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골목 어귀의 파란색 간판 아래로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간다.
누구는 도시락을 데우고, 누구는 택배를 부치고, 누구는 그냥 시원한 캔 하나를 집어 든다. 흔하디흔한 풍경이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여기서 궁금해질 만한 질문이 하나 있다.
이 평범한 가게가 어쩌다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에 끼어드는 존재가 됐을까.
그 답의 절반은 GS리테일이라는 회사의 50여 년짜리 이력서 안에 있다. 전선을 만들던 회사가 슈퍼마켓을 열고, 슈퍼마켓이 편의점을 낳고, 편의점이 앱이 된 과정이다.
나머지 절반은 이 회사가 숱하게 실패하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던 이유고, 이번 글에서 그 두 가지를 같이 따라가 본다.
금성전공에서 럭키슈퍼마켓까지, GS리테일 뿌리는 어디에 있었나
GS리테일의 첫 문장은 편의점이 아니라 전기 공사업체다. 1971년 설립된 금성전공이라는 회사가 그 시작이다.
GS리테일 공식 연혁에 따르면 이 회사는 1974년 을지로 삼풍상가에 ‘럭키슈퍼마켓’ 1호점을 열며 유통업에 처음 발을 들였다. 시장 바구니를 들고 흥정하던 시절, 가격표가 붙은 진열대는 그 자체로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16년 뒤인 1990년, 서울의 한 동네에 ‘LG25’라는 간판이 걸린다. 외국 브랜드를 들여온 게 아니라 국내 자본과 기술로 만든 토종 편의점 1호였다.
2002년에는 LG유통·LG슈퍼센타·LG백화점을 하나로 합치며 몸집을 키웠고, 2005년 LG그룹과 GS그룹이 갈라서면서 이 회사는 ‘GS리테일’이라는 새 이름을 받는다.
유통과 에너지를 맡은 GS, 전자와 화학을 맡은 LG로 사업을 나눈 계열 분리였다.
구씨·허씨 두 가문의 ‘인화’ 경영이 GS리테일에 남긴 것
여기서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GS리테일의 모체인 LG그룹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구씨·허씨 두 가문이 57년간 함께 경영한 회사다. 흔히 “동업은 오래 못 간다"고들 하는데, 이 둘은 그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 사례다.
구씨 가문이 사업 확장을, 허씨 가문이 재무·살림을 맡는 식으로 역할을 나눴고, 그 바탕에는 ‘인화(人和)‘라는 원칙이 있었다.
이 원칙이 왜 GS리테일 이야기에 등장하냐면, 훗날 이 회사가 가맹점주들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에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GS리테일은 가맹점 의료비 지원, 법률 상담 같은 ‘상생’ 프로그램을 오래 운영해 왔는데, 이건 갑자기 튀어나온 ESG 구호가 아니라 두 가문이 반세기 동안 지켜온 신뢰 관계의 연장선에 가깝다.
3세 경영으로 넘어가면서 두 가문은 경영권 다툼 대신 사업 분야를 나눠 각자 갈 길을 갔고, 그 갈라섬조차 ‘아름다운 이별’이라 불릴 정도로 잡음이 적었다.
GS25는 왜 편의점 매출 1위 자리를 지켜왔나
대한민국 편의점의 역사는 사실상 GS25와 CU(운영사 BGF리테일)의 경쟁사다.
두 회사는 접근 방식부터 달랐다. CU는 점포 수를 빠르게 늘리는 쪽을 택했고, GS25는 점포 하나의 매출을 끌어올리는 쪽에 집중했다. 그 결과가 아래 표다.
GS25·CU 편의점 점포 수·매출액 비교 (2019~2023)
| 연도 | 구분 | GS25 | CU |
|---|---|---|---|
| 2019 | 점포 수 | 13,918개 | 13,877개 |
| 2019 | 매출액 | 6조 8,564억 원 | 5조 9,434억 원 |
| 2023 | 점포 수 | 17,390개 | 17,762개 |
| 2023 | 매출액 | 8조 2,457억 원 | 8조 1,948억 원 |
점포 수는 2020년을 기점으로 CU가 앞서기 시작해 2023년에는 372개 차이까지 벌어졌다. 그런데도 매출액에서는 GS25가 계속 1위다.
헤럴드경제 보도를 보면 2019년 9,130억 원이던 두 회사의 매출 격차는 2023년 1,140억 원까지 좁혀졌는데, 이 흐름 자체가 GS25의 전략을 증명한다. 점포를 덜 늘리고도 점포당 매출을 끌어올려 격차를 최대한 방어해 온 셈이다.
‘혜자롭다’부터 ‘나만의 냉장고’까지, GS25를 키운 세 가지 혁신
숫자만으로는 설명 안 되는 부분도 있다.
GS25가 시장 판도를 흔든 상품·서비스 세 가지를 꼽자면 이렇다.
첫째는 도시락이다. 2010년 9월 배우 김혜자의 이름을 건 ‘김혜자 도시락’이 나왔고, 이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이 상품은 7년간 40여 종이 출시되며 누적 매출 1조 원을 찍었다. “와, 이거 정말 혜자롭다!“는 반응이 SNS를 타고 퍼지며 일상어가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광고 문구가 아니라 상품 자체가 신조어를 만든, 흔치 않은 사례다.
둘째는 ‘나만의 냉장고’다. 1+1 행사에서 받은 증정품을 당장 들고 가지 않아도 앱에 보관했다가 원할 때 찾아갈 수 있게 한 서비스로, 2011년 3월 출시됐다. 다만 이 서비스를 두고 “세계 최초"라는 표현이 종종 떠도는데, GS25 측 설명을 보면 정확히는 ‘업계 최초’다. 세계 최초까지는 아니어도 국내 편의점 업계에서 처음 시도한 O4O 서비스였다는 점은 분명하고, 이후 700만 명 넘는 회원을 모았다.
셋째는 협업 상품이다. 메이플스토리, 글로벌 OTT 넷플릭스 같은 인기 IP와 손잡은 한정판들은 편의점을 ‘경험을 파는 공간’으로 바꿔놨다. MZ세대에게 편의점이 단순히 물건 사는 곳이 아니라 소장품을 구하는 곳이 된 배경이다.
왓슨스에서 랄라블라까지, GS리테일이 얻은 실패의 교훈
물론 모든 도전이 성공한 건 아니다.
2019년 ‘GS수퍼마켓’을 ‘GS THE FRESH‘로 리브랜딩하면서 전국 매장을 온라인 배송 거점으로 쓰기 시작했고, 이 전략은 국내 1위 슈퍼마켓 자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됐다.
반면 2018년 H&B 스토어 ‘왓슨스’를 ‘랄라블라’로 바꾼 시도는 잡코리아 기업분석보고서가 지적하듯 ‘올리브영’이라는 압도적 경쟁자를 넘지 못했고, 결국 2022년 사업을 접었다.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교훈이 하나 드러난다.
기존 인프라(매장망)를 살린 확장은 통했고, 명확한 차별화 없이 강자가 있는 시장에 들어간 확장은 실패했다는 것.
거대 기업이라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GS리테일 스스로가 두 가지 사례로 증명한 셈이다.
‘우리동네GS’는 GS리테일을 어디로 데려가나
실패를 딛고 GS리테일이 그린 다음 그림은 온-오프라인 통합이다.
2021년 GS홈쇼핑과 합병해 온·오프라인을 한 회사 안에 두었고, 같은 해 배달앱 ‘요기요’에 투자하며 퀵커머스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2023년에는 편의점·슈퍼마켓·퀵커머스·간편결제를 하나로 묶은 통합 앱 ‘우리동네GS’를 내놨다. 전국 1만 8천여 개 매장이 곧 물류거점이 되는 구조를, 앱 하나로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한눈에 보는 GS리테일 50년 연혁
| 시기 | 주요 사건 |
|---|---|
| 1971~1990 | 금성전공 설립(1971) → 럭키슈퍼마켓 1호점(1974) → LG25 1호점(1990) |
| 2002~2010 | 3사 통합(2002) → GS리테일 출범(2005) → 김혜자 도시락(2010) |
| 2011~2019 | 나만의 냉장고(2011) → 2015년 파르나스호텔 인수 → 랄라블라 리브랜딩(2018) → GS THE FRESH(2019) |
| 2021~2023 | GS홈쇼핑 합병·요기요 투자(2021) → 우리동네GS 출시(2023) |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GS25가 우리 일상에 끼어들 수 있었던 건 화려한 기술 하나 때문이 아니라, 두 가문이 지켜온 신뢰의 습관, 실패를 인정하고 다음 판을 짜는 방식, 그리고 매장 하나하나의 효율을 챙기는 집요함이 쌓인 결과였다. 저 파란 간판 아래를 지날 때, 그 안에 50년치 시행착오가 접혀 들어가 있다는 걸 떠올리면 골목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