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냉장고에서 유통기한 살짝 지난 포도주스를 발견했다. 아까워서 상온에 며칠 더 뒀더니 병뚜껑이 살짝 부풀어 있었다. 순간 “이거 술 되는 거 아니야?” 싶었는데, 찾아보니 진짜 그럴 수 있다고 한다. 밀봉된 당분 음료를 상온에 오래 두면 공기 중 야생 효모가 들어가 자연 발효가 일어날 수 있다더라. 물론 위생상 추천할 일은 아니지만, 그 순간 궁금해졌다. 대체 효모가 뭘 어떻게 하길래 당분이 알콜로 바뀌는 걸까. 그리고 아무 당분이나 넣으면 다 술이 되는 걸까.
당분을 알콜로 바꾸는 건 사실 효모의 숨쉬기 방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발효는 효모 입장에서 대단한 화학 마법이 아니라 그냥 “산소 없이 숨쉬는 방식"이다. 사람은 산소로 포도당을 태워 에너지를 얻지만, 효모는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놓이면 포도당을 완전히 태우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분해한다. 그 부산물이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다. 에탄올 발효는 효모 같은 혐기성 세균이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놓일 때 하는 대사과정으로, 포도당 1몰이 분해될 때 에탄올 2몰과 이산화탄소 2몰이 나온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발효는 애초에 효모가 “술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효모 입장에서 에탄올은 그냥 대사 후 남는 노폐물이다. 효모가 에탄올 속에서도 살 수 있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단세포 생물인 효모는 자기가 만든 에탄올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에탄올은 효모에게 엄청난 독성 물질이고, 양조 과정에 투입된 효모는 끝내 전부 죽는다. 죽은 효모는 나중에 술지게미로 걸러지고. 자기가 살려고 한 행동이 자기를 죽이는 셈인데, 이 부분이 알면 알수록 좀 얄궂다.
발효로 나오는 기체가 바로 그 거품이다. 포도당 한 분자당 에탄올 두 분자와 탄산가스 두 분자가 나오는데, 이 탄산가스가 기포와 거품을 만든다. 기포가 멈춘다는 건 알코올 농도가 최대치에 도달해서 효모의 생육이 멈췄거나, 효모가 쓸 포도당이 다 떨어졌다는 뜻이다. 술독 위에 뽀글뽀글 올라오는 거품이 사실 효모가 열심히 숨 쉬고 있다는 증거였던 거다.
왜 원재료에 한계가 있을까 — 당이 있어야 시작이 된다
여기서 “그럼 아무 재료나 발효시키면 술이 되나”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효모가 먹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당분이다. 문제는 세상 재료 중에 당분을 그냥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당분이 아니라 녹말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는 점이다.
과일이나 꿀은 이미 당분 상태라 효모를 넣으면 바로 발효가 시작된다. 포도주는 포도에 있는 천연 당분을 발효시켜 만들고, 사과주와 페리는 각각 사과와 배의 천연 당분을 발효시켜 만든다. 봉밀주(벌꿀술)도 벌꿀에 있는 천연 당분을 그대로 발효시킨 것이다. 재료만 있으면 효모가 알아서 일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곡식이다. 쌀이나 보리 같은 곡물은 당분이 아니라 녹말을 갖고 있어서 효모가 바로 손을 댈 수가 없다. 곡식은 당이 아니라 당의 결합체인 녹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발효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곡물주는 항상 한 단계가 더 필요하다. 맥주, 위스키, 보드카는 맥아에 있는 아밀레이스가 곡물의 녹말을 먼저 당으로 전환시킨 다음에야 그 당분을 발효시켜 만든다. 한국 전통주로 치면 누룩곰팡이가 이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고.
그러니까 “원재료의 한계"라는 게 있긴 있는데, 그건 “당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한계에 가깝다. 당이든 녹말이든 당으로 바뀔 수만 있으면 술이 된다는 뜻이라, 사실상 지구상 거의 모든 탄수화물 재료가 후보군이다. 우유도 예외가 아니다. 우유의 유당을 발효시켜 만드는 마유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효모를 넣은 적도 없는데 왜 포도는 저절로 술이 될까
여기서 또 하나 궁금해지는 게 있다. 옛날 사람들은 효모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을 텐데 어떻게 포도주를 만들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한데, 효모가 애초에 포도 껍질에 붙어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도껍질에 야생 효모가 다닥다닥 붙어있기 때문에 잘 익은 포도를 으깨서 놓아두기만 해도 포도의 당분을 이용해 저절로 발효가 일어난다. 이게 바로 포도주의 시초라고 한다. 굳이 효모를 따로 넣을 필요가 없었던 거다. 건포도도 마찬가지라, 건포도에도 효모가 붙어있어서 이를 이용한 천연 발효 빵을 만드는 방법이 있고, 10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빵을 만들 때 이런 자연 발효 과정을 거쳤다.
재밌는 건 라거 맥주에 쓰이는 효모의 뿌리를 추적한 연구다. 2011년 한 연구는 라거 효모가 남미 파타고니아에서 채집된 야생 효모의 게놈과 99% 일치한다는 결과를 냈다. 추운 지역에서 발효하는 능력을 가진 이 야생 효모가 유럽으로 건너와 기존 에일 효모와 만나 지금의 라거 효모가 됐다는 추정이다. 즉 지금 우리가 마시는 맥주의 효모조차 어느 순간 야생에서 우연히 발견돼 길들여진 균주라는 얘기다. 사람이 발효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한참 전부터 효모는 이미 자연 속에서 이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고, 인간은 그저 그 결과물이 맛있다는 걸 알아채고 반복했을 뿐이다.
그럼 발효와 부패는 뭐가 다른가 싶어질 수도 있다. 사실 미생물 입장에서는 둘 다 같은 종류의 대사 작용이라, 화학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사람에게 이로우면 발효, 쓸모없거나 해가 되면 부패라는 게 이 둘의 실질적인 구분이다. 즉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설명을 보고 나니, 술이라는 것도 “우연히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일어난 미생물의 활동"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최초의 술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유로도 술을 만든다는 게 진짜일까 — 아이락이 보여주는 재료의 확장성
몽골의 아이락(마유주)이 이 얘기를 하기에 딱 좋은 사례다. 아이락은 말젖뿐 아니라 야크, 소 등의 젖으로도 만들고, 심지어 고비 지역에서는 낙타의 젖으로도 만든다. 산악지대가 많은 서부에서는 야크젖으로, 사막 지역에서는 낙타젖으로 — 그 지역에서 가장 흔한 젖당 공급원을 그대로 쓴 거다. 재료가 바뀌어도 원리는 똑같다. 젖 속 유당을 미생물이 분해해서 알콜과 산이 함께 나오는 구조.
다만 이렇게 만든 술은 도수가 낮다. 유당 발효는 곡물이나 과일 발효만큼 효율이 좋지 않아서다. 몽골 유목민들의 마유주는 알코올 함량이 3% 이하로 낮은 편이고 맛은 시큼하다. 이걸 증류하면 얘기가 또 달라지는데, 아이락을 증류시키면 알콜 도수가 38도 정도 되는 아르히라는 술이 만들어지고, 이건 몽골리안 보드카로 불린다. 발효로 낼 수 있는 도수엔 한계가 있지만, 증류라는 다음 단계가 그 한계를 다시 밀어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는 “재료의 한계"보다 “온도와 시간의 한계"가 더 흥미로웠다. 같은 재료, 같은 미생물을 쓰고도 온도 하나로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게.
발효주가 18도를 못 넘는 이유 — 효모도 제 손으로 만든 술에 취해 죽는다
여기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왜 발효만으로는 도수에 한계가 있을까.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효모 자신에게 있다. 효모가 만드는 에탄올 자체가 효모에게 독이기 때문에, 농도가 올라갈수록 효모가 죽어나간다.
에탄올의 독성 때문에 효모가 죽고, 도수가 1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서 효모의 생장이 느려지고 죽는 효모가 늘어난다. 이런 이유로 발효주의 알콜 도수는 보통 18도를 넘지 못한다. 실제로 시판 고알콜 맥주 중에는 20%를 훌쩍 넘는 것도 있긴 한데, 보통 알콜 함량 18% 정도 되면 대부분의 효모균이 술 속 알콜 때문에 사멸한다. 그럼에도 40%, 심지어 60%대에 이르는 맥주가 존재하는데, 이런 고알콜 맥주는 위스키나 보드카와는 다른 방식으로 도수를 끌어올린다고 한다. 열로 증류하는 대신 다른 농축 기법을 쓴다는 건데, 이 부분은 양조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있는 것 같아 여기서 더 파고들지는 않으려 한다.
증류주는 이 한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넘는다. 발효로 도수를 못 올리면, 그냥 발효가 끝난 술에서 알콜만 물리적으로 뽑아내는 거다. 물의 끓는점은 100도, 에탄올의 끓는점은 78도라서 혼합액을 가열하면 에탄올이 먼저 기화한다. 이 기체를 모아 냉각시키면 원래 발효주보다 도수가 높은 술이 된다. 위스키, 보드카, 브랜디가 다 이 원리다. 효모의 생물학적 한계를 화학·물리로 우회한 셈이랄까.
발효 온도도 결과물에 생각보다 크게 관여한다.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시킬수록 효모도 오래 버티고 술맛도 더 좋아진다고 하던데, 이건 청주 같은 고급술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다. 청주 같은 고급술일수록 낮은 온도(15도 정도)에서 발효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데, 낮은 온도에서는 휘발성 방향물질이 남아있어서 술의 풍미가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연구에서도 발효 온도가 올라갈수록 에탄올 생성 속도는 빨라지지만, 최대 세포 농도와 에탄올 농도는 오히려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빨리 만들면 양이 줄고, 천천히 만들면 양도 늘고 맛도 산다는 거니 — 급할수록 손해라는 원칙이 여기서도 통하는 셈이다.
맛을 가르는 건 재료보다 발효 조건 쪽이 아닐까 싶다
여기까지 오니 처음 궁금했던 “재료의 한계"는 사실 별로 한계가 아니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당분이든 녹말이든 유당이든, 미생물이 분해할 탄수화물만 있으면 이론적으로는 다 술이 된다. 진짜 변수는 오히려 온도, 시간, 어떤 미생물 균주를 쓰느냐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이건 확신을 갖고 하는 말은 아니고, 발효 화학이나 미생물학을 깊게 파고든 전문가라면 다른 각도에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적어도 “발효주는 왜 18도를 못 넘을까"라는 질문에는 비교적 명쾌한 답이 있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효모가 자기 노폐물에 취해 죽는다는, 좀 서글프면서도 웃긴 이유.
그 포도주스는 결국 마시지 않고 버렸다. 궁금증은 풀렸지만 위생은 별개 문제니까.
참고자료
- 위키백과, 에탄올 발효
- 위키백과, 발효
- 나무위키, 발효
- 나무위키, 아이락
- 위키백과, 마유주
- 부산일보, 미생물의 마법-술 만드는 효모
- 서울시립대신문, 술 어디까지 알고 있니
- 브런치, 맥주는 몇 도까지 만들 수 있을까
- 한국연구재단 학술논문, 알콜발효에서 효모의 에탄올 내성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