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 인문

아시아 초저출산, 해결 가능한 문제일가

phoue

9 min read --

18년. 378조 1천억 원. 그리고 합계출산율 0.80명.

숫자만 보면 이상하다. 정책 자금을 쏟아부은 만큼 결과가 좋아지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한국의 저출산 대응 예산은 2006년 이후 4.7배로 불어났고,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은 1.23명에서 0.80명으로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 예산과 결과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반대로 움직였다.

이 숫자를 접한 사람들의 첫 반응은 대체로 같다.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현금 지원이 부족했다거나, 부처 간 예산이 중구난방으로 쓰였다거나, 정치인들이 표만 의식했다거나. 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설명들은 하나의 전제를 공유한다. 저출산은 고칠 수 있는 고장이라는 전제. 원인을 정확히 짚어 올바른 정책을 쓰면 출산율은 다시 올라간다는 믿음.

한국만 이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니다. 대만도, 홍콩도, 싱가포르도, 각자의 방식으로 수십 년째 이 고장을 고치려 했다. 그리고 세 나라 모두 실패했다. 정확히는,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정책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출산율은 계속 밑으로 향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정말 고칠 수 있는 문제였나"라는 질문이 정책 실패 논쟁보다 더 근본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같은 병을 앓는 나라들

2025년 기준으로 나열해 보면 이렇다. 홍콩 0.75명, 한국 0.80명, 대만 0.87명, 싱가포르 0.97명, 중국은 인구학자들 사이에서 0.7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일본만 1.15명으로 상대적으로 높지만, 이 역시 자국 역사상 최저치이자 통계 작성 126년 만의 최저 출생아 수와 함께 기록된 숫자다. OECD 평균은 1.43명이다. 동아시아 6개국과 지역 중 이 평균을 넘는 곳은 하나도 없다.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출산율 숫자만이 아니다. 압축적 산업화, 높은 교육열, 좁은 주거 공간, 자녀 1인당 교육 투자의 극단적 집중. 홍콩과 싱가포르는 낮은 출산율에도 불구하고 이민 유입 덕에 인구가 여전히 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대만과는 사정이 다르다. 이민에 소극적인 한국과 대만, 그리고 지금의 일본은 출산율 하락이 그대로 인구 감소로 직결되는 구조다. 하지만 “왜 낳지 않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이 지역 전체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 공통점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만약 한국의 저출산이 한국 특유의 정책 실패,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의 실패나 특정 정부의 무능이었다면, 다른 정치 체제와 다른 부동산 시장을 가진 대만이나 싱가포르에서 비슷한 숫자가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왔다. 그것도 몇 년의 시차를 두고 거의 같은 궤적으로.

왜 정책은 숫자를 움직이지 못하는가

여기서 질문을 한 겹 더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정책이 실패했다면, 무엇에 실패한 것인가.

국회예산정책처가 2024년 내놓은 분석은 흥미로운 지점을 짚는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다뤄야 할 실체적 문제는 혼인 지연, 혼인 감소, 출산 감소, 수도권 인구 집중 네 가지로 나뉘는데, 실제 정책 도구들은 이 네 문제와 무관하거나 느슨하게만 연결된 사업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예산은 저출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지만, 그 이름표 안에 든 내용물은 청년 고용, 주거, 보육 인프라, 지역 균형 발전 등 서로 다른 정책 목표들이 뒤섞인 잡탕에 가까웠다.

이것만으로는 예산 대비 효과 없음을 설명하는 관료제적 이야기에 머문다. 흥미로운 진짜 질문은 그다음이다. 왜 정책 설계자들은 매번 문제의 핵심을 놓쳤을까. 우연히 무능해서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이 문제가 그런 방식의 정책으로는 건드릴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을까.

이 지점에서 하나의 렌즈를 빌려올 필요가 있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조정 실패(coordination failure)**다. 조정 실패는 각 참가자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데도, 그 개별 선택들이 모여 전체적으로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열등한 결과로 귀결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은행이 무너질 것 같다는 소문만으로 예금자 전원이 동시에 인출에 나서 멀쩡했던 은행을 실제로 무너뜨리는 뱅크런이 전형적인 예다. 개인은 잘못한 게 없다. 각자 자기 돈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합리성들이 모이면 재앙이 된다.

저출산을 이 프레임으로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한 개인이 “지금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과정에는 아무런 비합리성이 없다. 주거비, 사교육비, 경력단절 위험, 배우자와의 가사분담 불균형을 정확히 계산에 넣은,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다. 문제는 그 합리적 개인들의 결정이 사회 전체로 합산되는 순간 발생한다. 다들 “지금은 아니다"라고 판단하면, 그 판단들의 합이 곧 국가 차원의 인구 절벽이 된다. 개인에게는 최적, 사회에게는 최악. 조정 실패의 정의 그대로다.

이 렌즈가 유용한 이유는 정책이 왜 힘을 못 쓰는지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현금 지원이나 바우처는 개인의 계산식에서 비용 항목 하나를 아주 조금 줄여줄 뿐이다. 계산식 전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리고 조정 실패 상황에서는, 계산식의 한 항목만 살짝 건드리는 정책으로는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다른 균형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다 같이 “아, 이제 낳아도 되겠다"고 동시에 판단을 바꿔야 균형 자체가 이동하는데, 정책은 그런 집단적 동시 이동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아니다.

4억 원의 신생아, 하지만 아무도 계산하지 않는 항목

2023년 한국에서 저출산 대응에 투입된 예산은 48조 원을 넘었고, 그해 태어난 신생아는 23만 5천여 명이었다. 나누면 신생아 한 명당 2억 원씩 지급해도 예산이 남는 규모다. 실제로 지급되는 첫만남이용권은 첫째 200만 원, 둘째 이후 300만 원이다. 계산이 맞지 않는 게 아니라,애초에 저출산 예산의 대부분이 현금으로 개인에게 가지 않는다. 보육시설 건립, 지자체 사업, 여러 부처의 크고 작은 프로그램들로 흩어진다.

이 흩어짐 자체가 조정 실패 프레임에서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정부는 계산식에 들어가는 하나하나의 비용 항목—보육비, 주거비, 교육비—을 낮추는 방식으로 접근해왔다. 그런데 정작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맞벌이 부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드러난 것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항목이었다. 가사분담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더니, 맞벌이 아내의 평균적 불만족 수준이 맞벌이 남편의 4배를 넘었다. 외벌이 아내의 불만족은 남편의 5배를 넘었다.

이 숫자 하나가 정책 설계의 맹점을 드러낸다. 보육비를 지원하고 주거 대출을 낮춰도, 아이를 낳은 이후 실제로 그 아이를 키우는 노동이 가정 안에서 어떻게 나뉘는지는 정책이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이다. 인구학자 맥도널드는 2000년에 이미 이 구조를 이론화했다. 경제성장을 이룬 사회에서 나타나는 초저출산은, 공적 영역—교육, 취업, 법적 권리—에서는 남녀가 거의 평등해졌는데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의 제도는 그 평등을 따라가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불일치의 결과라는 것이다. 여성은 직장에서는 동등한 참가자로 훈련받았는데,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역할 분담을 요구받는다. 이 두 세계 사이의 낙차가 클수록,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대응은 두 세계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 낙차를 경험할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것이 된다. 결혼을 늦추거나, 하지 않거나, 결혼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는 쪽으로.

정부가 이 낙차를 계산에 넣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정책은 예산으로 집행되고, 예산은 측정 가능한 항목에만 배정된다. 부부 사이의 가사분담 불균형은 법으로 강제하거나 예산으로 직접 살 수 있는 항목이 아니다. 조정 실패 게임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런 항목들이다. 화폐화되지 않는 사회적 규범, 그것도 한 세대 안에서는 잘 바뀌지 않는 규범이 계산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면, 계산식의 나머지 절반—돈으로 환산 가능한 절반—만 아무리 손봐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갈리는 숫자

여기서 한 가지 반론이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정책은 정말 아무 효과가 없다는 뜻인가. 그렇지는 않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별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2025년 잠정 통계에서 전남은 1.10명으로 전국 1위, 서울은 0.63명으로 전국 최저를 기록했다. 같은 법, 같은 국가 정책, 같은 통화를 쓰는 나라 안에서 1.75배의 격차가 존재한다.

이 격차는 정책의 무용함이 아니라 조정 실패의 지역적 변주를 보여준다. 서울은 주거비, 사교육 경쟁, 노동시간, 인구 밀도가 압축적으로 집중된 곳이다. 계산식에 들어가는 비용 항목들이 전남보다 훨씬 무겁게 쌓여 있다. 반대로 전남은 그 비용 항목들의 절대치가 낮다. 정책은 똑같이 적용됐지만, 정책이 작동하는 바탕 조건—주거비, 경쟁 강도, 노동 문화—이 지역마다 다르니 결과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정책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정책만으로는 지역마다 다른 조정 실패의 깊이를 메우기에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이 격차를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선택으로 옮겨보면 그림이 더 또렷해진다. 서울 강남권에서 일하는 30대 초반 맞벌이 회사원을 떠올려 보자. 이 사람이 예외적인 경우는 아니다. 통계상 가장 흔한 유형에 가깝다. 전셋값은 소득의 몇 배를 훌쩍 넘고, 아이를 낳으면 어린이집 대기 순번을 걱정해야 하며,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옆집 아이가 다니는 학원 스케줄이 곧 우리 아이의 학원 스케줄이 된다. 야근이 당연시되는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승진 트랙에서 조용히 밀려난다는 것을 이 사람은 이미 여러 선례를 통해 알고 있다. 이 모든 조건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지금은 아니다"라는 결론은 무능한 판단이 아니라 이 사람이 가진 정보 안에서 가장 정확한 판단이다. 전남의 농촌 지역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부부가 마주한 계산식은 항목 수부터 다르다. 주거비와 경쟁 강도가 낮은 만큼, 계산식이 가리키는 답도 다르게 나온다. 같은 나라 국민이지만 서로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는 한국이라는 한 나라 안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대만과 홍콩이 같은 궤적을 그리는 순간, 이야기는 한국 정부의 무능이라는 설명을 벗어난다.

세 사회는 공통적으로 20세기 후반 압축적 산업화를 거쳤다. 한 세대 만에 농업사회에서 첨단 제조업·금융 사회로 건너뛰었다는 뜻이다. 서구 사회가 100년에 걸쳐 통과한 도시화, 교육 확대,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이라는 변화를, 이 세 사회는 30~40년 안에 압축해서 겪었다. 문제는 제도와 규범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데 있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노동시장 참여율은 서구 수준까지 빠르게 따라잡았는데, 가족 안에서의 성 역할 규범, 장시간 노동 문화, 입시 경쟁 구조는 산업화 이전 세대의 틀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공적 영역의 근대화 속도와 사적 영역의 근대화 속도 사이에 생긴 간극. 이것이 압축적 근대화가 필연적으로 남기는 부채다.

정책 실패는 이 부채의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예산을 얼마나 쏟아붓든, 몇 년 안에 규범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규범은 세대 단위로 움직인다. 반면 정책의 임기와 예산 주기는 5년 단위다. 애초에 시간의 스케일이 맞지 않는 두 가지를 같은 무대 위에 올려놓고, 왜 정책이 규범을 못 이기냐고 묻고 있었던 셈이다.

돈을 더 쓴 나라, 다르게 쓴 나라

한국만 이 실험을 한 게 아니다. 헝가리는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16년간 밀어붙인 나라로 꼽힌다. 두 자녀를 낳겠다고 약속하면 무이자로 목돈을 빌려주고, 약속을 못 지키면 벌금성 이자를 물리는 방식까지 동원했다. 결과는 2010년 1.25명에서 2020년 1.59명까지 오르는 반짝 반등이었다가, 이후 다시 주저앉아 2025년 1.31명으로 돌아왔다. BBC가 이 사례를 취재하며 인터뷰한 부다페스트의 한 여성은 정책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필요한 건 교육과 의료 체계의 개선이지, 출산 자체에 걸린 현금이 아니라고.

같은 유럽 안에서 스웨덴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스웨덴 정부 관계자가 밝힌 원칙은 단순하다. 스웨덴에는 이름 붙은 출산장려정책이 따로 없다. 노동 가능한 모든 인구가 노동에 참여한다는 사회복지 원칙 안에, 가족정책과 보육정책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육아휴직의 상당 부분이 아버지에게 강제로 할당되고, 보육시설은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으로 존재한다. 독일도 비슷한 길을 따라갔다. 2000년대 초반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출산율이 떨어지자, 독일은 스웨덴식 모델을 참고해 오후 4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전일제 학교를 확충했다. 2002년 16.3%였던 전일제 학교 비중은 2020년 71.5%까지 늘었다. 독일의 합계출산율은 이후 1.3명대의 바닥을 벗어나 1.5명대로 올라섰다.

두 대륙, 두 접근의 차이는 명확하다. 헝가리와 한국은 계산식의 비용 항목—현금, 대출, 바우처—을 조정했다. 스웨덴과 독일은 계산식 자체를 바꿨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여성 한 사람의 경력과 시간을 독점적으로 잡아먹지 않도록, 돌봄을 사회와 남성 배우자에게 강제로 재분배하는 쪽을 선택했다. 조정 실패 게임의 언어로 옮기면, 전자는 균형점 위에서 참가자들에게 약간의 인센티브를 얹어준 것이고, 후자는 균형점 자체를 다른 위치로 옮겨버린 것이다.

이 차이가 아시아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스웨덴과 독일의 개입은 이미 존재하던 상대적으로 평등한 젠더 규범 위에서, 제도가 그 규범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반면 한국·대만·홍콩이 물려받은 것은 압축적 근대화가 남긴 규범과 제도 사이의 낙차 그 자체다. 같은 처방을 쓰더라도 처방이 놓이는 토양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육아휴직 제도의 서류상 관대함으로는 한국이 이미 유럽 상당수 국가를 앞선다. 문제는 그 제도를 실제로 쓸 수 있느냐, 썼을 때 직장에서 불이익이 없느냐, 그리고 남성이 그 제도를 여성만큼 자연스럽게 쓰느냐다. 제도의 존재와 제도의 작동은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해결과 적응 사이

정책이 조정 실패를 뒤집을 수 없다면,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조정의 균형점 자체를 흔들 만큼 파격적인 개입—예를 들어 육아휴직을 남녀 모두에게 의무화하거나, 주 4일제와 결합한 노동시간 자체의 전면 재편처럼, 개인의 계산식에서 비용 항목이 아니라 계산식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개입이다. 다른 하나는 인구 감소를 전제로 사회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정년 연장과 고령 인력의 재고용, 이민 확대를 통한 노동력 보충, 지역 통폐합을 통한 행정 효율화. 저출산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저출산이 만든 인구 구조에 “적응"하는 쪽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선택지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정책 실패는 이 둘을 뒤섞은 채 어느 쪽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에 가깝다. 조정의 균형점을 흔들 만큼 파격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인구 감소를 전제로 한 구조 재설계에 본격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낮아지는 비용 항목 몇 개를 조금씩 건드리면서, 균형 자체는 그대로 둔 채 결과만 바뀌기를 기다려온 18년이었다.

2025년의 반등—0.75명에서 0.80명으로—을 두고 정책 효과가 드디어 나타났다는 해석과, 결혼 적령기 인구 규모가 일시적으로 컸을 뿐이라는 해석이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쪽이 맞든, 이 반등이 조정의 균형점 자체를 이동시킨 결과인지, 아니면 그 균형점 위에서의 우연한 요동인지는 지금 시점에서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개인들은 잘못된 계산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은 각자의 조건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답을 골랐을 뿐이다. 국가가 손실이라고 부르는 그 숫자는, 그 국가를 구성하는 수많은 개인들이 내린 정확한 판단들의 합이다.

그렇다면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부르는 것과 “적응해야 할 조건"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그 경계를 정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 계산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은 조건을 계산하고 있는가.


참고자료
  1. 국가데이터처, 2025년 출생·사망통계(잠정) 결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
  2. 통계청, 2025년 출생·사망통계(잠정) 표10·표11 (2026.02.25)
  3. 국회예산정책처, 김지영, 「저출산 대책은 왜 실패했는가?」, 예산정책연구 13(3), 2024
  4. 국회도서관 국가전략정보포털,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
  5. 일요신문, 「380조 원 써서 '0.72명'…저출산 예산 어디로 갔나」, 2024
  6. 전국인력신문, 「저출산 반등의 착시, 정책 설계부터 다시 짜야 한다」, 2026
  7. 뉴스1, 「한국만 그런게 아니네…'합계출산율 1' 미만 싱가포르·대만·홍콩의 대책은?」, 2024
  8. 나무위키, 「대한민국/출산율」 및 「출산율」 문서
  9. 상담모아, 「2026 한국 출산율 - 2025년 0.80명 현황·원인·지역별 분석」
  10. 김수영, 「초저출생 사회, 여성은 왜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하는가」,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11. 최은영 외, 「한국의 저출산 관련 사회경제적 요인과 정책여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12. 최선영, 「여성 고용과 출산 — 최근 연구동향과 향후 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13. KDI 한국개발연구원,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 KDI FOCUS
  14. McDonald, P. (2000), 'Gender Equity in Theories of Fertility Transition', Population and Development Review
  15. MBC, 「2025년 합계출산율 0.8명 넘을 듯‥2026년 새해엔 더 높아질까?」, 2026
  16. 아주경제, 「'아이 낳으면 돈 준다'…헝가리 16년 실험, 출산율 반등은 없었다」, 2026 (BBC 보도 인용)
  17. 데일리안, 「한국보다 두 배…독일·프랑스·스웨덴 저출산 극복 해법은」, 2024
  18. 이코노믹리뷰, 「저출산 '대표'국가들 어떻게 탈출했나, 그리고 한국은」, 2018
#asia-fertility-rate#korea-birth-rate-2025#ultra-low-fertility#demographic-collapse-asia#gender-equity-fertility#korea-population-crisis#taiwan-hongkong-fertility#fertility-policy-failure#compressed-modernity#east-asia-birth-rate-comparison

Recommended for You

구글에서 '핵심인재'로 찍히면 회사 생활이 편해질까

구글에서 '핵심인재'로 찍히면 회사 생활이 편해질까

9 min read --
사이다 vs 스프라이트: 120년 탄산 전쟁사

사이다 vs 스프라이트: 120년 탄산 전쟁사

4 min read --
행동경제학을 쓰는 순서 — 기준점, 계좌, 선택지, 그리고 설계자

행동경제학을 쓰는 순서 — 기준점, 계좌, 선택지, 그리고 설계자

3 min read --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 실증단지, 1000억짜리 온실의 두 얼굴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 실증단지, 1000억짜리 온실의 두 얼굴

6 min read --
FSD 라이트 부적합 판정, 문제는 타이밍이다

FSD 라이트 부적합 판정, 문제는 타이밍이다

4 min read --
합리적 선택, 정말 항상 최선일까? 잼 실험이 말해주는 것

합리적 선택, 정말 항상 최선일까? 잼 실험이 말해주는 것

6 min read --

Advertisemen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