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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은 이해받은 순간 죽었다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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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 완전했던 존재가 죽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완전해지는 것.

장자의 「응제왕」 편 끝에는 짧은 우화가 하나 붙어 있다. 남해의 임금은 숙(儵), 북해의 임금은 홀(忽), 그 사이 중앙의 임금은 혼돈(混沌)이라 불렸다. 숙과 홀은 종종 혼돈의 땅에서 만났고, 그때마다 혼돈은 두 사람을 극진히 대접했다.

은혜를 갚을 방법을 고민하던 숙과 홀은 결론을 내렸다. 사람은 누구나 보고 듣고 먹고 숨 쉬기 위한 일곱 개의 구멍—눈 둘, 귀 둘, 콧구멍 둘, 입 하나—을 가지고 있는데, 혼돈에게만 그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구멍 하나씩, 이레에 걸쳐 뚫어주기로 했다.

이레째 되는 날, 혼돈은 죽었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을 실패담으로 읽었다. 좋은 의도가 서툴러서 벌어진 사고. 하지만 다시 읽을수록 걸리는 지점은 의도가 아니라 순서였다. 숙과 홀은 혼돈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기준으로, 혼돈에게 없는 것을 헤아렸을 뿐이다.

그 계산법이 낯설지 않은 건, 나도 자주 써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을 때 나는 먼저 그 사람을 내가 아는 언어로 옮긴다. 이 사람은 나보다 조용하다, 이 사람은 나보다 느리다, 이 사람에게는 무언가가 없다. 없다고 느낀 순간부터, 이해는 이미 다른 일로 바뀌어 있었다. 채워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기준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이고 숫자를 매긴 사람이 있다. 신화가 아니라 통계학 쪽에서 나온 인물이다.

평균이라는 이름의 얼굴

1830년, 네덜란드에서 막 독립한 신생 벨기에 왕국은 국가 차원의 통계 조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 작업을 맡은 사람은 브뤼셀 왕립 천문대를 세운 천문학자, 아돌프 케틀레였다. 별의 위치를 재던 방식을 그는 사람에게 그대로 옮겼다. 신병들의 가슴둘레를 재고, 병사들의 키를 재고, 그 값들을 늘어놓아 곡선을 그렸다.

곡선의 정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그 지점에 케틀레는 이름을 붙였다. ‘평균인(l’homme moyen)’. 1835년에 펴낸 『인간과 인간의 능력 개발에 관한 논의』에서 그는 이 개념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했고, 이 작업은 그를 근대 통계학의 아버지로 만들었다. 오늘날 체질량지수(BMI)로 남아 있는 그 계산법도 같은 손에서 나왔다.

케틀레에게 평균은 요약이 아니라 기준이었다. 그는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그 사람은 자연이 만들다 만 오류에 가까워진다고 여겼다. 이 발상은 이후 한 세기 동안 ‘정상(normal)‘이라는 말의 뜻을 바꿔놓았다. 원래 정상은 직각을 뜻하는 라틴어 노르말리스(normalis)에서 온 목수의 용어였다. 케틀레 이후 그것은 사람을 재는 자가 되었다.

A 19th-century anthropometric measuring room
A 19th-century anthropometric measuring room

이 자를 다시 혼돈에게 가져가보면, 숙과 홀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더 선명해진다. 그들에게도 자가 있었다. 눈 둘, 귀 둘, 코 두 구멍, 입 하나. 그들은 그 자로 혼돈을 쟀고,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으며, 채워 넣었다. 정상이라는 개념이 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하나의 형태를 표준으로 세우고, 그 표준과의 거리를 결핍으로 번역한다.

이 번역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는, 셈해보면 알 수 있다. 가장 선명하게 셀 수 있는 영역은 언어다.

세계에는 약 6천여 개의 언어가 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43퍼센트가 소멸 위기에 처해 있으며, 평균 2주에 하나꼴로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1950년부터 지금까지 이미 약 230개 언어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사라지는 언어 하나하나의 마지막 순간은 대개 조용하다. 그 언어를 온전히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남고, 그 한 사람이 세상을 뜨면 언어는 통째로 닫힌다. 그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단어의 목록이 아니다. 그 언어에만 있던 색의 경계, 친족을 부르는 방식, 숲을 설명하던 문법이 함께 사라진다. 표준어는 그 자리를 채우지만, 채워진 자리와 사라진 것은 같은 크기가 아니다.


숙과 홀도, 케틀레도, 표준어를 세운 국가도 스스로 폭력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 사회를 더 정확히 이해하려는 마음, 소통과 통합을 위한다는 명분. 이해와 정상화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은 언제나 여기, 선의가 가장 확신에 차 있는 순간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낯선 것을 익숙한 언어로 옮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언어에 없는 것은, 옮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은 혼돈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동작이 다른 얼굴로 반복된다.

근대 국민국가가 표준어를 세우고 지역의 말들을 사투리로 낮춰 부른 과정, 정신의학이 정상 범위를 그리고 그 바깥을 장애로 명명해온 과정, 지금의 플랫폼이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평균 내어 정상 사용 패턴을 정의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계정을 이상 신호로 분류하는 과정. 시대도 다르고 기술도 다르지만, 이들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으로 존재를 재고, 잴 수 없는 부분에 결핍이나 오류라는 이름을 붙이는 동작을 반복한다. 기준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선언된다. 선언되는 순간, 그 바깥에 있던 것들은 갑자기 ‘바깥’이라는 위치를 갖게 된다. 어제까지는 그저 존재하던 방식이었을 뿐인데.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다시 향하는 곳은 혼돈이다. 거기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혼돈은 한 번도 저항하지 않았다. 구멍이 하나씩 뚫리는 이레 동안 혼돈은 아프다는 말을 남기지 않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할 언어를, 아직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뚫리는 구멍을 통해서만 생겨날 예정이었고, 그 언어가 완성되었을 때 혼돈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요즘도 가끔,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손을 뻗는 순간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채우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정말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나의 자로만 보이지 않는 것인가.

참고자료
  1. 장자, 「응제왕(應帝王)」편 혼돈설
  2. 위키백과,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elet)
  3. Adolphe Quetelet, 『Sur l'homme et le développement de ses facultés, ou Essai de physique sociale』, 1835
  4. 경향신문, [미래 오디세이] 2035년, 평균의 종말
  5. 경향신문, 인공지능으로 사멸 위기 언어 보존한다
  6.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언어의 침묵, 우리의 미래
  7. UNESCO,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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