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을 따는 순간 ‘치익’ 소리가 난다. 그 소리, 사실은 탈출이다. 몇 초 전까지 액체 속에 강제로 갇혀 있던 이산화탄소 분자들이 갑자기 자유의 몸이 되는 소리다.
우리는 보통 여기까지만 생각한다. 마신다, 트림한다, 끝. 하지만 캔 하나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는 보통 2~3g. 트림 한 번으로 다 나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탄산음료 안에서 이산화탄소는 원래 갇혀 있었다
음료 회사는 고압·저온 상태에서 이산화탄소를 액체에 강제로 녹인다. 기체는 압력이 높고 온도가 낮을수록 액체에 더 잘 녹기 때문이다. 병뚜껑을 여는 순간 압력이 풀리고, 몸속에 들어가면 체온이 그 위에 더해진다. 사람 몸의 체온은 36.5도 정도라서 음료 안의 탄산가스는 이 온도 앞에서 급격히 용해도를 잃고 다시 기체로 돌아간다.
문제는 이 재기화가 위장이라는, 원래 액체를 소화시키라고 만들어진 좁은 공간 안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갇혀 있던 기체가 한꺼번에 부피를 불리면 위벽이 늘어난다. 위로 들어간 이산화탄소가 빠르게 다시 기체가 되면서 위를 팽창시키고, 몸은 그 팽창에 대한 반작용으로 트림을 만든다.
여기서부터 이산화탄소의 세 갈래 길이 갈라진다.
첫 번째 길: 트림, 가장 빠르고 가장 눈에 띄는 출구
위가 부풀면 몸은 압력을 빼려 한다. 식도 하부의 괄약근이 열리고, 기체가 다시 입 쪽으로 밀려 올라온다. 이게 트림이다. 물을 마셔도 트림이 나오지만 그건 대개 삼킬 때 같이 들어간 공기 때문이고, 탄산음료의 트림은 결이 다르다. 애초에 액체 속에 녹아 있던 기체 자체가 위에서 폭발적으로 빠져나오는 트림이다.
이 트림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착각을 하나 한다.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소화가 잘된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탄산음료가 주는 건 탄산가스가 일시적으로 유발하는 트림일 뿐, 실제 소화 작용과는 무관하다. 소화는 효소가 음식을 분해하는 작업이고, 트림은 그저 압력을 뺀 것뿐이다. 체했을 때 마시는 탄산음료 한 잔이 주는 안도감은, 사실 위산과 아무 상관 없는 기체역학의 부산물이다.
두 번째 길: 소화되지 않은 채로 아래로, 방귀가 되는 몫
트림이 위에서 빠져나가는 빠른 탈출구라면, 시간을 놓친 기체는 다른 경로를 탄다. 위에서 다 빠져나가지 못한 이산화탄소 일부는 장까지 밀려 내려간다. 장에서는 다시 위로 올라올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결국 아래쪽 출구, 방귀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탄산음료를 급하게 마시거나 자세를 바꿔가며 마시는 사람일수록 이 몫이 커진다. 트림으로 미처 못 뺀 압력이 장을 지나가며 복부 팽만감을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탄산음료를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설사나 복통 같은 소화기계 이상이 나타날 수 있고, 위장이 약하거나 탄산에 민감한 사람은 적은 양으로도 속쓰림을 겪는다.
세 번째 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혈액 속으로의 잠입
트림도 방귀도 아닌, 가장 조용한 경로가 있다. 위와 장의 점막은 기체 분자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얇다. 미처 재기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액체에 녹은 채로 남아 있던 이산화탄소 일부는 이 점막을 통해 그대로 혈관으로 스며든다.
일단 혈액에 들어간 이산화탄소는 몸 전체를 이미 순환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즉 세포호흡의 대사 부산물과 합쳐진다. 어차피 우리 혈액은 몸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이산화탄소를 폐까지 실어 나르는 일을 24시간 하고 있다. 탄산음료에서 흡수된 몫은 그 흐름에 조용히 편승해서, 결국 숨을 내쉴 때 폐를 통해 빠져나간다. 트림처럼 요란하지도, 방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냥 매 순간의 날숨 속에 한 톨씩 섞여 나갈 뿐이다.
그런데 첫 번째 문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까지는 세 경로가 모두 열려 있다는 전제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중 가장 크고 가장 빠른 문, 트림이라는 문 자체가 잠겨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역행성 윤상인두근 기능장애, 의학 용어로 R-CPD라 불리는 질환이다. 음식을 삼킬 때는 상부 식도 괄약근이 열려 음식이 내려가지만, 트림이 나오려면 이 괄약근이 반대 방향으로 다시 열리는 역행 작용을 거쳐야 한다. R-CPD를 겪는 사람은 이 괄약근이 압력을 감지하고도 열리지 않는다. 위와 식도에 기체가 아무리 차도, 나가는 문이 물리적으로 안 열리는 것이다.
이들에게 탄산음료의 이산화탄소는 첫 번째 경로를 완전히 봉쇄당한 채 시작한다. 트림으로 빠질 압력이 고스란히 몸 안에 남는다. 트림을 하지 못하면 위장에 공기나 가스가 차 복부 팽만감, 더부룩함, 가슴 통증, 잦은 방귀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남는 몫이 고스란히 두 번째 문, 장과 방귀 쪽으로 밀려가는 셈이다. 방귀가 유난히 잦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질환은 미국 바스티안 음성 연구소 소장 로버트 바스티안이 트림을 못하는 환자들을 조사하면서 2019년에 처음 이름을 붙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사람들은 그냥 “트림을 잘 안 하는 체질"로 여겨졌다. 병이라는 인식조차 없어서, 불편을 겪으면서도 병원을 찾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에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백 명이 활동할 정도로 존재는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치료법은 역설적이다. 안 열리는 근육을 억지로 열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근육에 보톡스를 놓아 아예 힘을 빼버린다. 그래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근육 일부를 절개하는 시술까지 간다. 트림을 하기 위해 근육 마비 시술을 받는 셈이다.
이 사람들에게 탄산음료 한 캔은 우리와 똑같은 화학이 벌어지는데도 완전히 다른 몸의 경험이 된다. 같은 이산화탄소, 같은 위장, 다만 문 하나가 잠겨 있을 뿐인데, 그 하나로 배출 경로 전체의 그림이 바뀐다. 다음에 트림이 시원하게 나올 때, 그 흔한 반사작용이 누군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라는 걸 떠올려볼 만하다.
참고: 이 글은 일반적인 생리 현상 설명을 위한 것으로, 소화기 증상이 반복되거나 트림 불능으로 불편함을 겪고 있다면 이비인후과나 소화기내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정확하다.
참고자료
- 농민신문, '더부룩할 땐 콜라 한잔'…정말 소화에 도움이 될까, 2025.02.04
- 한국화학연구원 화학기자단, 탄산 음료를 마시면 왜 트림이나 방귀가 나올까?, 2021.09.01
- 아하, 탄산음료를 마시면 트림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2022.02.15
- 다음뉴스, '트림 안 나오는 병 있다?' 환자 늘고 있다는데… 의심 증상은?, 2026
- 다음뉴스, '사소한 문제 아냐' 트림 못 하는 사람이 겪는 불편함, 뭘까?, 2026.01.27
- 대한이비인후과학회지, 트림을 못해 내원한 환자들의 진단과 보툴리늄 독소를 이용한 치료 2예
- 코메디닷컴, '목을 찌르는 듯한 고통'...평생 트림 못한 소녀, 왜?, 2024.06.04
- Bastian RW, Smithson ML. Retrograde Cricopharyngeus Dysfunction,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