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장 한구석에는 늘 노란 참치캔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출출할 때 밥에 비벼 먹거나 김치찌개에 넣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서민 반찬이다.
그런데 2025년 1월, 이 흔한 생선이 완전히 다른 얼굴로 뉴스에 등장했다.
도쿄 도요스 수산시장의 새해 첫 경매에서 276kg짜리 참다랑어 한 마리가 2억 700만 엔, 우리 돈으로 약 19억~20억 원에 낙찰된 것이다. 경매 기록이 남아 있는 1999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었다. 최고 기록은 2019년의 3억 3,360만 엔짜리 참치였다.
같은 생선인데 왜 한쪽은 천 원짜리 캔이고 다른 쪽은 수십억짜리 횟감일까.
이 기사 저 기사 뒤져보니, 답은 생선 자체가 아니라 인류가 이 생선을 다루는 기술에 있었다.
병조림과 냉동, 두 기술이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참치의 가치를 밀어붙인 결과가 지금의 두 얼굴이다.
| 시대 | 사건 |
|---|---|
| 신석기 시대 |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참치뼈 발견 |
| 고대 로마 | 지중해 참치 어업·가공, 조미료 ‘가룸’ 교역 |
| 1804년 | 니콜라 아페르, 나폴레옹의 현상금 걸고 병조림 기술 발명 |
| 1903년 | 미국 캘리포니아, 정어리 대신 잡힌 참치로 첫 참치 통조림 생산 |
| 1957년 | 한국 최초 원양어선 지남호, ‘참치’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어획 |
| 1969년 | 김재철, 동원산업 창업 |
| 1970년 | 일본 긴키대학, 참다랑어 완전양식 연구 착수 |
| 1971년 | 주인용, 시전사를 사조산업으로 사명 변경 |
| 1982년 | 동원산업, 국내 최초 참치캔 ‘동원참치’ 출시 |
| 2002년 | 긴키대학, 32년 만에 세계 최초 참다랑어 완전양식 성공 |
| 2025년 | 도요스 새해 첫 경매, 2억 700만 엔(약 19억~20억 원) 낙찰 |
표: 참치와 인류의 관계, 신석기부터 완전양식까지
신석기 한반도부터 로마까지, 참치는 왜 문명의 척도였을까
거대한 몸집에 시속 70~90km로 헤엄치는 참다랑어를 맨손 어로 기술로 잡는다는 건, 그 사회가 상당한 항해술과 조직력을 갖췄다는 증거였다.
부산 영도의 동삼동 패총에서 신석기 시대 유물과 함께 참치뼈가 나왔는데, 이는 우리 선조들이 이미 먼바다로 나가 참치를 사냥할 수 있는 배와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고대 로마도 만만치 않았다.
로마 어부들은 지중해로 나가 참치를 잡았고, 해안가 수백 곳의 가공 공장에서는 소금에 절인 참치를 제국 전역으로 실어 날랐다.
특히 참치 내장을 발효시켜 만든 어장 ‘가룸(Garum)‘은 로마인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조미료였다. 화산재에 묻힌 폼페이 유적에서까지 가룸 항아리가 나올 정도로, 참치는 로마의 경제와 식문화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나폴레옹의 현상금이 만든 참치 통조림의 탄생
참치를 아무 때나 꺼내 먹을 수 있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었다.
19세기 초, 병사들에게 신선한 식량을 오래 공급할 방법이 필요했던 나폴레옹은 식품 장기 보존 기술에 현상금을 걸었다. 파리의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는 음식을 유리병에 넣고 밀봉한 뒤 끓는 물에 가열하면 상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해 ‘병조림’ 기술을 완성했다. 세균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경험만으로 살균과 밀봉의 원리를 터득한 셈이다.
시간이 흘러 1903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원료 부족에 부딪혔다.
그물에 정어리 대신 걸려든 날개다랑어를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통조림에 담았는데, 익힌 살이 닭고기처럼 담백하고 부드러웠다. 뱃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흰 살에 순한 맛을 내는 날개다랑어를** ‘바다의 닭고기(Chicken of the Sea)’**라고 부르는 말이 돌고 있었는데, 이 별명이 훗날 참치 통조림 브랜드 이름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참치 통조림은 참호 속 병사들에게 저렴하고 영양가 높은 단백질원으로 대량 군납됐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국인의 일상 식탁으로 옮겨갔다.
식품 브랜드의 탄생 신화는 알고 보면 살짝 다르게 포장된 경우가 흔하다.
트레이더 조스의 창업 신화를 신문기사 두 장으로 설명하는 이야기도 실제로 뜯어보면 결이 다르다. 참치 통조림 역시 ‘우연한 사고 하나가 브랜드명까지 한 번에 만들었다’는 식으로 단순화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뱃사람들의 오래된 말버릇이 산업으로 넘어가며 굳어진 쪽에 가깝다.
동원참치와 사조참치, K-참치 신화는 어떻게 쓰였나
미국에서 시작된 참치 통조림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상륙했고, 이 시장을 양분한 두 인물이 있다. 동원의 김재철과 사조의 주진우다.
원양어선 선장 출신인 김재철은 35세이던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담보도 없이 ‘캡틴 킴’이라는 신용 하나로 일본에서 배 두 척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전환점은 미국 하버드대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왔다. “국민소득 2천 달러가 넘는 국가에서는 참치가 대중화된다"는 이론을 접한 그는, 마침 2천 달러 문턱을 넘던 한국 시장을 떠올렸다.
그렇게 1982년, 전량 수출하던 참치를 국내용 캔으로 만든 ‘동원참치’가 나왔다.
초기 판매가 부진하자 전 직원이 시식 행사에 매달렸고, 특히 참치 김치찌개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한국인의 밥상에 안착시켰다. 나도 어릴 때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참치 김치찌개를 잊지 못하는데, 그 맛의 시작이 한 경영인의 판단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반대편의 주진우는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다른 진로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1979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29세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았다. 회사의 뿌리는 아버지 주인용이 세운 ‘시전사’로, 1971년 사조산업으로 사명을 바꾼 곳이다. 바다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주진우는 위기에 놓인 기업들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다. 사조해표, 사조대림, 오양수산을 잇달아 인수하며 종합식품그룹으로 방향을 틀었다.
| 구분 | 동원그룹(김재철) | 사조그룹(주진우) |
|---|---|---|
| 창업주 배경 | 원양어선 선장 출신 | 정치학 전공, 2세 승계 |
| 창업 계기 | 현장 경험에서 시장을 찾음 | 부친 별세로 갑작스레 승계 |
| 핵심 전략 | 국내 참치캔 시장 창출 | 인수합병으로 규모 확장 |
| 리더십 | 현장형 | 전략가형 |
표: 동원과 사조, K-참치 신화의 두 성장 모델
두 창업사를 나란히 놓고 보면, 창업 1세대의 현장 감각과 승계 2세대의 인수합병 전략이라는 한국 식품산업의 두 성장 문법이 참치 캔 하나에 그대로 겹쳐 있다.
참고로 브랜드 라이벌 구도를 다룬 글을 하나 더 보고 싶다면 사이다 vs 스프라이트의 120년 탄산 전쟁사도 비슷한 각도로 흥미롭다.
고양이도 외면했던 참치 뱃살은 어떻게 오도로가 됐나
참치캔이 대중의 식탁을 채우는 동안, 일본에서는 참치 뱃살 ‘토로(トロ)‘가 정반대의 운명을 걷고 있었다. 지방이 많아 쉽게 상하고 비린내가 나던 토로는 불과 100여 년 전 에도 시대만 해도 ‘네코마타기(猫またぎ)’, 즉 고양이도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가는 부위라고 불렸다.
이 천덕꾸러기가 미식의 정점으로 올라선 계기는 입맛의 변화가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동 기술과 전국 단위 저온 유통망, 이른바 콜드체인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원양어선에서 잡자마자 영하 60도로 급속 냉동하면 부패의 원인이던 지방이 오히려 풍미를 그대로 가두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단점이 기술 덕분에 장점으로 뒤집힌 순간이었다.
여기에 일본의 경제 부흥이 기름을 부었다.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더 비싸고 맛있는 걸 찾기 시작했고, 화려한 마블링의 토로는 부와 미식의 상징이 됐다. 매년 1월 도요스 시장의 새해 첫 경매에서 수십억 원짜리 낙찰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참다랑어 완전양식, 참치의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
수요가 폭발하며 남획으로 자원이 줄자, 인류는 ‘사냥꾼’에서 ‘농부’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이 도전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이 일본 긴키(近畿, Kindai)대학이다. 1970년 수산연구소가 참다랑어 ‘완전양식’ 연구에 착수했다. 완전양식이란 인공 부화시킨 치어를 성체로 키워 다시 알을 낳게 하고, 그 알로 다음 세대를 키우는 순환 사이클을 자연산 자원 없이 완성하는 기술이다.
말처럼 쉽지 않았다.
참다랑어는 정온동물이라 체온이 수온보다 3도가량 높고, 소음과 불빛에도 놀라 죽어버릴 만큼 예민한 어종이다. 실제로 국내 양식 초기에는 천둥소리 한 번에 폐사한 사례까지 있었다. 그만큼 알에서 시작해 다음 세대의 알을 받는 데까지 살아남는 개체는 극소수였고, 이 극한의 생존율을 32년째 끌고 간 끝에 2002년 마침내 인공 부화 1세대가 산란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참다랑어 완전양식이었다.
한국도 이 기술 확보에 뛰어들어 2018년 첫 상업 출하에 성공했지만, 대량생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신석기 시대의 참치 사냥이 ‘해양 목축’이라는 새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병조림 기술은 참치를 캔 하나로 대중화했고,
냉동 기술은 같은 생선의 뱃살을 최고급 사치품으로 밀어 올렸다.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두 경우 모두 참치의 가치를 다시 쓴 건 결국 기술이었다. 다음에 찬장에서 참치캔을 꺼낼 때는, 그 안에 신석기 시대부터 이어진 이 기나긴 줄다리기가 함께 들어 있다는 걸 떠올려도 좋겠다.
참고자료
- YouTube, 극한직업 - Extreme JOB 참치 통조림의 탄생 #001 – https://www.youtube.com/watch?v=AT1v2K2Do-I
- 조선일보, 日 새해 첫 참치 경매 나온 276㎏ 참다랑어, 낙찰가 무려 20억 육박 –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5/01/06/XROX7C3ACZFJRGZXHR6OK7DAVM/
- 이데일리, 日새해 첫 참치, 얼마나 크길래…"19억원에 낙찰" – https://edaily.co.kr/News/Read?mediaCodeNo=257&newsId=01364486642035096
- YouTube, 도쿄 첫 참치 경매가 19억 원 넘어…"역대 2번째" [잇슈 SNS] / KBS 2025.01.07. – https://www.youtube.com/watch?v=0UvMqqAbct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통조림(桶조림)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418
- 주간현대, 종합식품기업으로 미래도약…참치원조 동원그룹 이야기 – http://www.hyundaenews.com/28896
- 서울신문, 무급 항해사에서 참치캔 기업 인수까지…동원그룹 김재철의 열성과 도전 – https://m.seoul.co.kr/news/2026/07/20/20260720500067
- 비즈니스포스트, [Who Is ?]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 –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74001
- 뉴시스, 사조산업 연혁(시전사→사조산업 1971년 사명 변경) – https://mobile.newsis.com/view/NISX20250324_0003111006
- 머니투데이, 11년만에 양식 성공 국내산 참다랑어 식탁에 오른다 – https://www.mt.co.kr/economy/2018/06/22/2018062208160017210
- YouTube, 한 마리 20억? 일본의 새해 첫 참치 경매는 왜 비쌀까|지금 이 뉴스 – https://www.youtube.com/watch?v=gZ7b_oi4qIA
- YouTube, 참치는 200년 전에 고양이 먹이었을 뿐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iQMZ-kQYsz4
- YouTube, 참다랑어 양식 성공을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 https://www.youtube.com/watch?v=YA_FX2RdlKU
- KBS뉴스, [취재후] 세계 참다랑어 시장 최후 승자는?…완전 양식 '뻥튀기' 이제 그만 –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16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