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도둑맞은 음료부터 제로 칼로리 전쟁까지, 두 거인의 라이벌 열전
1992년 봄, 전국 슈퍼마켓과 동네 구멍가게 매대에 낯선 초록색 캔 하나가 깔리기 시작했다.
이름은 ‘스프린트’. 그런데 이 캔의 정체는 사실 그해 한국 시장에 처음 상륙할 예정이던 코카콜라의 ‘스프라이트’를 정조준한 미끼 상품이었다. 진짜가 가게에 놓이기도 전에 소비자들은 이 가짜를 스프라이트로 착각하고 맛본 뒤 “별거 아니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세계 음료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이 기습 작전 하나로, 글로벌 공룡 코카콜라는 한국 시장에서 한동안 발을 붙이지 못했다.
이 첩보전 같은 사건의 뿌리를 캐려면 1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작은 ‘사이다’라는 이름 자체가 애초에 우리가 아는 그 음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이다라는 이름은 원래 술이었다
유럽에서 ‘사이다(cider)‘는 사과를 발효시킨 황금빛 술을 뜻한다. ‘독한 술’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갈라져 나온 단어다.
이 단어가 지금 우리가 마시는 투명한 탄산음료를 가리키게 된 건 19세기 중반, 서구 문물이 일본을 거쳐 동아시아로 들어오던 무렵의 일이다.
일본 요코하마의 한 영국 상인이 탄산수에 향료를 섞어 ‘샴페인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고, 이 말이 줄어들어 ‘사이다(サイダー)‘로 정착했고, 이 새 의미의 사이다가 일본을 거쳐 한반도로 건너왔다. 우리가 마시는 사이다라는 이름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서구 문물이 일본을 경유해 유입되던 시대의 흔적인 셈이다.
인천에서 한국 최초의 사이다가 태어났다
때는 1905년, 개항 도시 인천. 히라야마 마츠타로라는 일본인 사업가가 ‘인천탄산수제조소’를 세우고 한반도 최초의 사이다인 ‘성인표(星印標) 사이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라벨 중앙의 별 모양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별표사이다’라 불렀다.
톡 쏘는 달콤함과 청량감으로 별표사이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경인선 기차 전면에 광고가 실릴 정도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별’의 유산은 1937년 경인합동음료의 ‘스타사이다(Star Cider)‘로 이어졌고,
코미디언 서영춘 선생의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실향민 7명이 만든 ‘국민 사이다’, 칠성사이다
해방과 분단의 아픔이 교차하던 1949년 서울. 고향을 북에 둔 실향민 7명이 ‘우리 손으로 사이다를 만들자’며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를 세웠다. 최·박·장·주·정·김·우, 성씨가 모두 다른 7명이었다는 점에 착안해 ‘일곱 개의 성’이라는 뜻의 ‘칠성(七星)‘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천에서 시작된 별(星)의 상징이 일곱 개의 별(七星)로 이어진 셈이다.
1950년 5월 9일 첫 제품이 나왔지만, 한 달여 만에 6.25전쟁으로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칠성사이다는 이후 목욕탕의 시원함, 명절의 청량함, 체했을 때 찾는 소화제 같은 존재로 한국인의 삶에 스며들었다. (2015년 기준 국내 사이다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했다기록만 봐도, ‘국민 사이다’라는 별칭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스프라이트는 처음부터 코카콜라의 전략 상품이었다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콜라 전쟁이 한창이었다. 코카콜라는 레몬-라임 소다 시장의 강자 ‘7 Up’을 견제할 무기가 필요했고, 그 답은 1959년 서독에서 개발된 ‘투명한 레몬 환타(Fanta Klare Zitrone)‘였다. 이 음료는 1961년 물이나 공기의 요정을 뜻하는 ‘스프라이트(Sprite)‘라는 이름으로 미국 시장에 상륙했다.
칠성사이다가 실향민의 재기 염원이 담긴** ‘창조’**였다면,
스프라이트는 시장 쟁탈을 위한 치밀한 **‘기업 전략’**의 산물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힙합, 농구 같은 하위문화와 손잡고 “Obey Your Thirst(네 갈증에 복종하라)“라는 도발적인 슬로건을 앞세워 순식간에 ‘쿨함’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92년, 스프라이트를 먼저 저격한 ‘스프린트’ 작전
1992년, 아시아 시장을 정복한 스프라이트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국민 사이다’ 칠성사이다를 쥐고 있던 롯데칠성은 세계 음료 전쟁사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이름, 디자인, 맛까지 스프라이트를 빼닮은 모방품 ‘스프린트(Sprint)‘를 먼저 출시한 것이다.
업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롯데칠성은 의도적으로 맛을 어딘가 부족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막강한 유통망을 더해 스프라이트가 매대에 깔리기도 전에 전국에 스프린트를 먼저 살포했다.
이 작전이 통한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당시 슈퍼마켓과 동네 구멍가게로 이어지는 유통망은 진입장벽 자체였고, 아무리 자본이 큰 외국 기업이라도 그 촘촘한 그물을 하루아침에 뚫을 수는 없었다.
결국 소비자들은 스프린트를 스프라이트로 오인해 맛본 뒤 “별거 아니네"라는 실망스러운 결론을 내렸고, 스프라이트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현지 챔피언의 유통망이 글로벌 거인의 자본을 이긴 전설적인 게릴라전 사례다.
수년 뒤 다시 돌아온 스프라이트는 전략을 바꿨다. ‘국민 사이다’의 자리를 뺏는 대신, 청하와 박재범 등 당대 가장 ‘힙한’ 아티스트를 모델로 내세우며 자기만의 트렌디한 영역을 새로 구축했다.
제로 칼로리 시대, 칠성사이다와 스프라이트가 다시 붙었다
2020년대 들어 전쟁의 무대는 ‘제로 칼로리’ 시장으로 옮겨갔다. ‘칠성사이다 제로’와 ‘스프라이트 제로’는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를 두고 다시 격돌했다. 맛은 미묘하게 다르다. 칠성사이다 제로는 원조의 정체성을 살려 더 강하고 날카로운 탄산감을, 스프라이트 제로는 상대적으로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이 승부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2025년 1월 닐슨코리아 조사기준 제로슈거 탄산음료의 시장 점유율은 29.7%로, 2022년 16.3%에서 크게 뛰었다. 롯데칠성음료는 제로 음료와 주류 라인업을 앞세워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넘어섰고, 제로 탄산 매출만 전년보다 10% 늘어 3000억원을 돌파했다. 국민 사이다와 글로벌 도전자의 대결이, 이제는 ‘제로’라는 이름을 달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칠성사이다와 스프라이트, 무엇이 다른가
표: 칠성사이다와 스프라이트의 탄생 배경과 정체성 비교
| 구분 | 칠성사이다 | 스프라이트 |
|---|---|---|
| 탄생 | 1950년, 대한민국 서울 | 1959년 서독 개발 / 1961년 미국 출시 |
| 탄생 서사 | 실향민들이 전쟁 속에서 피워낸 재기의 상징 | 코카콜라가 7 Up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 상품 |
| 핵심 정체성 | ‘국민 사이다’, 맑고 깨끗함, 추억 | 젊음과 ‘쿨함’, 힙합·스트리트 문화의 아이콘 |
| 대표 슬로건 | “맑고 깨끗하게” | “Obey Your Thirst” |
| 결정적 순간 | 70년 넘게 시장 1위, 문화적 아이콘으로 등극 | 1992년 ‘스프린트’ 사건으로 철수 후 전략적 재진출 |
이름을 도둑맞은 음료와, 이름 하나로 시장을 훔치려 했던 음료. 두 탄산수의 120년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마케팅 전쟁사다. 그리고 이 전쟁은 ‘제로 칼로리’라는 이름을 바꿔가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