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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 없는 나라, 어떻게 커피 강국 됐나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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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커피나무가 단 한 그루도 자라지 않는다. 기후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나라의 카페는 10만 개를 넘어섰다. 편의점 네 개 브랜드를 다 합친 매장 수의 거의 두 배다. 스타벅스는 2025년 기준 2천 개가 넘는 매장으로 미국, 중국 다음으로 많고, 일본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마시는 커피는 405잔, 세계 평균의 2.7배에 달한다.

원두 한 톨 나지 않는 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흔히 이렇게 설명한다. 스타벅스가 들어오면서 서구식 카페 문화를 동경하게 됐고, 그 취향이 자연스럽게 원두커피 시장으로 무르익었다고. 절반만 맞는 말이다. 정작 한국 스페셜티 커피를 만든 사람들은 스타벅스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정반대편에서, 프림과 설탕이 당연했던 시절 한복판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던 쓴 커피를 고집스레 내리기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오늘 마신 커피 한 잔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 뒤에는 산지와 로스팅 방식, 그리고 그 값을 정한 사람들의 판단이 숨어 있다. 카페 창업은 여전히 자영업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업종으로 꼽힌다. 그만큼 매년 수만 개의 가게가 문을 열고, 그만큼 조용히 문을 닫는다. 이 산업 전체를 설계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다음번 카페 문 앞에 설 때 보이는 것이 조금 달라진다.

빈 틈새로 들어온 외래종

생태학에는 ‘적응방산’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생물종이 텅 빈 서식지에 들어갔을 때, 원래 살던 곳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갈라져 나가는 현상이다. 천적도 경쟁자도 없는 빈 니치를 만나면, 종은 원산지에서보다 더 극단적으로 진화한다.

한국 커피의 역사를 이 틀로 다시 보면 이상한 그림 하나가 맞아떨어진다. 1976년, 동서식품은 커피와 프림, 설탕을 한 봉지에 담은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산업화 시대의 속도에 맞춰 태어난 이 발명품은 한 세대의 미각을 통째로 길들였다. 커피는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타는’ 의식이었고, 맛의 기준은 향이 아니라 단맛과 온기였다.

그런데 바로 이 획일화가 역설적으로 빈 니치를 만들었다. 원두 본연의 산미와 향에 대한 감각 자체가 사회 전체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감각이 처음 들어오는 순간 경쟁할 상대가 없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상륙한 스타벅스가 먼저 ‘공간’이라는 니치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원두 자체의 미묘한 차이를 파고드는 스페셜티 커피가 들어왔을 때, 이 나라는 마치 텅 빈 섬에 떨어진 외래종처럼 극단적인 속도로 갈라지고 번식하기 시작했다.

1976년에 출시한 커피믹스
1976년에 출시한 커피믹스

새로 단장한 이화여대앞 스타벅스 1호점
새로 단장한 이화여대앞 스타벅스 1호점

속도를 숫자로 놓고 보면 압축의 규모가 드러난다. 미국은 폴저스식 대량생산에서 스타벅스의 등장(1971년)까지 반세기 넘게 걸렸고, 스타벅스에서 스페셜티 커피가 본격화되기까지 다시 삼십 년 가까이 흘렀다. 한 세기에 가까운 여정이었다. 한국은 커피믹스(1976년)에서 스타벅스 상륙(1999년)까지 23년, 거기서 스페셜티 커피가 전국 골목까지 퍼지기까지 다시 십수 년. 반세기가 채 안 되는 시간에 같은 여정을 두 배 빠르게 통과했다.

이 압축된 지층 안에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목장을 떠난 손

1974년, 스물네 살의 재일교포 청년 박이추는 협동농장의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았다. 포천과 원주를 오가며 젖소를 키웠지만, 땅의 소유권 문제로 농장은 무너졌다. 그는 도망치듯 일본으로 돌아갔고, 그곳의 한 찻집에서 우연히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 혜화동. 거리마다 자판기 커피의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던 시절, 박이추는 ‘가배 보헤미안’이라는 작은 간판을 내걸었다. 프림도 설탕도 없이, 직접 볶고 손으로 내린 진한 커피. 그의 카페는 곧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다른 맛’을 파는 곳이 됐다.

성공은 그를 붙잡지 못했다. 몰려드는 인파가 부담스러워질 때마다 그는 자리를 옮겼다. 안암동을 거쳐 평창으로, 다시 강릉으로. 지금은 강릉 사천 앞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새벽마다 원두를 볶고, 주문이 들어오면 주저 없이 커피를 내린다. 커피 맛은 그날그날 다르고, 그것이 사람의 인생과 닮았다는 게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그에게 커피는 정답이 없는, 우리네 삶과 똑같은 것이었다.

강릉 사천의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
강릉 사천의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

얼굴을 찾는 역사학도

고려대에서 서양사를, 대학원에서 러시아 여성사를 공부하던 서필훈에게 연구실은 답답했다. 학교 앞 카페 ‘보헤미안’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게 전부였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커피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의 질문은 남달랐다. 바리스타 대부분이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내릴까’를 물을 때, 그는 ‘이 원두는 누가, 어디서 길렀을까’를 물었다. 역사학도의 습관이었다. 2007년 국내 최초로 큐그레이더 자격을 땄고, 배낭을 메고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농장을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009년, 서울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의 월세 30만 원짜리 작은 공방에서 ‘커피리브레’가 문을 열었다. 창업자금은 5천만 원. 5년간 모은 돈에 부모님이 마련해준 자취방 보증금까지 보탠 액수였다. 지금 이 회사는 15개국, 250여 개 농장과 직접 거래한다. 이름 없이 사라지던 농부들에게 얼굴을 되돌려주는 거래 방식 — 그가 만든 건 카페 하나가 아니었다.

서울 연남동 커피리브레
서울 연남동 커피리브레

은행원의 오기, 산업이 된 커피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김용덕은 은행원 생활 21년 차였다. 서른아홉, 명예퇴직. 그는 미술 학원을 다니며 돈가스 레스토랑을 차렸다. 후식으로 나가는 커피 맛이 마음에 걸려 시작한 공부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2002년, 강릉 외곽 인적 드문 곳에 첫 매장을 열었다. 주변에서는 상권도 보지 않은 입지 선정을 두고 실패를 예언했다. 실제로 4년 동안 손님 없는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는 커피를 ‘한 잔’이 아니라 ‘산업’으로 봤다. 전 세계 산지를 돌며 원두를 직거래하고, 예술 작품과 고가구로 채운 공간을 손수 설계했다. 테라로사는 그렇게 그 자체로 목적지가 되는 카페가 됐다.

연매출 수백억 원, 전국 매장 서른 곳이 넘는 규모. 은행원 출신 늦깎이 바리스타는 스페셜티 커피를 ‘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강릉 안목해변은 한때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던 도로변이었지만, 이제는 해마다 이십만 명이 몰리는 커피 축제의 도시가 됐다.

강릉 테라로사 매장 전경
강릉 테라로사 매장 전경

세대가 이어받은 질문

박이추가 커피의 ‘영혼’을, 서필훈이 ‘얼굴’을, 김용덕이 ‘규모’를 만들어놓은 토양 위에서,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스페셜티 커피를 다시 썼다. 2010년대 들어 홍대와 연남동, 부산 전포동, 제주의 작은 마을까지 개성 넘치는 소규모 로스터리가 전국 곳곳에 문을 열었다.

소비자도 함께 자랐다. 이제는 단순히 ‘쓴 커피’와 ‘신 커피’를 구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워시드와 내추럴이라는 가공 방식의 차이를 따지고, 게이샤와 핑크버번 같은 품종의 이름을 외운다. 섬세한 미각을 가진 소비자층의 등장이야말로 이 시장이 계속 자랄 수 있었던 가장 단단한 바탕이었다.

2019년 미국 보스턴, 세계바리스타챔피언십(WBC) 결선. 부산 모모스커피의 전주연 바리스타가 최종 우승자로 호명됐다. 55개국 대표가 겨룬 무대에서, 캐나다·독일·스위스 대표들을 제치고 거머쥔 한국인 최초의 우승이었다. 아시아 여성으로도 최초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가 우승 시연에서 강조한 것은 농부와의 신뢰 관계, 상생의 가치였다. 박이추의 인간 중심 철학과 서필훈의 윤리적 거래 방식이 한 잔의 커피 안에서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2019년 WBC에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
2019년 WBC에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

다시, 자본의 문이 열릴 때

그런데 2026년 4월, 김용덕은 남은 지분을 모두 팔았다.

23년을 이끈 창업주가 물러나고, 사모펀드가 지분 대부분을 쥔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었다.

상권을 무시하고 시골에 첫 매장을 열었던 그 오기, ‘커피보다 사람’이라던 박이추의 철학, ‘얼굴 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던 서필훈의 신념 — 이 모든 것이 만들어낸 산업은 결국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완성됐다. 자본이 규모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이건 테라로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6년 5만여 개였던 전국 커피전문점은 2022년 10만 개를 넘겼다. 6년 만에 두 배다. 커피 브랜드 수는 886개, 치킨 브랜드보다 많다. 소자본으로 시작하기 쉽다는 이유로 몰려든 사람들 중 상당수는 몇 년 안에 조용히 문을 닫는다. 저항으로 시작해 만든 이 니치는, 이제 그 자체로 또 다른 빨리빨리의 무대가 됐다.

박이추가 강릉에서 조용히 커피를 내리는 방식과, 886개 브랜드가 서로 경쟁하는 방식은 사실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하나에 꽂히면 그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힘. 그 힘이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를 만들었고, 스페셜티 커피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퍼뜨렸고, 이제는 그 산업 자체를 포화 직전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여전히 이 땅에는 커피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일 어디선가 새 카페가 문을 열고, 매일 어디선가 그만큼의 카페가 조용히 간판을 내린다. 오늘 손에 든 커피 한 잔은 그 순환의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 박이추가 강릉 앞바다에서 오늘도 내리는 한 잔인지, 서필훈이 이름을 찾아준 어느 농부의 얼굴이 담긴 한 잔인지, 아니면 열 달 뒤엔 사라질지 모를 골목 카페의 한 잔인지.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이 잔을 드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순환의 어딘가에 서 있다.

참고자료
  1. 경향신문, 전주연 바리스타 한국인 최초 WBC 우승 (2019)
  2. 위키백과, 보헤미안박이추커피
  3. 한국경제, 한국인 첫 큐그레이더 서필훈 커피리브레 대표 인터뷰
  4. 톱데일리, 커피리브레 서필훈 대표 소개
  5. 아시아경제, 테라로사 김용덕 지분 전량 매각 (2026)
  6. 서울신문/KBS 장사의 신,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 성공기
  7. 여성신문, 강릉에서 세계로 테라로사의 K커피 이야기
  8. 머니투데이, 한국 스타벅스 매장 수 세계 3위
  9. MBC뉴스, 한국 스타벅스 일본 첫 추월
  10. 시사월드, 한국 스타벅스 종합 분석 (1인당 커피소비량)
  11. MBC뉴스, 전국 커피전문점 10만 개 돌파
  12. 노컷뉴스, 전국 카페 10만개 돌파 통계
  13. 아주경제, 카페 공화국 커피전문점 통계
  14. 경남신문, 전주연 바리스타 인터뷰
  15. 블랙워터이슈, 2019 WBC 전주연 바리스타 시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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