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KTX를 탔다. 옆자리 아저씨가 통화하면서 “이거 기관차가 끄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순간 나도 자신 있게 대답 못 하겠더라. 매일 타는 사람도 정작 이 열차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좀 찾아봤다. 파고들수록 재밌는 게, 우리가 “기차"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완전히 다른 원리로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지하철도, 무궁화호도, KTX도 다 “동차"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있는데, 이 동차라는 게 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이야기가 된다.
동차가 대체 뭔데 기관차랑 다른가
동차(動車)는 객차와 화차를 떼고 붙이지 못한 채 고정 편성으로만 운행되는 철도 차량을 말한다. 좀 더 풀어 말하면, 차량 양 끝 운전실에서 편성 전체의 동력을 한 번에 제어하는 방식이다. 기관차가 앞에서 객차들을 끌고 가는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모든 편성 공간을 수송 능력에 그대로 쓸 수 있어서 효율이 높다는 게 동차의 장점인데, 대신 차량 하나하나의 무게가 가벼운 편이라 고속 운전 시 다소 불안정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고 한다. 재밌는 건 이 개념이 영어로 넘어가면 두 갈래로 갈린다는 거다. Railcar는 단량짜리 레일버스까지 포함하는 넓은 말이고, 두 량 이상 묶인 건 보통 Multiple Unit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동력원 이름을 붙이면 EMU(전기동차)나 DMU(디젤동차) 같은 익숙한 약자가 나온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동차를 나누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뭘 연료로 쓰느냐"고 다른 하나는 “동력을 어디에 몰아넣느냐"다. 이 두 기준을 헷갈리면 계속 헷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료별로 보면: 증기 → 가솔린 → 디젤 → 전기 → 수소
시대순으로 보면 흐름이 꽤 명확하다. 제일 오래된 건 증기동차인데, 증기기관 특성상 소형화가 어려워서 오늘날처럼 차량 하부에 동력장치를 넣는 게 아니라 차량 한 부분에 보일러를 다는 형태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수려선과 수인선에서 시그형 증기동차를 운용한 기록이 있다고 하니, 이게 은근히 오래된 이야기다.
1900년대 들어서는 휘발유와 경유를 쓰는 가솔린 동차, 디젤동차가 개발됐는데, 가솔린 쪽은 엔진 특성상 대형화에 한계가 있어서 수송량이 적은 노선에서만 쓰였다. 여기까지는 사실 지금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좀 있는, 철도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진짜 관심 가질 만한 건 디젤동차부터다. 디젤동차, DMU라고 부르는 이 녀석은 토크컨버터를 사용하는 액압식 동차와, 디젤엔진으로 발전기를 돌려서 만든 전기로 대차의 모터를 돌리는 디젤-전기식 동차 두 갈래로 나뉜다. 이 구분, 사실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나중에 기관차 얘기로 넘어가면 꽤 중요해진다.
한국의 디젤동차 계보를 좀 뒤져보니 이름이 알파벳 조합으로 잔뜩 나온다. NDC, DHC, CDC, RDC, DEC, EEC… 처음엔 이게 다 뭔가 싶었는데, 알고 보면 각자 사연이 있다. 예를 들어 DEC는 Diesel Excellent Car의 약자로, 1979년 철도청이 비전철화 구간의 새마을호 운행을 위해 도입을 결정한 디젤-전기식 동차였다. 형제기인 EEC 전동차와 함께 일본의 485계 전동차를 참고해서 만들어졌고, 심지어 도색까지 일본 특급열차 도색을 약간 변형한 것이었다고 하니 그 시절 기술 도입이 어떤 식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CDC는 좀 더 최근이다. 가장 늦게 들어온 차량이었는데, 이후 DMZ 트레인이나 바다열차 같은 관광열차로 차출되기도 하고, RDC 시범 개조사업 때 무궁화호로 승격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내구연한이 다 되어 전부 퇴역했다고. 이런 차량 하나하나가 나중에 관광열차로, 통근열차로 형태를 바꿔가며 굴러다녔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좀 짠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여기서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디젤 “동차"와 디젤 “기관차"는 이름은 비슷한데 완전히 다른 물건이다. 현재 코레일의 모든 디젤기관차는 디젤 엔진으로 발전기를 돌려 그 전력으로 견인전동기를 구동하는 디젤전기기관차뿐이고, 순수 디젤기관차는 이미 다 폐차됐다. 반면 동차 쪽에서는 CDC, RDC가 순수 디젤형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동력집중식까지 넓혀 보면 새마을호 PP 차량으로 불리던 DHC의 앞뒤 동력차가 한국에서 정규 운행했던 유일한 순수 기계식 디젤기관차였다고 한다. 이름만 봐서는 절대 구분 안 가는 부분인데, 결국 “동력을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서 어디로 보내느냐"가 핵심이다.
그래서 KTX는 뭔가 — 동력집중식과 동력분산식
이 지점에서 아까 그 아저씨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KTX는 기관차가 끄는 걸까, 아닐까.
정답은 “차종에 따라 다르다"인데, 이게 재밌는 부분이다. 기존 KTX와 KTX-산천은 동력집중식 열차로, 열차 전체의 동력을 선두 혹은 후미의 기관차/동차에만 의존한다. 앞뒤에만 동력차가 붙어서 끌고 미는 방식이라, 사실상 기관차 견인식과 비슷한 구조인 셈이다.
그런데 KTX-이음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동력분산식 열차는 동력을 생성하는 견인전동기가 열차 전체에 걸쳐 골고루 분산되어 있어서, 가감속 성능이 동력집중식보다 훨씬 뛰어나고 별도 기관차가 필요 없어 더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실제로 차량 8량이 1대 편성인 EMU-320은 총 515석을 확보했는데, 길이가 비슷한 10량짜리 KTX-산천의 좌석수 379석보다 36% 더 많다. 엔진칸이 따로 필요 없으니 그 공간을 다 승객석으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왜 한국이 유독 동력분산식으로 넘어가고 있는지도 궁금해서 좀 더 찾아봤는데, 정차역이 많아서 가감속을 자주 해야 하는 노선일수록 이 방식의 장점이 확실히 드러나고, 좁은 지역에 인구밀도가 높아 정차역 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한국 국토 특성상 동력분산식이 더 적절한 선택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유럽처럼 역간 거리가 긴 노선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 철도 환경에서는 이쪽이 실리적으로 맞는다는 뜻인 것 같다.
숫자로 보면 더 체감이 될 텐데, EMU-260과 EMU-320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스펙을 담고 있다. EMU라는 시리즈 명칭 뒤에 붙는 숫자는 영업속도를 뜻하는데, 현재 강릉선을 운영 중인 EMU-260은 영업속도가 260km/h, 신규 도입된 EMU-320은 320km/h다. 같은 동력분산식인 KTX-이음과 비교하면 260km/h급이었던 속도가 EMU-320에서 320km/h로 높아지는 셈이고, 동력분산식 고속열차로는 프랑스,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 성공 사례라고 한다. 이 열차, 나중에 ‘KTX-청룡’이라는 이름으로 상용화됐다.
솔직히 나는 이 부분에서 살짝 의외라고 느꼈다. 한국 철도 기술이 세계 4번째 수준이라는 얘기를 뉴스에서 스치듯 본 적은 있는데, 그게 정확히 “동력분산식 고속열차"라는 구체적인 카테고리 안에서의 순위라는 건 이번에 찾아보고서야 알았다.
세대교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게 그냥 신차 몇 대 더 뽑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KTX 총 46편성은 모두 30년 수명의 절반쯤에 다가간 상태이고, KTX-산천도 총 24편성 중 6편성이 운행 15년을 채워 반수명 정비에 들어갔다. 30년 내구연한을 채운 고속철도는 추가 연장 없이 폐차되는데, 코레일 관계자는 기존 동력집중식과 함께 운행하다가 차례로 수명이 다하는 대로 점차 EMU 비중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즉 지금 우리가 KTX를 탈 때 동력집중식을 탈지 동력분산식을 탈지는 순전히 어떤 노선, 어떤 시간대에 걸리느냐의 문제인 거고, 이 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분산식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개인적으로는 이 세대교체가 다 끝나면 한국 고속철도 풍경 자체가 지금과는 꽤 달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다음은 뭘까 — 수소와 배터리 얘기
여기까지는 그나마 익숙한 얘기고, 최근 자료를 찾다 보니 흥미로운 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수소동차다.
현대로템은 차세대 부산형 급행철도 사업에 수소동차와 수소동력차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데, 부산권 급행 전동차에 수소철도 차량을 적용하는 방안을 놓고 동력분산식과 동력집중식 두 방식을 모두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재밌는 건 이 용어 구분인데, 수소동차는 각 차량에 동력원을 분산 배치하는 방식이고, 수소동력차는 별도 동력차가 객차를 견인하는 구조라고 회사 측이 설명했다. 앞서 말한 EMU와 기관차 견인식 구도가 그대로 수소 버전으로 옮겨간 셈이다.
각각 장점도 다르다고 하는데, 동력분산식인 수소동차는 승객 공간 확보에 유리하고, 동력집중식인 수소동력차는 발전차와 수소탱크 차량을 따로 붙이는 구조가 가능해서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결국 이것도 “공간이냐 항속거리냐"의 트레이드오프 문제인 셈이고, 어느 쪽이 맞는지는 노선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 확답하긴 아직 이르지 않을까 싶다.
수소 쪽 계획은 생각보다 구체적이다. 현대로템은 2030년까지 수소전기동차, 수소전기 기관차, 수소 고속전철까지 전 차종에 수소철도 차량 기술을 적용해 상용화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고, 실제로 수소전기동력차와 수소전기동차의 디자인을 공개하면서 ‘H’ 형태의 측면 그래픽을 처음 도입했다고 한다. 최근 국토교통기술대전에서는 수소연료전지를 동력원으로 쓰는 미래형 기관차 모델과, 시속 370km급 차세대 고속열차 플랫폼 ‘EMU-370’도 함께 소개됐다.
일본 쪽 상황도 참고할 만한데, 2025년 국토교통성의 친환경 열차 정책에 따르면 JR그룹의 액압식 디젤동차들을 순차적으로 퇴출시킨 뒤 하이브리드 디젤동차나 수소동차, 충전식 무가선 전동차 등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은 상황이 좀 다른데, 지자체가 전철화할 예산이 없을 경우 기존 통근열차의 기관차·객차·운전객차 조합이 디젤동차로 대체되는 일이 많다는데, 가감속 성능이 객차보다 좋은 동차가 배차간격 축소 같은 서비스 개선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탈디젤” 흐름이라도 나라마다 인프라 사정에 따라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게 흥미롭다.
매일 타는 지하철도 사실 이 계보 안에 있다
여기까지 오면 좀 거창한 얘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사실 제일 익숙한 동차는 매일 타는 지하철이다. 전동차는 전차선에서 집전장치를 통해 전기를 받아, 제어장치로 견인전동기를 돌려 동력을 발생시키는 차량을 말하는데, 일부는 전기자동차처럼 대용량 배터리나 수소연료전지를 전원으로 쓰는 수소열차도 전동차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전동차"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배터리·수소 버전까지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는 얘기.
실제로 국내 전동차 발주도 계속 진행 중인데, 코레일이 광역철도 전동차 156칸 사업을 발주했고, 교·직류 겸용 1호선 전동차 140칸, 교류 전용 수인분당선 전동차 12칸, 서해선 전동차 4칸을 제작·납품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타는 그 열차들이, 사실은 지금도 계속 새 모델로 교체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산업이라는 거다.
솔직히 이 정도 정리하고 나니, 처음에 “KTX가 기관차냐 아니냐"는 질문 자체가 얼마나 단순화된 질문이었는지 알겠다. 동력집중식이냐 분산식이냐, 디젤이냐 전기냐 수소냐, 게다가 같은 이름 안에서도 세대가 갈리고 노선별로 다른 차종이 굴러다닌다. 정리하다 보니 오히려 궁금한 게 늘었는데 — 예를 들어 수소동차가 실제로 부산 급행철도에 투입되면 항속거리가 어느 정도 나올지, 그 답은 아직 어디서도 못 찾았다. 나중에 실제로 발주가 나면 그때 다시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참고자료
- 위키백과 - 전기 동력분산식 열차
- 나무위키 - 전동차
- 나무위키 - 디젤동차
- 나무위키 - 디젤 기관차
- 나무위키 - DEC 디젤동차
- 나무위키 - CDC 디젤동차
- 나무위키 - 동차
- 리브레위키 - 동차
- 현대로템 블로그 - EMU-320 소개
- 조선비즈 - EMU-320 시승기
- 위키백과 - KTX-청룡
- 나무위키 - KTX-이음
- 뉴데일리경제 - KTX 3세대 EMU 세대교체
- 교통뉴스 - EMU-320 출고 기념식
- 중앙이코노미뉴스 - 국토교통기술대전 수소철도
- 이코노미톡뉴스 - 수소열차와 EMU-370
- 전자신문 - 현대로템 수소철도 상장기업분석
- 철도경제신문 - 코레일 전동차 156칸 입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