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 과학

자기냉각기술, 냉매 없는 냉각의 승부수

phoue

6 min read --

헬륨은 우주에서 수소 다음으로 흔한 원소입니다. 우주 전체 질량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사정이 정반대입니다. 지각과 대기를 통틀어 헬륨은 우라늄과 토륨이 아주 느리게 방사성 붕괴를 하면서 남기는 부산물 정도로만 존재하고, 대기 중으로 새어 나가는 순간 가벼운 무게 탓에 지구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로 영영 날아가 버립니다. 되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태워도 사라지고 흩어져도 사라지는 원소, 그래서 한번 쓰면 다시는 채워 넣을 수 없는 몇 안 되는 자원이 헬륨입니다. 우리가 “우주에 흔한 원소"라고 배운 그 헬륨이, 지구 위에서는 정반대의 처지에 있는 셈입니다.

이 사실이 남 얘기가 아닌 이유는 헬륨이 생일 풍선보다 훨씬 중요한 곳에서 쓰이기 때문입니다. 병원의 MRI는 초전도 자석을 절대영도 가까이 식히려고 액체 헬륨에 의존하고, 반도체 공장은 웨이퍼 냉각과 미세 누설 검사에 헬륨을 씁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반복된 헬륨 공급 부족은 실제로 MRI 정기점검 지연과 반도체 공급망 불안으로 이어진 적이 있습니다. 헬륨이 마르면 다음 건강검진이 밀리고, 다음 스마트폰 출시가 늦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위기 한복판에서 조용히 시험되고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냉매도 헬륨도 없이, 자석만으로 온도를 떨어뜨리는 자기냉각기술입니다.

a magnetocaloric cooling module
a magnetocaloric cooling module

냉기를 빌리는 방식, 냉기를 소유하는 방식

자기냉각의 원리는 사실 새로운 물리학이 아닙니다. 1881년, 독일 물리학자 에밀 바르부르크는 철에 자기장을 걸었다 풀었다 하면 온도가 미세하게 오르내린다는 사실을 처음 관찰했습니다. 자성을 띤 물질 안에는 작은 나침반 같은 자기 쌍극자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습니다. 여기에 자기장을 걸면 쌍극자들이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정렬됩니다. 무질서가 줄어든 만큼 물질은 열을 내놓으며 살짝 뜨거워집니다. 자기장을 없애면 쌍극자들은 다시 흩어지려 하고, 그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며 온도가 떨어집니다. 자석을 걸고 푸는 동작만 반복해도 데웠다 식혔다를 계속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130년 넘게 써 온 냉장고와 에어컨은 이것과 전혀 다르게 작동합니다. 냉매 가스를 압축했다가 팽창시키는 증기압축식 냉동입니다. 이 방식은 태생적으로 소모를 전제로 합니다. 냉매는 배관 어딘가에서 조금씩 새어 나가고 컴프레서는 마모되며, 새어 나간 냉매는 다시 채워 넣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냉매 가스 자체가 만만치 않은 대가를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흔히 쓰이는 수소불화탄소 계열 냉매는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1만 2400배 강력한 온실가스이고,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가 여기서 나옵니다. 항공산업 전체 배출량의 두 배에 달하는 양입니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회수·폐기가 제대로 이뤄지는 냉매는 전체 유통량의 1%뿐입니다.

금융으로 치면 이건 매달 이자를 내야 하는 대출에 가깝습니다. 냉매식 냉각은 쓸 때마다 무언가를 소모하고, 그 소모분을 계속 채워 넣어야 굴러갑니다. 반면 자기냉각의 소재인 자성 합금은 자화와 소자화를 반복해도 화학적으로 소모되지 않습니다. 소재와 자석을 처음 마련하는 비용은 크지만, 그다음부터는 같은 자산을 계속 돌려쓰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매번 빌려 쓰는 경제와, 처음에 크게 사서 오래 쓰는 경제의 차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143년 걸려 냉장고가 된 발견

바르부르크의 관찰 이후 실용적인 냉각 장치가 되기까지는 오래 걸렸습니다. 1933년 미국 물리학자 윌리엄 지오크는 이 원리로 절대온도 0.25K, 영하 272.9도까지 물질을 식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실험실에서 한 번 쓰고 마는 극저온 기법이었습니다. 상온에서 쓸 수 있는 자기냉각 장치의 첫 개념증명은 1997년에야 나왔습니다. 관찰로부터 116년이 지난 뒤입니다. 2015년에는 하이얼과 미국 아스트로노틱스, 독일 바스프가 함께 만든 자기냉각 냉장고가 공개됐고, 기존 컴프레서 방식보다 35% 나은 효율을 냈습니다. 2016년 프랑스 기업 쿨테크가 상업용 시스템을 출시했고, 이듬해엔 500리터급 캐비닛으로 기존 냉장 설비를 대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한국은 이 흐름에 비교적 늦게, 그러나 빠르게 올라탔습니다. 한국재료연구원은 란탄계·망간계 자성 합금 합성부터 이를 얇은 판과 가는 선으로 가공하는 기술, 모듈로 조립하는 기술까지 소재-부품-모듈 전 주기 기술을 국내 최초로 확보했습니다. 이 성과는 2025년 5월 국제학술지 ‘레어메탈스’에 실렸고 국내 특허 등록과 미국 특허 출원도 마쳤습니다. 1881년의 관찰에서 여기까지 143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시장조사기관 모더 인텔리전스는 이 시장이 2025년 7억 4000만 달러에서 2031년 25억 8000만 달러로, 6년 만에 3.5배 가까이 커질 거라고 전망합니다. 연평균 성장률 23.2%입니다.

이 성장의 배경에는 규제가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36년까지 수소불화탄소 사용량을 85% 감축하도록 못 박았고, 그 결과 냉매 규제가 가장 촘촘한 유럽이 전체 자기냉각 시장의 40%를 차지하며 가장 큰 지역이 됐습니다. 아시아·태평양은 연 25%를 넘는 속도로 가장 빠르게 뒤쫓고 있습니다. 상업용 냉장이 시장의 41%를 차지해 여전히 규모는 가장 크지만, 성장 속도로 보면 데이터센터 냉각이 연 30%, 의료 분야가 연 25% 가까이 커지고 있어 무게중심이 빠르게 옮겨 가는 중입니다.

숫자보다 더 실감 나는 건 이 기술이 이미 얼마나 깊이 내려가 봤는가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아는 냉기의 기준은 가정용 냉동실, 영하 18도 정도입니다. 액체질소는 영하 196도, 액체헬륨은 영하 269도까지 내려갑니다. 그런데 초전도 큐빗을 쓰는 양자컴퓨터는 이보다 훨씬 깊은 곳, 절대영도에서 겨우 15밀리켈빈 위에 있는 온도까지 내려가야 작동합니다. 절대영도인 영하 273.15도와 비교하면 그 간격은 사람 체온과 냉동실 온도 차이보다도 훨씬 좁습니다. 이 좁은 구간을 액체 헬륨 없이 자석만으로 만드는 기술을 단열 소자화 냉각이라 부릅니다. 독일 기업 키우트라는 두 대 이상의 장치를 번갈아 작동시켜, 한쪽이 식히는 동안 다른 쪽이 재충전되는 방식으로 이 극저온을 끊김 없이 유지하는 장비를 이미 상용화했습니다.

이 기술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면 자기냉각의 자리가 더 선명해집니다. 헬륨 공급이 흔들릴 때마다 병원에서는 MRI 점검 일정이 밀리고 반도체 공장에서는 검사 공정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은 이미 우주에서 헬륨 없는 극저온 냉각에 기대를 걸어 왔습니다. 엑스레이 관측 위성 아스트로-H(히토미)에는 단열 소자화 냉각 장치가 실제로 실려, 궤도 위에서 검출기를 극저온으로 유지하는 데 쓰였습니다. 헬륨을 실어 보낼 수 없는 우주에서는 이미 자기냉각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셈입니다.

데이터센터도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30년까지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지금의 두 배 이상으로 늘 수 있다고 전망하는데, 자기 베어링을 쓴 무급유 칠러는 기존 압축기 방식보다 냉각 비용을 최대 50%까지 줄일 수 있어 2026년 말부터 미국 대형 데이터센터에 순차 공급됩니다. 수소를 액체로 저장·운송하는 기술에서도 자기냉각은 유력한 후보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액체수소는 영하 253도 아래에서 만들어지는데,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능동형 자기 재생 냉각이 이 온도를 헬륨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산업용 히트펌프 영역에서도 자기냉각은 연평균 26%를 웃도는 성장률로 커지는 중이며, 이는 제조업체들이 탄소중립을 서두르는 흐름과 맞물려 있습니다.


가돌리늄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헬륨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자기냉각의 핵심 소재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가돌리늄은 희토류입니다. 희토류 정제와 공급망은 특정 국가에 크게 쏠려 있고, 그 쏠림은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산업에서 이미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헬륨이 마르는 문제를 피하려고 고른 기술이 또 다른 유한 자원에 기대는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재료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연구팀이 가돌리늄 대신 란탄이나 망간처럼 상대적으로 흔한 원소로 대체 소재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성능과 가격 모두에서 가돌리늄 계열을 완전히 대신하지 못합니다.

이런 패턴은 처음이 아닙니다. 오존층을 파괴하던 냉매 프레온(CFC)을 없애려고 도입한 것이 지금 문제가 되는 HFC였습니다. 규제가 뚫어 놓은 구멍을 메우려 다음 자원으로 옮겨 가는 흐름이 냉각의 역사 자체에 새겨져 있는 셈입니다. 자기냉각이 이 반복을 끊을 수 있을지는 결국 가돌리늄을 대체할 소재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흔한 원소로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a rare earth element processing facility at dusk
a rare earth element processing facility at dusk

더 근본적인 질문도 남습니다. 자기냉각의 원리는 143년 전에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인류는 그 143년 동안 이산화탄소보다 1만 배 넘게 강력한 온실가스를 뿜는 압축식 냉각을 계속 써 왔습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압축식이 훨씬 싸고 자기냉각의 소재가 훨씬 비쌌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흐름이 바뀌는 것도 자기냉각이 갑자기 좋아져서가 아니라, 압축식이 감당해야 할 대가가 더는 저렴하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술을 바꾸는 게 아니라, 무엇의 대가를 먼저 치를지를 바꾸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헬륨은 한번 대기 중으로 흩어지면 다시는 지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기냉각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면, 이번에는 희토류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일이 남습니다. 에어컨 리모컨을 누르는 짧은 순간 우리는 그 버튼 뒤에서 무엇이 소모되고 무엇이 반복해서 쓰이는지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병원 대기실에서 MRI 기계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듣거나, 신제품 출시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늦어졌다는 기사를 볼 때, 그 뒤에서 조용히 말라가고 있는 원소 하나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할 자석 역시, 언젠가는 또 다른 이름의 유한한 자원 위에 서 있다는 사실도요.

참고자료
  1. e-Science, 냉매 없는 냉각기술 경쟁... 한국, '자기냉각' 상용화 문턱 넘나 https://www.e-scienc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461
  2. 전기신문, 냉각도 탈탄소로 간다…'가스 없는 냉각' 현실로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278
  3. Wikipedia, Magnetocaloric effect https://en.wikipedia.org/wiki/Magnetocaloric_effect
  4. Mordor Intelligence, Magnetic Refrigeration Market Size & Outlook 2026-2031 https://www.mordorintelligence.com/industry-reports/magnetic-refrigeration-market
  5. Magnetics Magazine, Surging Data Centers Drive Reliance on Magnetic Technology for Cooling https://magneticsmag.com/surging-data-centers-drive-reliance-on-magnetic-technology-for-cooling/
  6. 다음뉴스, 가스냉매 없는 '친환경 자기냉각 기술' 개발 https://v.daum.net/v/GDWUjr5ryu
  7. The Quantum Insider, Helium-Free Magnetic Refrigeration Supports Continuous Milli-Kelvin Temperatures For Quantum Research https://thequantuminsider.com/2026/02/23/guest-post-helium-free-magnetic-refrigeration-supports-continuous-milli-kelvin-temperatures-for-quantum-research/
  8. 포for our climate, 사람은 시원하게 지구는 뜨겁게… 냉매 속 온실가스,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1만 배 강력한데 관리체계는 '구멍' https://forourclimate.org/ko/newsroom/1048
  9. 의협신문, 의료용 헬륨 공급 부족…MRI 대란 오나? https://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1104
  10. 주간한국, 헬륨 부족 사태로 MRI·반도체 산업에 '빨간불' https://week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7081809
  11. 온라인가스저널, [심층리포트]헬륨 공급 쇼크, 반도체 공급망을 덮치다 https://www.igasnet.com/news/articleView.html?idxno=30325
  12. NASA NTRS, On-Orbit Operation of the Adiabatic Demagnetization Refrigerator on the Astro-H/Hitomi Soft X-ray Spectrometer Instrument https://ntrs.nasa.gov/citations/20160008395
  13. NASA Goddard, Adiabatic Demagnetization Refrigeration System (ADR) https://etd.gsfc.nasa.gov/capabilities/capabilities-listing/adiabatic-demagnetization-refrigeration-systems/
  14. IOPscience, Active magnetic regenerative refrigeration using superconducting solenoid for hydrogen liquefaction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5848/1882-0786/ac5723
  15. KAIST, Design of Adiabatic Demagnetization Refrigerator for Hydrogen Re-Liquefaction https://pure.kaist.ac.kr/en/publications/design-of-adiabatic-demagnetization-refrigerator-for-hydrogen-re-/
#magnetocaloric-cooling#magnetic-refrigeration#refrigerant-free-cooling#hfc-greenhouse-gas#helium-shortage#quantum-computer-cooling#data-center-cooling-technology#rare-earth-supply-chain#hydrogen-liquefaction#gadolinium-alloy

Recommended for You

스페이스X를 이해하는 6개의 조각 — 로켓, 물, 땅, 그리고 돈

스페이스X를 이해하는 6개의 조각 — 로켓, 물, 땅, 그리고 돈

3 min read --
사이버캡 해외 진출, 운전대 없는 차가 넘어야 할 벽

사이버캡 해외 진출, 운전대 없는 차가 넘어야 할 벽

6 min read --
로켓엔진 혼합비, 왜 산소를 최대로 안 넣을까

로켓엔진 혼합비, 왜 산소를 최대로 안 넣을까

7 min read --
스페이스X가 텍사스에 2억 2천만 달러 쏘는 이유

스페이스X가 텍사스에 2억 2천만 달러 쏘는 이유

6 min read --
로켓은 왜 산소로 가득 차 있을까 — 액체산소의 정체

로켓은 왜 산소로 가득 차 있을까 — 액체산소의 정체

5 min read --
탄산음료 이산화탄소, 트림 못하면 어디로 갈까

탄산음료 이산화탄소, 트림 못하면 어디로 갈까

4 min read --

Advertisemen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