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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캔은 정말 3개월 지나야 맛있어질까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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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캔을 마트 할인할 때마다 열 개씩 사다 찬장 구석에 쟁여두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뭘 언제 샀는지 까먹는다. 얼마 전에 정리하다가 생산일이 반년 가까이 지난 캔 하나가 나왔다. 버릴까 하다 그냥 땄는데, 문득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참치캔은 갓 나온 것보다 세 달쯤 지난 게 더 맛있다는 얘기. 검색해보니 나무위키에는 그게 거의 정설처럼 적혀 있었다. “완전 밀폐 제조 후 3개월 이상 지나면 기름이 참치에 배어들어 더 부드럽고 맛있어진다"는 문장이 무슨 상식처럼 박혀 있었다. 근데 통조림 안에서 뭔가가 “숙성"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3개월 숙성설’, 어디서 시작됐나

찾아보니 이 얘기가 방송을 타고 퍼진 지점이 있었다. 2019년 EBS <극한직업> ‘참치통조림의 탄생’ 편에서, 경력 6년 차 공장 직원이 마지막에 툭 던진 한마디였다. 생산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숙성돼서 정말 맛있다는 말. 이 발언이 나가고 나서 인터넷에서 갑론을박이 붙었다고 경향신문이 취재했다. 통조림인데 숙성이 어떻게 되냐는 반박과, 실제로 오래된 캔이 더 부드럽더라는 체험담이 부딪혔다.

여기서 걸리는 지점은 딱 하나, ‘숙성’이라는 단어다. 원래 숙성이란 식품에 남아 있는 효소가 재료의 성분을 서서히 분해하면서 감칠맛 성분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된장이나 치즈, 건어물이 시간이 지나며 맛이 깊어지는 게 그런 원리다. 그런데 통조림은 애초에 그 효소를 죽이려고 만든 식품이다. 이 둘이 한 문장 안에 같이 있으니 위화감이 드는 게 당연했다.

멸균 통조림 안에서 정말 숙성이 일어날 수 있나

레토르트 살균 기준을 찾아보니 답이 좀 명확해졌다. 국내 규정상 멸균은 제품 중심 온도가 섭씨 120도 이상에서 4분 이상 열처리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 이 온도대는 웬만한 미생물뿐 아니라 재료 안의 효소 단백질까지 변성시켜버리는 수준이다. 참치캔도 같은 논리로 고온·고압 살균을 거친다. 즉 캔이 밀봉된 시점에 이미 효소는 죽어 있고, 이후로는 그 안에서 발효나 분해 같은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날 조건 자체가 없다.

식품정보 전문가 최낙언 대표도 취재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엄밀히 말하면 살균한 순간 자가분해효소가 사라지기 때문에 통조림 안에서 숙성이 일어난다고 보긴 어렵다고. 다만 시간이 지나며 맛이 좋아지는 현상 자체를 편의상 숙성이라 부르는 경우는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단어 선택이 좀 과했을 뿐, 시간이 지나면 뭔가 달라진다는 체감 자체는 아예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거다.

그럼 맛이 달라지는 진짜 이유 — 기름이 스며드는 시간

동원그룹 홍보팀 관계자가 경향신문에 설명한 부분이 힌트였다. 외국은 참치를 물에 담가 캔에 넣는 방식을 많이 쓰는데, 국내 제품은 식감을 부드럽게 하려고 면실유나 카놀라유 같은 유지류를 함께 넣고 밀봉한다.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기름이 살코기 조직 사이사이로 서서히 스며들면서 맛이 깊어진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공식적으로 “3개월 숙성"이라고 홍보하지는 않는다고,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단서도 달았다.

이 설명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정리됐다. 이건 효소가 재료를 분해하는 생화학적 숙성이 아니라, 기름이라는 액체가 고체 조직 안으로 서서히 퍼져 들어가는 물리적 확산에 가깝다. 마리네이드에 재운 고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양념이 배어드는 것과 비슷한 결이랄까. 반응이라기보단 그냥 침투다. 그런데 이게 며칠 만에 끝나는 게 아니라 꽤 오래 걸리는 과정이라, 3개월이라는 시간이 체감상 의미를 갖는 거였다.

해외에서도 같은 얘기가 있을까 — 오일팩과 워터팩의 차이

여기서 좀 더 파보고 싶어졌다. 한국에서는 이게 논란거리인데, 참치캔을 훨씬 오래 먹어온 서구권 식문화에서는 어떨까 싶어서였다. 찾아보니 미국 쪽 미식 매체들 반응이 의외로 시원했다. 올리브오일에 담긴 참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좋아져서 팬트리에 오래 둘 만한 식재료라는 설명이 여러 매체에 그대로 나와 있었다. 어느 커뮤니티 질문 글에서도 오일팩 참치의 풍미가 몇 달에 걸쳐 좋아진다는 답변이 오갔다. 즉 한국에서만 떠도는 속설이 아니라, 오일팩 참치를 다루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비슷하게 통용되는 경험칙이었던 셈이다.

대신 이 현상은 오일팩에서만 뚜렷하다는 점도 같이 확인됐다. 워터팩(물에 담근) 참치는 애초에 스며들 기름이 없으니,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조직이 부드러워지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물을 따라내는 순간 살코기가 퍽퍽해지기 쉽다는 쪽에 가깝다. 반대로 오일팩은 기름의 점성 덕분에 수분이 덜 날아가고, 시간이 지나며 기름이 배어들어 식감이 매끄러워진다. 영양 면에서도 결이 갈리는데, 오일팩 쪽이 지용성인 비타민D와 셀레늄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워터팩은 물에 씻겨 나가지 않은 오메가3 지방산을 더 많이 남긴다는 자료도 있었다. 뭘 먹느냐보다 어떻게 포장됐느냐가 이 미묘한 차이를 가르는 셈이다.

그럼 오래 묵은 캔, 안전 문제는 없을까

여기까지 오니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몇 달, 몇 년씩 묵혀도 되는 식품이면 뭔가 방부제라도 들어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근데 찾아보니 오히려 반대였다. 통조림에는 방부제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내용물에서 공기를 완전히 빼낸 뒤 밀봉하고 고온에서 멸균하는 제조 공정 자체가 방부제 역할을 대신한다. 균이 살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놓고, 그 상태로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원천 차단해버리는 방식이라, 소비기한이 10년 넘게 잡히는 제품도 드물지 않다.

캔 재질도 한몫한다. 참치캔은 몸통을 철로, 뚜껑을 알루미늄으로 따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철이 알루미늄보다 충격에 강하고 공기를 덜 투과시켜서 장기 보관에 유리하다고 한다. 다만 캔 내부 부식을 막으려고 바르는 에폭시수지 코팅에서 비스페놀A 같은 물질이 극미량 검출된다는 지적은 있다. 또 고온 살균 과정에서 탄수화물·단백질이 반응하며 퓨란이라는 물질이 생기는데, 이건 2B군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긴 하다. 다만 2B군은 “발암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정도의 낮은 위험 등급이라, 이 문제로 참치캔 자체를 멀리할 근거로 삼기엔 좀 과한 반응이 아닐까 싶다. 결국 3개월 지난 캔이든 갓 나온 캔이든, 안전성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는 쪽으로 정리된다.

그러고 보니 참치캔 자체는 언제, 왜 생겨났을까

여기까지 오니 더 근본적인 게 궁금해졌다. 애초에 참치를 캔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누가 왜 했을까. 찾아보니 시작은 참치가 아니라 정어리였다. 1903년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정어리 어획량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흉년이 왔다. 새프드로에서 정어리 통조림 공장을 운영하던 앨버트 P. 핼프힐이라는 사람이 텅 빈 정어리 캔을 어떻게든 채워야 했는데, 눈에 들어온 게 흔했지만 아무도 안 먹던 알바코어 참치였다. 당시 참치는 비린 맛 때문에 낚시꾼들도 잡기만 하고 버리던 생선이었다고 한다. 핼프힐이 참치를 쪄서 하얗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맛이 확 부드러워졌고, 이걸 “바다의 닭고기(Chicken of the Sea)“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첫해 판매량은 700케이스에 불과했지만, 10년 만에 40만 케이스를 넘겼다고 하니 정어리 대타로 시작한 상품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다. 핼프힐의 초기 참치캔은 캘리포니아산 올리브오일에 담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더 저렴한 면실유로 바뀌었다. 원가 절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면실유가 훗날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그대로 쓰인다. 1982년, 동원그룹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이 원양어업으로 잔뼈가 굵은 뒤 미국 스타키스트 공장을 둘러보고 “왜 한국에는 참치캔이 없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200~1300달러 수준이라 참치캔 같은 선진국형 식품은 아직 이르다는 시각이 많았지만, 그는 국민소득 2000달러 시대가 오면 수요가 생길 거라 내다봤다. 그렇게 한식 입맛에 맞춰 유지를 넣은 살코기캔을 개발했고, 1982년 12월 국내 최초의 참치캔이 나왔다. 그때 선택된 기름이 면실유였다. 앞서 나온 ‘기름이 스며든다’는 설명에 등장했던 바로 그 면실유가, 사실 80년 전 미국에서 정어리 흉년을 넘기려던 비용 절감책에서 시작된 선택이었던 셈이다. 결국 참치캔 안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한 세기 전 캘리포니아 어부의 임기응변에서부터 이어져 온 흐름이었다.

그래서 3개월을 기다려야 하나

정리하면 이렇다. ‘숙성’이라는 단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통조림 안에서 발효나 효소 분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기름이 스며드는 물리적 과정은 실제로 있고, 그게 몇 달에 걸쳐 진행되며 식감을 바꿔놓는다는 것도 사실에 가깝다. 그러니 3개월이라는 숫자가 무슨 절대적인 기준선은 아닐 것이다. 온도나 캔에 들어간 기름의 양, 참치 살코기의 두께에 따라 그 시점은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찬장에서 나온 그 반년 묵은 캔, 확실히 평소보다 부드럽게 느껴지긴 했다. 다만 그게 정말 기름이 배어든 결과인지, 아니면 방금 읽은 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 건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다음번엔 갓 산 캔과 나란히 놓고 비교라도 해봐야 할 것 같다.

참고자료
  1. 경향신문, '참치통조림, 3개월 숙성하면 정말 맛있어질까', 2019.12.08
  2. 비즈워치, '캔햄과 참치캔의 유통기한은 왜 다를까', 2022.04.17
  3. 나무위키, '참치 통조림' 항목
  4. 나무위키, '레토르트 식품' 항목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레토르트 식품' 항목
  6. 아하, '참치캔 속 기름은 몸에 해롭나요?'
  7. 고대신문, '레토르트 식품, 방부제 첨가 없고 영양 손실 낮아', 2019.07.03
  8. 식품의약품안전처, '레토르트 포장재, 이것이 궁금해요!'
  9. San Diego History Center, 'The Origins of California's High-Seas Tuna Fleet'
  10. Tasting Table, 'The Economical Origin Of The Canned Tuna Industry', 2022
  11. South Bay History, 'Albert Halfhill: The man who transformed once-lowly tuna into the Chicken of the Sea', 2024
  12. 비즈한국, '한 캔에 담긴 44년의 건강···동원참치, 글로벌 단백질로 도약하다'
  13. 이코노미스트, '참치는 못 참지···1년에 5000억 버는 바다의 포르쉐 정체', 2023
  14. 전자신문, '[마켓&][숫자로 알아보는 국내 最古 40] 참치캔 대명사 동원참치', 2018
  15. Saveur, 'The Best Canned Tuna', 2022
  16. Tasting Table, 'The Rich Reason You Should Usually Opt For Tuna Canned In Oil', 2023
  17. Tasting Table, 'Canned Tuna In Water Vs Oil: Is There Really A Nutritional Difference?', 2022
  18. Food Republic, 'When To Use Canned Tuna In Oil Over Water And Vice Versa', 2023
  19. Genova Seafood, 'Tuna in Oil' 제품 페이지
  20. Ask MetaFilter, 'why is tuna in oil a thing?',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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