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얼마 전에 오사카 여행 다녀오면서 편의점 봉투를 하나 들고 왔다. 세븐일레븐 도장이 찍힌 봉투 안에 든 게 하필 컵라면이었는데, 뚜껑에 큼지막하게 “삼계탕"이라고 한글로 박혀 있었다. 일본 편의점에서 한글 표기 컵라면을 산 것도 신기했지만, 더 이상한 건 그 다음이었다. 국내엔 안 판다고, 이거 구하려고 일본까지 갔다 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라면 하나 사겠다고 비행기를 타는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찾아보니 이게 벌써 몇 달째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썩이게 한 물건이더라.
삼계탕 사발면이 뭐길래 이렇게 화제인가
정체는 농심재팬이 만든 컵라면이다. 정확히는 농심의 일본 현지 법인이 지난 6월 초 일본 전역 세븐일레븐과 대형마트를 통해 내놓은 신제품으로, 삼계탕의 닭육수와 인삼 향을 사발면 형태로 구현했다. 부대찌개·곰탕 사발면과 함께 세 가지가 동시에 나왔는데, 그중 삼계탕이 유독 입소문을 탔다. 일본 현지 판매가는 188엔에서 192.24엔 사이,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600원대 초반쯤 된다.
여기서 핵심은 이거다. 이 제품은 한국에는 정식 출시된 적이 없다. 국내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쿠팡이나 농심몰이 가끔 여는 한정 수량 이벤트뿐이고, 그마저도 물량이 풀리는 족족 몇 분 안에 동나서 다음 이벤트를 기다려야 한다. 물량이 없는 시기엔 당근마켓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정가의 서너 배를 얹어 거래되는 게 지금 이 라면의 실제 유통 구조다. 컵라면 하나가 이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 왜 하필 일본에서, 그것도 안 맵게 나왔나
여기가 좀 뜻밖이다 싶었던 지점이다. 그동안 해외로 나간 K푸드가 승부를 걸던 방식은 대체로 매운맛이었다. 신라면이 세계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것도, 불닭볶음면이 유튜브를 휩쓴 것도 결국 ‘맵다’는 정체성을 앞세운 결과였다. 그런데 삼계탕 사발면은 정반대로 갔다. 매운맛을 아예 빼고 인삼향 닭육수라는, 라면치고는 낯선 조합으로 승부를 봤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게 취재 기사들을 뒤져보니 드러난다. 개발을 맡은 농심 스프개발3팀·면개발팀 연구진이 시제품만 30여 종을 만들며 1년 반 가까이 배합비를 조정했다는 인터뷰를 보면, 목표 자체가 매운맛에 약한 일본인 입맛을 정면으로 겨냥한 거였다. 일본은 원래 컵라면의 본고장이라 현지 소비자 눈높이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시장이고, 거기서 매운맛이라는 무기를 빼고 들어간다는 건 나름 리스크가 있는 선택이었을 텐데, 결과적으론 닭육수 베이스가 일본인 취향과 잘 맞아떨어지면서 통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좀 더 들여다볼 만한 게 있다. 농심 측은 “한국 내 출시 계획은 현재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고, 관련 보도들도 이 제품의 성격을 “일본 시장에서 삼계탕이라는 한국식 보양식의 대중성과 글로벌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것으로 설명한다. 즉 이건 처음부터 한국 소비자를 겨냥한 상품이 아니라, 해외에서 먼저 검증하고 반응을 보는 쪽에 가깝다. 국내에 이미 오뚜기 삼계탕이나 각종 삼계탕 즉석식품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자사 라면 브랜드로 국내 삼계탕 시장까지 건드릴 이유가 크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이고, 농심이 공식적으로 이 계산까지 밝힌 적은 없다.
국내엔 왜 정식으로 안 풀고 찔끔찔끔 파나
그런데 신기한 건, 국내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는 점이다. 지난 6일 쿠팡이 삼계탕 사발면 6개 묶음을 6,980원에 사전예약으로 열었는데 하루 만에 마감됐고, 12일엔 농심몰이 ‘삼계탕 건강하닭 세트’ 1,000세트(사발면 6개, 육개장사발면 6개, 닭다리후라이드 4개 구성, 24,200원)를 풀었는데 이번엔 10분 만에 동났다는 보도도 나왔다. 재입고 알림을 미리 걸어두고 시간 맞춰 접속하는 이른바 오픈런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이 정도면 라면치고는 꽤 극단적인 수요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국내 반응을 확인했으면 정식 출시로 넘어갈 법도 한데, 농심은 여전히 한정판매만 반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스타벅스 해외 한정 MD나 포카리스웨트 일본 한정판이 국내에서 화제가 되는 패턴과 비슷해 보인다. 희소성 자체가 마케팅 자산이 되는 구조랄까. 한 번 정식 유통망에 풀어버리면 편의점 매대에 늘 있는 흔한 컵라면이 되어버리지만, 어쩌다 한 번 여는 한정 수량 이벤트로 남겨두면 매번 오픈런과 화제성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다. 정식 출시가 매출을 극대화하는 길이라면, 지금 방식은 관심을 극대화하는 길에 가깝다 — 어느 쪽이 농심 입장에서 더 남는 장사인지는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정가 1,500원짜리가 왜 5배 웃돈에 팔리나
여기서 숫자를 한번 직접 맞춰봤다. 일본 현지 판매가는 188~192.24엔인데, 8월 말 기준 원/엔 환율이 100엔당 860원대까지 떨어진 걸 감안하면(엔저가 꽤 진행된 시점이다) 원화로 환산했을 때 개당 1,600원 안팎이 나온다. 국내 한정판매 가격은 쿠팡 사전예약 기준 개당 1,163원, 이후 재판매분은 개당 1,497원 수준이었으니 일본 현지가와 비교해도 딱히 싸게 들여온 게 아니다. 오히려 원화 기준으로는 살짝 낮은 정도다.
그런데 국내 정식 출시가 전혀 없던 시기엔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개당 7,000~8,000원에 거래됐다. 정가 대비 5배 안팎이다. 국내 한정판매가 두 차례 풀린 뒤로는 그 웃돈이 개당 4,000~5,000원 선으로 조금 줄었는데, 그래도 정가의 서너 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즉 이 프리미엄은 원가나 관세, 유통비 같은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환율이나 물류비를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라면 한 개에 5배씩 붙을 이유는 없다. 순수하게 ‘지금 못 사면 다음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희소성 자체가 가격이 되어버린 셈이다.
곰탕·부대찌개 사발면과 묶인 ‘한국의 맛’ 시리즈는 뭘 노리나
삼계탕만 단독으로 나온 게 아니라 곰탕, 부대찌개까지 세 종류가 한 번에 출시됐다는 것도 짚어볼 만하다. 예전에 일본 고용 시장의 겉과 속을 뜯어봤던 글에서도 느꼈지만, 일본 시장을 겨냥한 기업들의 전략은 겉보기와 실제 계산이 다른 경우가 꽤 많다. 세 메뉴 다 한국인한테는 익숙한 국물 요리인데, 공통점은 하나같이 맵지 않다는 거다. 육개장사발면이나 신라면처럼 매운맛을 앞세운 기존 수출 전략과는 결이 다른 셈인데, 아마 매운맛 라인은 이미 일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그 다음 단계로 순한 맛 한식 라인을 시험하는 그림이 아닐까 싶다. 곰탕이나 부대찌개 쪽은 삼계탕만큼 화제가 되진 않았다는 게 관련 기사들 논조인데, 아무래도 삼계탕 쪽이 ‘몸보신 음식’이라는 한국적 맥락이 강하다 보니 SNS에서 이야깃거리가 더 잘 붙은 것 같다.
맛은 진짜 삼계탕에 가깝나
이 부분은 내가 직접 먹어본 게 아니라서 단정하긴 조심스럽다. 다만 국내 한정판매 이후 올라온 후기들을 보면 대체로 “냄새부터 삼계탕이다”, “면이 기존 사발면보다 좀 굵다”, “국물에 밥 말아 먹는 게 낫다"는 반응이 반복해서 나온다. 다들 육개장사발면과 비교하는 걸 보면 사발면 특유의 면발 굵기 차이도 체감 포인트인 모양이고, 인삼향이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유튜버 시식 영상 쪽 반응은 대체로 호평 쪽으로 기운다고 하는데, 이건 표본이 한정판매 때 발 빠르게 구한 사람들 위주라 일반화하긴 애매하다.
다음 오픈런은 언제일까
지금까지 두 차례 한정판매가 다 순식간에 끝난 걸 보면, 농심이 이 패턴을 당분간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식 출시 계획이 없다는 입장도 아직 안 바뀌었고. 개인적으로는 이게 오래 갈 전략인지는 잘 모르겠다. 희소성으로 화제를 만드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반복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피로감이 쌓일 수도 있을 것 같고, 반대로 매번 성공적으로 완판되는 걸 보면 농심으로서는 굳이 정식 유통으로 바꿀 유인이 당장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다음 재입고 알림이 언제 뜰지, 그때도 몇 분 만에 끝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한정판매 오픈런이 만드는 이런 유통 왜곡은 라면에만 있는 얘기는 아니어서, 네이버와 쿠팡의 물류 경쟁을 다룬 글에서 짚었던 재고·물량 조절 문제와도 결이 이어진다.
참고자료
- https://v.daum.net/v/QSr7EZZvC3
- https://v.daum.net/v/20260820104128894
- https://www.wikitree.co.kr/articles/1142707
- https://www.radioseoul1650.com/archives/144167
- https://www.theguru.co.kr/news/article.html?no=102531
- https://namu.wiki/w/%EB%86%8D%EC%8B%AC%20%EC%9C%A1%EA%B0%9C%EC%9E%A5
- https://namu.wiki/w/%EC%8B%A0%EB%9D%BC%EB%A9%B4
- https://ko.tradingeconomics.com/japan/currency
- https://kr.investing.com/currencies/jpy-krw
- https://www.review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