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12월 3일, 런던의 성서고고학회 강연장. 조지 스미스라는 이름의 대영박물관 직원이 연단에 올라 손에 든 점토판 조각 하나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니네베의 폐허에서 파낸 수천 개의 파편 중 하나였다. 배를 만들라는 신의 명령, 정해진 폭과 길이, 지붕을 씌우라는 지시, 모든 생명체의 씨앗을 실으라는 당부. 청중은 창세기 6장을 그대로 듣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점토판은 창세기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진 것이었다.
스미스는 그 자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이든 과장이든, 그날 강연장의 공기가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인류 최초의 계시로 배워온 이야기가, 사실은 누군가 먼저 써 놓은 이야기를 이어받은 것이었다는 사실. 그것도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문헌학의 문제로.
원본이라는 착각
노아의 방주를 처음 접한 게 언제였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주일학교였을 수도, 그림책이었을 수도 있다. 공통점은 대부분 그 이야기를 인류 최초의 홍수 이야기로 배웠다는 것이다. 신이 타락한 인간을 벌하기로 하고, 단 한 사람을 골라 방주를 짓게 하고, 세상의 모든 생명을 그 안에 태우게 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 구조 — 신의 결정, 선택받은 한 사람, 배의 제작 지시, 동식물의 보존, 새를 날려 육지를 찾는 장면 — 는 노아 이야기가 문자로 정착되기 훨씬 전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 새겨져 있었다.
이건 종교의 진위를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본"이라는 감각 자체가 착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성경이든, 오늘 아침 SNS에서 본 밈이든, 우리가 최초라고 믿는 지점은 대개 우리가 처음 마주친 지점일 뿐이다. 그 뒤에 몇 겹의 판본이 쌓여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필사는 창작이 아니라 편집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학을 오래 연구한 학자들이 반복해서 지적하는 지점이 있다. 이 지역의 서기관들은 새 이야기를 짓는 것보다 오래된 이야기를 모으고 짜깁는 일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안에서도 홍수 영웅의 이름이 한 번은 우트나피쉬팀으로, 다른 대목에서는 아트라하시스로 뒤섞여 나온다. 편집자가 서로 다른 원전 두 개를 이어 붙이다가 이름을 통일하지 못한 흔적이라는 게 정설에 가깝다.
이건 오늘날의 소프트웨어 개발과 놀랍도록 닮았다. 원본 코드 하나가 있고, 누군가 그것을 복사해(fork) 자신의 필요에 맞게 몇 줄을 고치고(commit), 다시 그걸 가져간 사람이 또 손을 댄다. 최종 버전만 보면 누가 원저작자인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수메르어로 처음 구전되던 이야기가 아카드어로 번역되며 손질되고, 그것이 다시 히브리어 성서 편집자들의 손을 거치고, 그리스어권에서 또 다른 얼개로 재조립됐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 이야기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었다.
다섯 개의 판본, 하나의 골격
가장 오래된 층위로 알려진 건 수메르어로 된 지우수드라 이야기다. 신 엔릴이 인간의 소란을 견디지 못해 홍수를 결심하자, 지우수드라만이 신 엔키의 귀띔으로 살아남는다. 일곱 날 일곱 밤 동안 폭풍이 땅을 휩쓸고, 태양이 다시 떠오르자 그는 배에 구멍을 뚫어 밖을 내다본다. 짐승을 잡아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아카드어로 기록된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는 홍수의 동기를 더 노골적으로 그린다. 신들이 인간을 벌하려는 이유는 죄악이 아니라 소음이다. 인구가 불어난 인간들이 시끄럽게 굴자 신 엔릴이 짜증을 낸다. 엔키는 자신이 아끼던 아트라하시스에게만 몰래 경고해 배를 짓게 하고, 그 배에 재산과 가축을 싣게 한다. 이 서사시가 새겨진 점토판은 기원전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학계가 확인한 홍수 이야기 중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11번째 판에서는 우트나피쉬팀이 같은 이야기를 길가메시에게 들려준다. 배는 정육면체에 가까운 형태로 지어지고, 폭풍은 엿새 낮과 이레 밤 동안 이어진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우트나피쉬팀은 비둘기, 제비, 까마귀를 차례로 날려 보낸다. 비둘기와 제비는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지만,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는다 — 물이 빠졌다는 뜻이다.
창세기의 노아 이야기에도 거의 같은 장면이 나온다. 까마귀를 먼저 보내고, 그다음 비둘기를 세 차례 내보낸다. 두 번째에는 감람나무 잎을 물고 돌아오고, 세 번째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순서와 세부는 다르지만 뼈대는 같다. 현재 다수 학계는 노아 이야기가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그대로 베낀 게 아니라, 원래 이 지역에 독자적으로 있던 기근 서사가 후대 편집 과정에서 홍수 모티프와 결합했을 가능성도 함께 짚는다. 다만 그 결합의 시점에 메소포타미아 홍수 서사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스 쪽 판본도 있다. 데우칼리온과 피라 이야기다. 인간의 타락에 분노한 제우스가 홍수를 내리기로 하자, 프로메테우스가 아들 데우칼리온에게 미리 귀띔해 방주를 짓게 한다. 아흐레 낮밤이 지나 물이 빠지고 방주는 파르나소스산에 닿는다. 신탁을 받은 부부는 등 뒤로 돌을 던져 새 인류를 만든다.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이 이야기를 언급한 시점은 기원전 4세기 무렵이다.
진흙 속에 남은 진짜 홍수
여기서 멈추면 이건 그저 문헌 전승 이야기로 끝난다. 하지만 문제는 조금 더 깊다. 20세기 초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는 이라크 남부 우르 지역을 발굴하다가 이상한 층을 발견했다. 유물이 전혀 없는 두꺼운 진흙 침전층이었다. 두께는 사람 키를 훌쩍 넘겼다. 그 아래와 위에는 각각 다른 시대의 토기와 생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강물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규모의 퇴적물이 마치 문명의 연속성을 한 번 끊어놓은 것처럼 끼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는 나일강과 달랐다. 나일강의 범람은 매년 반복되는 예측 가능한 사건이었고, 오히려 비옥한 흙을 실어다 주는 축복으로 여겨졌다 — 그래서 이집트 신화에는 세계를 멸망시키는 대홍수 이야기가 거의 없다. 반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눈 녹은 물과 폭우가 겹치면 순식간에 둑을 넘었다. 예측할 수 없고, 파괴적이고, 도시 하나를 통째로 지워버릴 수 있는 물이었다. 이 강 유역에서 살아남으려면 물을 신의 심판으로 이해하는 편이 차라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즉 진짜 질문은 “누가 누구를 베꼈는가"가 아니라 “왜 이 지역 사람들은 반복해서 같은 방식으로 재난을 이야기했는가"다. 답은 문학이 아니라 지리에 있다. 예측 불가능한 강, 그 강을 다스릴 수 없다는 무력감, 그 무력감을 설명해 줄 신이 필요했던 사람들. 이야기는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세대를 거치며 계속 다시 쓰였다.
원본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 지역의 논리와는 맞지 않는 질문이었을 수 있다. 애초에 이 사람들에게 이야기란 저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동체가 재난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다듬어 온 도구였다.
스미스가 손에 쥐었던 건 시작이 아니었다
조지 스미스는 그날 강연장에서 인류 최초의 이야기를 발견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손에 쥔 점토판조차 이미 몇 세대에 걸쳐 편집된 판본의 파편이었다. 그 이전의 판본은 진흙으로 돌아갔거나 아직 사막 밑에 묻혀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발굴 현장의 흙더미 밑에서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오래된 판본이 다음 발견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이야기 가운데 몇 개나 첫 번째 판본일까. 아마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읽고 있는 이 문장도, 어느 시점엔가는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오래된 판본으로 남을 것이다.
참고자료
- 위키백과 - 길가메시 서사시
- 위키백과 - 대홍수 신화
- 나무위키 - 길가메시 서사시
- 나무위키 - 길가메시
- 아틀라스뉴스 - 메소포타미아 홍수 신화 결합한 노아의 방주
- 신앙신보 -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에 대하여
- 조철수, 『수메르 신화』, 서해문집, 2003
- 앤드류 조지 역, 공경희 옮김, 『길가메시 서사시』, 현대지성,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