급 인사의 쿠릴열도 방문은 이번이 여섯 번째지만, 대통령 신분으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항의는 항의대로 하면서도 정작 항로 경쟁에서는 밀리지 않아야 하는 이중 압박을 일본이 떠안게 된 배경이다.
북극항로가 4국에게 이토록 중요해진 이유는 뭘까
국제금융센터 집계로 북극항로 연간 물동량은 2015년 5만t에서 지난해 340만t으로, 10년 만에 68배로 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수에즈운하를 돌면 40일 걸리는 뱃길이 북극항로로는 20일이면 끝난다. 거리로는 약 40% 단축된다. 게다가 홍해·호르무즈해협처럼 분쟁 위험이 상존하는 구간을 아예 피해 갈 수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이 통항 허가와 쇄빙선 지원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고, 서방 보험사들도 관련 보험 인수를 중단해 접근 자체가 까다로워졌다.
운항 가능 기간도 길지 않다.
중국계 해운사가 처음 투입한 정기 화물선조차 8~9월 두 달만 정상 운항이 가능하고, 7월과 10월은 며칠 남짓밖에 창구가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각국이 뛰어드는 건 계산이 경제성 하나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뱃길을 먼저 깔아두는 나라가 향후 자원, 에너지, 안보 노선까지 함께 가져간다는 게 이 경쟁의 진짜 핵심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북극항로에서 왜 이렇게 밀착하고 있을까
숫자로 보면 밀착의 속도가 뚜렷하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 해운회사 아톰플로트는 올해 상반기 북극항로 화물량이 전년 대비 15% 늘었고, 연간으로는 사상 처음 4천만t을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러시아·중국 간 물동량만 상반기에 5백만t을 돌파했고, 두 나라는 2030년까지 이 수치를 2천만t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기에 8월 말에는 양국이 북극항로 운송 규모 확대와 경쟁력 강화에 합의하며, 홍해·호르무즈를 대체할 노선으로 이 항로를 공식화했다.
9월에는 중국계 해운사 시레전드의 컨테이너선 두바이타워호가 처음으로 북극해를 가로질러 영국까지 3주 만에 도착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극해에서 첫 공동 해빙 관측까지 진행했다. 화물선 한 척, 관측 한 번이 뉴스가 될 만큼 아직은 상징적 단계지만, 두 나라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로는 충분하다.
버지니아대 공급망 전문가 비디아 마니 부교수는 이 정기 운항이 “상업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지만, 중국 입장에서 이건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지정학 계산서로 읽는 프로젝트에 가깝다.
중동을 거치지 않는 유럽행 뱃길 하나를 손에 쥐는 값이라면, 몇 년간의 적자쯤은 감수할 만하다는 계산이다.
미국은 북극항로에서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
미국의 접근은 정반대 방향에서 온다. 협력이 아니라 봉쇄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그린란드 매입 추진, 툴레기지 현대화, 북극항로 통제 의사를 앞세워 북극을 전략질서의 핵심 전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협상을 통한 “쉬운 길"이 아니면 “힘든 길"로 가겠다며 군사적 행동까지 언급했고, 덴마크의 방어력을 조롱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명분은 희토류와 에너지지만, 노리는 실익은 결국 항로다.
그린란드를 쥐면 북반구 뱃길 지도의 절반 가까이를 통제권 안에 넣을 수 있다.
미 국방부는 2024년 북극 전략을 개정해 우주·해양·북극 전장을 통합하고, 나토와 북극사령부·통합미사일방어 체계를 연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중국의 협력이 물류망을 짜는 쪽이라면, 미국은 그 물류망이 자기 손을 거치지 않고는 굴러가지 못하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냉전기부터 이어진 그린란드 툴레기지가 이 구상의 물리적 거점이다.
**조기경보체계가 이미 깔려 있는 땅이라 새로 짓기보다 현대화만 하면 되고, 나토 회원국 병력을 더 끌어오기도 수월하다. **
다만 이 방식은 부작용도 크다. 유럽 우방국들이 영토 편입 위협 자체를 나토 체제를 흔드는 안보 위기로 받아들이면서, 정작 러시아·중국을 견제하자고 만든 압박이 서방 진영 내부의 균열로 번지는 역설이 생기고 있다.
일본은 북극항로 물류전쟁에서 어떤 카드를 쥐고 있을까
일본은 셈법이 가장 복잡한 나라다.
영토 문제로는 러시아와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정작 에너지에서는 러시아에 기대는 모순을 안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일본은 사할린과 야말 지역 천연가스 개발에 민간 기업을 통해 계속 투자하며 안정적으로 가스를 공급받고 있다. 쿠릴열도에는 강하게 항의하면서 옆 동네 가스전에는 돈을 대는 셈이니, 원칙과 실리가 따로 노는 구조다.
항로 개척에서는 속도를 내는 쪽을 택했다. 일본은 2027년 취항 예정인 차세대 쇄빙연구선 ‘미라이Ⅱ’를 앞세워 북극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고, 2018년 이미 해양기본계획에 북극정책을 법적 구속력 있는 과제로 못 박아뒀다.
정책 기조는 “법치 확립과 국제 협력 증진"을 내세우며 양자·다자 접근을 병행하는 쪽이라, 러시아와는 직접 충돌하되 국제무대에서는 규범과 발언권으로 존재감을 넓히는 이중 트랙을 쓴다.
미국의 대러 견제 노선에는 발을 맞추면서, 항로 자체의 실익은 놓치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국은 북극항로 경쟁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의 움직임은 넷 중 가장 늦게 시작됐지만 최근 속도가 눈에 띄게 붙었다.
지난 8월 22일 2,758TEU급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신항을 출항하며 국내 컨테이너선으로는 처음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섰다. 국내 선박이 이 항로를 다시 운항한 것 자체가 2016년 이후 10년 만이다.
예산도 방향이 뚜렷해졌다.
해양수산부는 내년도 예산 5,500억원을 편성해 쇄빙선 건조와 극지 해기사 양성에 쓰기로 했는데, 이는 올해보다 1,041억원(23.4%) 늘어난 규모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등 기술개발 예산은 올해 79억원에서 내년 677억원으로 8배 넘게 뛰었다. 항만과 조선, 보험, 금융, 전문인력까지 엮은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취지의 북극항로종합지원센터 설립도 같이 추진되고 있다.
다만 걸림돌도 만만치 않게 뚜렷하다.
우-러 전쟁 이후 강화된 대러 금융·해운 제재 탓에 한국 선사가 러시아 측과 직접 거래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고, 항로 대부분이 러시아 배타적경제수역에 속해 있어 러시아의 쇄빙선 지원과 통항 허가 없이는 애초에 운항이 불가능하다.
미국과는 안보 공조를, 러시아와는 통항 실무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위치라 어느 한쪽에 올인하는 전략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렵고, 두 축을 동시에 관리하는 실무 능력 자체가 경쟁력이 되는 구조다.
국내 해양 정책 분석에서 짚는 방향은 셋으로 모인다.
하나는 베링해협처럼 항로 관문에 해당하는 구간에서 미국·러시아와 사고 대응, 환경 보호를 위한 협력체를 먼저 만드는 것.
둘은 북극이사회 워킹그룹과 국제해사기구 같은 다자 무대에서 규범 논의를 선점하는 것.
셋은 LNG선·쇄빙선 건조 기술처럼 한국이 이미 우위를 가진 조선 역량을 협상 카드로 쓰는 것이다.
북극해 항로 자체를 놓고 러시아·중국·미국과 정면으로 겨루기보다, 그 항로가 실제로 굴러가는 데 필요한 배와 인프라를 대는 쪽에서 자리를 잡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다.
세 번째 카드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러시아는 쇄빙선을 자체 건조할 여력이 있지만, LNG 운반선이나 내빙 컨테이너선처럼 고난도 특수선박 시장에서는 한국 조선업계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항로 이용국이 아니라 항로용 선박 공급국으로 자리를 잡으면, 어느 나라가 항로 주도권을 쥐든 한국을 거치지 않고는 선단을 채우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대러 견제 노선에 발을 맞추면서도, 정작 러시아·중국이 발주하는 선박 수주까지 놓치지 않는 균형이 관건이다.
4국 북극항로 전략 비교
| 국가 | 핵심 카드 | 최근 동향 |
|---|---|---|
| 러시아 | 로사톰의 통항·쇄빙선 독점 | 2026년 물동량 사상 최고, 4천만t 돌파 전망 |
| 중국 | 폴라 실크로드, 대러 밀착 | 첫 정기 컨테이너선 유럽 도착, 중러 공동 해빙 관측 |
| 미국 | 그린란드 확보, 북극사령부 | 2024년 북극전략 개정, 나토 연계 강화 |
| 일본 | 미라이Ⅱ 쇄빙연구선, 사할린 가스 | 2027년 신규 쇄빙선 취항, 대러 항의와 가스 수입 병행 |
| 한국 | 조선·쇄빙선 건조 역량 | 팬스타 아크로호 시범운항, 해수부 예산 23.4%↑ |
북극항로, 정말 상업적으로 가능할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해빙이 줄어드는 속도와 항로가 실제로 안정화되는 속도는 다른 문제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 집계로 2026년 8월 북극 해빙 면적은 평균 556만㎢로, 위성 관측이 시작된 이래 일곱 번째로 낮은 수준이었다.
얼음이 줄고는 있지만 매년 널뛰듯 변하고 있고, 운항 가능 기간이 안정적으로 늘어나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극지연구소 신형철 소장은 북극서클총회 발표에서 “북극항로는 안전성 예측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유류 유출이나 수색·구조 상황에 대비한 완벽한 비상 계획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쇄빙선 호위, 특수 설계 선박, 비싼 보험료까지 하나씩 얹으면 화물 단가는 생각보다 쉽게 오른다.
그럼에도 온난화 속도 자체는 예측을 앞지르고 있다.
극지연구소 진경 정책협력부 부장은 해수부 포럼에서 “기존에는 2030년경이 되어야 여름철 일반선박이 3~4개월 운항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는데, 이미 3개월가량 운항하고 있다"며 실제 항로 개방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고 설명했다. 지금 속도가 유지되면 2040년에는 일반선 기준 연 6~7개월, 내빙선 기준 연 7~9개월까지 항로 이용이 가능해진다는 전망도 나온다. 비용 문제가 당장 해소되지는 않아도, 이용 가능 기간 자체가 늘어나는 흐름 자체는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미·중·일·러·한 다섯 나라가 동시에 예산과 선박을 쏟아붓는 이유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항로가 완전히 열렸을 때 이미 자리를 잡아둔 나라와, 그제야 뛰어드는 나라의 격차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쿠릴열도의 캐비어 시식 사진 한 장이 그저 지역 민심 챙기기로 끝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고자료
-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1313330004054
-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818010005701
- https://www.fnnews.com/news/202609091638393048
- [이슈 포커스] 중·러 북극항로 경쟁력 강화 합의…홍해·호르무즈 대체 노선 키운다
- [여연브리프] 북극항로 활용 확대와 부산의 역할 - 경제적 가치와 지정학적 리스크의 분석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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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개발에 속도내는 일본
-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427906
- [짤막상식]트럼프의 북극 전략, 그린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