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화장실 등이 나갔다. 갈아 끼운 지 1년도 안 된 LED였다. 박스를 뒤져보니 “수명 50,000시간"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하루 3시간씩 써도 45년은 버텨야 하는 숫자다. 그런데 1년 만에 죽었다.
처음엔 그냥 불량이겠거니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게 처음이 아니다. 작년엔 주방등, 재작년엔 현관등. LED로 바꾼 뒤로 오히려 예전 형광등보다 자주 갈아 끼운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상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LED 전구 수명 5만시간, 진짜 죽은 부품은 어디인가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이거였다. “LED 자체가 수명이 짧은가?” 답부터 말하면 아니다. LED 광원(칩) 자체의 이론적 수명은 밝기가 초기의 70%로 떨어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하며, 55도·85도·105도 세 가지 온도에서 6,000시간 이상 연속 점등해 광 감쇠 곡선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보는 “5만 시간"이라는 숫자는 칩이 완전히 꺼지는 시점이 아니라 밝기가 조금씩 어두워지는 걸 계산한 이론값에 가깝다.
문제는 전구 안에 LED 칩만 들어있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 집 콘센트에서 나오는 전기는 교류(AC)인데 LED는 직류(DC)로 구동된다. 그래서 전구 몸통 안에는 휴대폰 충전기 같은 역할을 하는 전원장치(컨버터)가 들어가고, 밝기와 수명을 조절하는 PWM 컨트롤러 같은 부가 회로도 함께 들어간다. 뜯어보면 정작 빛을 내는 칩보다 이 회로 부품들이 더 열에 약하고 발열도 심한 경우가 많다. 결국 전구가 죽었다고 할 때 대부분은 LED 칩이 아니라 이 회로 쪽이 먼저 나가는 거였다.
이 대목에서 좀 허탈했다. “LED 수명 5만 시간"이라는 마케팅 카피는 거짓말은 아니지만, 정확히는 “칩의 이론적 광 감쇠 수명"이지 “전구 하나가 통째로 살아있는 시간"이 아니었던 셈이다.
LED 컨버터와 전해캐패시터, 왜 하필 여기가 문제인가
그럼 왜 하필 그 회로 부품이 먼저 죽을까. 여기서부터는 좀 더 깊이 들어가 볼 만하다.
전원장치 안에는 전해캐패시터(콘덴서)라는 부품이 거의 빠짐없이 들어간다. 이 부품의 구조를 찾아보니, 알루미늄 전해 커패시터는 태생적으로 수명이 유한한 부품이다. 내부 전해액이 온도에 따라 기화되면서 실링 고무를 통해 서서히 빠져나가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용량이 줄고 저항이 올라가다가 결국 전해액이 완전히 말라 회로가 끊기는 상태로 간다. 즉 처음부터 “언젠가 마른다"는 전제를 깔고 만들어진 부품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 마르는 속도가 온도에 극도로 민감하다. 알루미늄 전해 커패시터의 수명을 예측할 때 흔히 쓰이는 게 “10도 2배 법칙"인데, 온도가 10도 오를 때마다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실제로 LED 조명 쪽 자료를 봐도 LED 온도가 10℃ 상승할 때마다 수명이 50%까지 단축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화장실처럼 밀폐된 소켓, 매입등처럼 열이 안 빠지는 구조에 넣으면 캐패시터 입장에서는 사우나에 갇힌 셈이 되는 거고, 정직하게 그 속도만큼 빨리 마른다.
저가 제품에서 이 문제가 특히 두드러지는 이유도 여기 있는 듯하다. 실제 사용 후기를 찾아보니 저가 LED 램프는 안정기 회로나 발열 처리 문제로 수명이 오히려 짧아지는 경우가 있고, 심하면 100시간 만에 두 개가 죽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뜯어보니 발광부가 아니라 내장 다이오드 자체가 타버린(소손) 경우였다고 한다. LED 자체 수명만 보면 광고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는 LED를 제외한 나머지 구성품의 수명이 LED 칩의 수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저가 LED 전구와 비싼 LED 전구, 방열판·캐패시터가 다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는 게 “그럼 비싼 건 뭐가 다른가"였다.
캐패시터 종류부터 갈린다. 일반 알루미늄 전해 커패시터보다 등가직렬저항(ESR)이 낮고 작동 수명이 긴 폴리머 알루미늄 커패시터라는 대안이 있는데,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폴리머를 쓰기 때문에 애초에 “마를” 액체 자체가 적다. 당연히 원가는 더 든다. 저가형 전구는 여기서 원가를 아끼려고 하니, 싼 쪽이 먼저 죽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방열판 재질 차이도 크다. 현재 LED 조명 방열판의 주력 소재는 알루미늄이고, 백열등을 대체하는 벌브형·투광등·공장등·가로등용 LED 조명에서는 전체 재료비 중 방열판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을 넘는다. 방열판 하나가 원가의 이만큼을 차지한다는 건, 여기서 재료를 얇게 쓰거나 저품질 알루미늄으로 대체하면 그만큼 값을 낮출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LED의 수명과 가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결국 방열판이라고 보고 있다.
전원 드라이버 자체의 설계 수명도 원래 LED 칩보다 짧게 잡혀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보통 구동 전원(드라이버)의 수명은 1만~3만 시간 정도인데, 이건 전해캐패시터가 마르거나 MOS 트랜지스터가 타는 게 원인이고, 정작 LED 칩 자체의 이론적 수명은 5만 시간을 넘는다. 즉 처음부터 “전구 전체 수명 = 가장 짧은 부품의 수명"이라는 구조인데, 그 가장 짧은 부품이 저가형일수록 더 짧아지는 셈이다.
여기까지 오니 좀 억울한 기분도 든다. 우리가 사는 건 “LED 전구"라는 하나의 상품이지만, 실제로 파는 쪽은 그 안에서 제일 약한 고리를 얼마나 튼튼하게 만드느냐로 원가를 조절하고 있었던 거다.
[INFOGRAPHIC: “저가 LED 전구 vs 고가 LED 전구 내부 구조 비교” — 캐패시터 종류, 방열판 재질, 예상 수명 차이를 좌우 비교 카드로 보여준다. 어느 부품이 원가 절감의 타깃이 되는지 시각적으로 짚어주기 위해 배치.*
LED 전구 수명, 매입등·화장실 등기구 발열 환경도 영향 주나
부품 얘기만 하고 넘어가기엔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등기구 자체의 구조다.
화장실이나 매입등처럼 밀폐된 곳에 넣으면 왜 유독 빨리 죽는지 궁금했는데, 이건 순전히 열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서였다. LED 자체의 발열은 크지 않지만 방열은 대부분 순환되는 공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풍이 안 되는 구조에서는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전구 표면 온도가 70도를 넘어가면 내부에 무리가 간다고 알려져 있다.
화장실 다마등처럼 유리 돔 안에 넣는 구조는 최악의 조건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돔 안이라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이는 데다, 화장실 특성상 습기까지 더해지니 전구형 LED에겐 이보다 나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거다. 게다가 지잉거리는 소리가 난다면 건물 전기 품질 자체가 나쁘다는 신호일 수 있는데, 이것도 LED를 일찍 죽이는 데 한몫한다고 한다.
이 부분은 좀 억울하기도 하고 납득도 간다. 아무리 좋은 부품을 썼어도 밀폐된 매입등에 박아 넣으면 캐패시터 입장에선 그냥 사우나행이다. 반대로 저가 전구라도 통풍 잘 되는 스탠드에 꽂아두면 의외로 오래 버틸 수도 있겠다 싶다. 다만 이걸 통계로 확인한 자료까진 못 찾았고, 어디까지나 발열 원리로 미루어 짐작해보는 수준이다.
여기서 하나 더 헷갈렸던 게 있다. “LED 전구 수명이 다했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냐는 거다. 처음엔 필라멘트 전구처럼 어느 순간 툭 꺼지는 걸 상상했는데, 앞서 본 L70 기준을 다시 보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애초에 LED 칩의 광 감쇠는 켜는 첫날부터 시작되고, 다만 초반엔 워낙 느려서 못 느낄 뿐이다. 그러니까 “칩 수명이 다했다"는 표현은 원래 완전히 꺼진다는 뜻이 아니라 밝기가 눈에 띄게 흐려졌다는 뜻에 가깝다. 반면 우리 집 화장실 등처럼 실제로 툭 꺼지는 고장은 거의 다 컨버터 회로 쪽 완전 단선이다. 같은 “죽었다"는 말이라도 칩 얘기와 회로 얘기는 서로 다른 현상을 가리키고 있었던 셈이다.
이 구분을 알고 나니 전구 살 때 뭘 봐야 하는지도 조금 더 또렷해졌다. 포장지에 적힌 “정격수명” 숫자만 보고 고르는 건 사실 칩 기준 이론값만 보는 거라, 정작 우리 집에서 몇 년 버틸지와는 별개 문제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오히려 와트(W)당 밝기(루멘)가 유난히 높게 적힌, 그러니까 같은 소비전력으로 비정상적으로 밝다고 광고하는 제품은 한 번 의심해볼 만하다. 발열 대비 광량을 무리하게 뽑아낸 구성일 가능성이 있고, 그만큼 캐패시터와 방열판에 부담이 가는 구조일 수 있어서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원리상 그렇다는 거고, 제품마다 실측해본 게 아니니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기엔 조심스럽다.
LED 전구 오래 쓰려면 뭘 봐야 하나
여기까지 오니 정리가 좀 필요할 것 같다. 표로 정리해봤다.
저가 LED 전구 vs 고가 LED 전구 부품·수명 비교
| 구분 | 저가형 LED 전구 | 고가형 LED 전구 |
|---|---|---|
| 캐패시터 | 일반 알루미늄 전해형, 저가 부품 | 폴리머 알루미늄 등 장수명 부품 사용 비중 높음 |
| 방열판 | 얇거나 저품질 재질, 플라스틱 병행 | 알루미늄 비중 높고 두께 확보 |
| 드라이버 수명 설계 | 원가 절감으로 짧게 설계되는 경우 많음 | 여유 있게 설계, 발열 마진 확보 |
| 인증 | 무인증·저가 유통 제품 존재 | KC·KS 등 인증 절차 거친 경우 많음 |
| A/S | 사실상 없는 경우 많음 | 브랜드사 보증 정책 존재 |
인증 얘기가 나온 김에 짚자면, 국내에서 LED 전등이나 조명 등기구를 제조·유통·판매할 때 필요한 인증으로 KS인증과 KC인증, 고효율기자재 인증이 있는데, 이 중 KS인증은 LED 조명 제품의 품질과 내구성을 확보하고 제품 표준화를 통해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는 걸 목적으로 한다. KC는 안전 인증에 가깝고 KS는 그보다 품질·성능 쪽 기준이라, 같은 KC 인증 제품이라도 KS까지 받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다만 이 인증 여부만으로 실제 수명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정량적으로 비교한 자료는 못 찾았다. 인증을 받았다는 게 “최소 기준은 통과했다"는 뜻이지 “제일 오래 간다"는 보증까진 아닐 것 같다.
실사용 관점에서 할 수 있는 건 결국 단순하다. 밀폐된 매입등이나 유리 돔 안에는 저가 전구를 넣지 않는 것, 발열이 잘 빠지는 구조라면 굳이 비싼 걸 안 써도 되는 것, 그리고 무명 브랜드보다는 A/S가 되는 제조사 제품을 고르는 것 정도. 사실 이건 LED 얘기라기보다 그냥 전자제품 고르는 법에 가깝긴 하다.
LED 전구 수명, 결국 뭐가 정답인가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LED 수명이 길다는데 왜 빨리 죽나"에 대한 답은 “LED는 안 죽었는데 다른 게 죽었다"에 가깝다. 그리고 그 다른 것, 그러니까 캐패시터와 방열판이 저가형일수록 먼저 나가는 구조다.
다만 이게 가격표만 보고 100%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좀 자신이 없다.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라인업별로 부품이 다를 수 있고, 정말 뜯어보기 전엔 안이 어떤지 알 방법이 마땅치 않다. 화장실 등이 유독 자주 나간다면 전구 탓만 하기 전에 그 소켓 구조부터 한번 의심해볼 만하다는 것 정도가, 지금 확인한 선에서 말할 수 있는 전부다.
참고자료
- Daum 팁 - LED 전구(조명용) 장단점, 매립형 소켓 발열 문제
- 클리앙 - LED 전구가 별로 수명이 짧은 것도 아닐텐데 자꾸 죽는 이유(컨버터/PWM 컨트롤러 발열)
- 투데이스PPC - 저가 LED램프 수명이 너무 짧은 사례(다이오드 소손)
- 문화조명 Q&A - LED 전등 수명 불량 사례
- HQG Optoelectronics - LED 유지관리: 온도 10도 상승 시 수명 50% 단축
- 디지키 - 커패시터 유형별 특성, 알루미늄 전해 vs 폴리머 커패시터 수명 차이
- 파나소닉 IDS코리아 - 알루미늄 전해 커패시터의 10℃ 2배칙
- 나무위키 - 커패시터, 전해 커패시터 품질 편차
- 전자신문 - LED 조명 방열판 알루미늄 이후 차세대 소재
- ledrhythm - LED L70 수명 표기 기준, 전원 드라이버 수명 1만~3만시간
- e나라 표준인증 - KS C 7653 LED 램프 규격
- cpuholic - KS인증/KC인증/고효율기자재 인증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