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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넘는 미국 다크머니, 어떻게 안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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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스 부통령이 “아내 이름 들먹이지 말라"며 상대 진영에 날을 세웠다는 기사를 보고 미국 중간선거가 꽤 험악하게 돌아가는구나 싶었는데, 같은 날 옆에 걸린 기사 제목이 더 눈에 띄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돈, 이른바 ‘다크머니’가 최소 1조원 넘게 풀렸다는 내용이었다. 네거티브 공방이야 선거 때마다 있는 일이지만, 누가 얼마를 썼는지조차 알 수 없는 돈이 이 정도 규모로 돈다는 게 좀 이상했다. 미국은 선거자금 공개가 원칙 아니었나 싶어서 찾아보니, 합법적으로 공개를 피해가는 경로가 이미 세 가지나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뉴욕타임스가 집계한 숫자부터

뉴욕타임스가 광고 집행 데이터와 선거자금 신고서, 세금 기록을 분석해 내놓은 숫자는 약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3,700억원 규모다. 그것도 “확인 가능한” 액수만 이 정도이고, 다이렉트 메일이나 인플루언서 마케팅, 방문 선거운동원 고용처럼 추적이 어려운 지출은 아예 집계에서 빠졌다니 실제 규모는 이보다 클 가능성이 크다. 그중에서도 공화당·민주당과 각각 연계된 비영리단체 4곳이 4억 6천만 달러 이상을 주무르고 있다는 게 눈에 띈다. 이 단체들은 세법상 ‘사회복지단체’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자금을 집행하는 슈퍼팩(super PAC)과 사무실을 같이 쓰고 같은 정치전략가들이 운영하는, 사실상 한 몸이다.

왜 “공개해야 하는” 돈이 안 걸릴까

미국 선거자금법의 기본 구조는 이렇다. 개인이 특정 후보 위원회에 직접 기부할 수 있는 금액은 선거마다 상한이 정해져 있고, 이 기부금은 누가 얼마를 냈는지 전부 공개된다. 여기까지는 투명하다. 문제는 2010년 연방대법원의 시티즌스 유나이티드(Citizens United) 판결 이후다. 기업과 노조도 특정 후보를 직접 지지하지만 않으면 선거 관련 지출에 무제한으로 돈을 쓸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슈퍼팩이라는 조직이 등장했다. 슈퍼팩은 후보 캠프와 직접 조율은 금지되지만 모금과 지출 한도가 없고, 대신 기부자 명단은 공개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회로가 생긴다. 첫 번째 경로는 기부자 공개 의무가 없는 비영리단체를 앞세워 광고를 내보내는 방식이다. 명목상은 ‘이슈 광고’지만 실제로는 특정 의원을 노골적으로 공격하거나 옹호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두 번째는 이런 비영리단체가 슈퍼팩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슈퍼팩은 자기 기부자는 공개해야 하지만, 그 기부자의 기부자, 즉 원래 돈이 어디서 왔는지는 공개 의무가 없다. 세 번째는 이번 선거에서 특히 늘었다는 ‘팝업 슈퍼팩’이다. 연방 선거 3주 전이 기부자 공개 마감 시한인데, 이 시점 이후 새로 만들어진 슈퍼팩은 선거가 끝난 뒤에야 기부자를 공개하면 된다. 유권자가 투표할 땐 이미 늦은 정보인 셈이다.

메인주 한 곳에서 벌어진 일

이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메인주 사례가 잘 보여준다. 상원 다수당을 가를 수 있는 수전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의 재선 경쟁에는 무려 7,500만 달러 규모의 다크머니 광고가 쏟아졌다. 등록 유권자가 90만명도 안 되는 주에서, 유권자 한 명당 80달러 넘는 돈이 익명으로 뿌려진 셈이다. 콜린스는 연방 예산을 좌우하는 상원 세출위원장이라 이해관계자들이 공을 들일 이유가 충분한 자리다. 흥미로운 건, 유권자는 이 돈의 출처를 모르지만 정작 정치인 본인은 누가 후원했는지 알음알음 알게 된다는 점이다. 콜린스를 도운 한 비영리단체는 그가 지지하는 유일한 후보였는데, 그 단체가 주최한 만찬에 콜린스가 워싱턴에서 직접 참석한 사실도 확인됐다.

같은 주의 하원 선거구에서는 반대 진영을 겨냥한 개입도 있었다. 은퇴를 선언한 민주당 하원의원 자리를 놓고, 공화당 쪽 자금이 민주당 경선에 몰래 개입해 상대적으로 강한 후보를 떨어뜨리는 데 50만 달러 가까이 썼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부자를 선거 후에야 공개하는 슈퍼팩과, 공화당 쪽 실무자를 숨긴 유한책임회사(LLC)를 동원해 “다크머니가 고른 후보"라는 광고로 상대를 공격했고, 결국 그 후보는 수백 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런 식으로 상대 정당 경선에 개입해 약체 후보를 올리는 건 이번 선거에서만 나온 수법도 아니라고 한다. 2022년엔 반대로 민주당이 공화당 경선에 개입한 전례가 있었고, 이번엔 공화당이 같은 수법을 되갚아준 모양새다.

다크머니와 소액 후원은 다른 얘기다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미국 선거에서 화제가 되는 소액 후원 플랫폼, 그러니까 민주당의 액트블루(ActBlue)나 공화당의 윈레드(WinRed)는 다크머니와는 결이 다르다. 이 플랫폼들은 개인 기부자가 신용카드로 몇 달러씩 후보에게 직접 기부하도록 중개하는 서비스이고, 기부자 명단과 금액은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그대로 신고된다. 윈레드는 자체적으로 ‘도관 PAC(conduit PAC)’ 형태를 취하지만, 이 PAC은 어느 후보에게 돈을 보낼지 스스로 정하지 않고 기부자가 지정한 대로만 전달하는 통로 역할만 한다. 즉 소액 후원 플랫폼은 규모가 크더라도 공개된 돈이고, 다크머니는 규모와 무관하게 출처가 감춰진 돈이라는 점에서 애초에 다른 카테고리다.

다만 두 시스템이 같은 정치 생태계 안에서 서로를 자극하는 관계이긴 하다. 액트블루는 2004년부터 20년 가까이 민주당의 압도적인 모금 무기였고, 공화당은 이렇다 할 대응책이 없다가 2019년에야 트럼프 캠프와 공화당전국위원회가 직접 나서 윈레드를 만들었다. 윈레드는 출범 15개월 만에 20억 달러를 처리하며 액트블루가 15년 걸린 기록을 따라잡았다고 한다. 소액 후원 경쟁이 이렇게 격화되는 동안, 정작 선거자금을 감독해야 할 기관은 힘을 잃고 있다는 점도 짚을 만하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는 위원 6석 중 2석만 채워져 있어 정족수 자체가 안 되고, 국세청도 인력 감축 이후 비영리단체의 정치자금 오남용을 사실상 단속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한다.

투명성을 위해 만든 판결이 불투명함을 낳았다

역설적인 대목은 애초에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판결 자체가 ‘투명성’을 전제로 나왔다는 점이다. 당시 다수 의견을 쓴 케네디 대법관은 유권자들이 누가 어떤 정치인을 후원하는지 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견제 장치가 된다고 봤다. 그런데 16년이 지난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됐다. 브레넌센터의 한 선거자금 전문가는 이번 중간선거를 두고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이후 가장 불투명한 중간선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쪽이 사실상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공개를 전제로 만들어진 판결에서 파생됐다는 게 이 이야기의 가장 씁쓸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익명 후원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 전 위원장을 지낸 한 공화당 측 인사는 미국이 원래 ‘연방주의자 논집’ 시절부터 익명의 정치적 발언을 존중해온 전통이 있다며, 특히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일수록 익명으로 목소리를 낼 정치적 가치가 크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민주당 쪽 일부 후원자들도 최근 정부가 정치적으로 반대 성향의 자금줄을 표적 삼는다는 우려 속에서, 익명 후원이 일종의 보호막이 된다고 사적으로 언급한다고 한다. 다크머니를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하기 전에, 이런 입장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공정할 것 같다.

한국 정치자금법과 비교하면

이 구조를 보다 보니 한국은 왜 이런 논란이 상대적으로 덜한지도 궁금해졌다. 한국 정치자금법은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개인 후원금도 국회의원 후원회 기준으로 연간 한도가 정해져 있다. 무엇보다 미국식 슈퍼팩에 해당하는 조직, 즉 특정 후보를 지지하되 후보 캠프와 무관하게 무제한으로 돈을 쓸 수 있는 단체 자체가 한국 법체계에는 없다. 시민단체나 협회가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선거운동은 가능하지만, 그 활동에 쓰이는 자금의 출처와 규모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합법적 통로는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다.

물론 이게 한국 정치자금이 완전히 투명하다는 뜻은 아니다. 후원회를 여러 개 쪼개거나, 정치자금과 무관해 보이는 단체를 통해 우회 지원하는 방식의 논란은 한국에서도 종종 불거진다. 다만 미국처럼 “비영리단체로 등록하면 기부자 공개 의무가 아예 사라진다"는 식의 구조적 사각지대가 법 조문 차원에서 열려 있는 것과, 개별 사건에서 편법이 적발되는 것은 성격이 다른 문제다. 전자는 시스템이 우회를 예정하고 있는 것에 가깝고, 후자는 시스템을 어기는 쪽에 가깝다. 미국 다크머니 논란을 들여다볼수록, 문제의 핵심이 ‘누가 규정을 어겼는가’가 아니라 ‘규정 자체가 이렇게 짜여 있다’는 데 있다는 게 계속 눈에 밟혔다.

결국 남는 질문

1조원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그 돈이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더 눈에 밟힌다. 슈퍼팩을 만든 판결도, 비영리단체의 면세 지위도, 팝업 슈퍼팩의 신고 시한도 각각은 다 나름의 명분이 있는 규정들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겹쳐지는 순간 유권자만 정보 밖으로 밀려난다. 이걸 규제로 막을지, 아니면 익명의 자유로 볼지는 결국 각자 판단의 영역일 텐데, 적어도 지금 미국 유권자들은 그 판단을 내릴 만한 정보조차 충분히 못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참고자료
  1. New York Times / GV Wire, 'Millions of Dollars in Secret Spending Could Upend the 2026 Midterms', 2026.08.31
  2. 조세금융신문, '美 중간선거 휘젓는 정체불명 다크머니…최소 1조4천억원', 2026.08.31
  3. 연합뉴스, '美 중간선거는 돈잔치일까…출처불명 다크머니 횡행', 2026.09.01
  4. 위키백과, '2026 United States elections'
  5. 위키백과, 'Super PAC'
  6. 위키백과, 'WinRed'
  7. 나무위키, '슈퍼팩'
  8. 위키백과, '슈퍼팩'
  9. WinRed 공식 About 페이지
  10. VOA 코리아, '연방선거운동법' 설명 기사
#미국중간선거#다크머니#슈퍼팩#시티즌스유나이티드#ActBlue#WinRed#선거자금법#501c4#팝업슈퍼팩#정치자금투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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