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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장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시장이 우리를 삼켜버렸다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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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장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시장이 우리를 삼켜버렸다

A vast empty trading floor, shot from above at dusk. Rows of dark monitors, abandoned workstations, a single distant figure silhouetted against glowing screens. The scene evokes the quiet after a revolution — not apocalyptic, but changed beyond return. Style: editorial photography, deep shadows, cool blue-gray tones with warm amber accent from the screens
A vast empty trading floor, shot from above at dusk. Rows of dark monitors, abandoned workstations, a single distant figure silhouetted against glowing screens. The scene evokes the quiet after a revolution — not apocalyptic, but changed beyond return. Style: editorial photography, deep shadows, cool blue-gray tones with warm amber accent from the screens

마지막 10분이 전부다.

매일 오후 3시 50분,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여섯 시간 동안 졸던 시장이 갑자기 깨어난다. 주문이 쏟아지고, 거래량이 치솟고, 가격이 움직인다.

선진 유럽 시장에서는 하루 전체 거래량의 35%가 이 마지막 마감 동시호가 세션 하나에서 처리된다. 미국도 15%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숫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 쏠림을 만든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다. 헤지펀드의 조작도 아니다.

인덱스 펀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장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시장 자체의 구조를 바꿔버렸다.

패시브 투자가 세상에 나온 건 1976년이다.

존 보글이라는 사람이 뱅가드라는 회사를 통해 개인투자자용 인덱스 펀드를 처음 출시했을 때, 월스트리트의 반응은 냉소였다.

**“보글의 어리석음(Bogle’s Folly)”**이라고 불렸다. 시장을 그냥 복제한다는 게 무슨 투자냐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2024년, 패시브 펀드의 운용자산이 액티브 펀드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 세 회사가 미국 상장 기업 시가총액의 20% 이상을 보유하고, 주주총회 의결권의 25%를 행사한다.

S&P 500 기업의 88%에서 이들 세 곳이 단일 최대주주다.

냉소를 받았던 그 아이디어가, 지금 자본주의의 지배구조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이 글은 패시브 투자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숫자로 증명됐다.

이 글은 그 훌륭함이 충분히 커졌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 혁명의 논리는 옳았다

A split composition: left side shows a 1970s-era financial analyst surrounded by paper reports, ticker tape, and adding machines; right side shows a minimalist modern interface displaying a single index fund return graph climbing upward.
A split composition: left side shows a 1970s-era financial analyst surrounded by paper reports, ticker tape, and adding machines; right side shows a minimalist modern interface displaying a single index fund return graph climbing upward.

먼저 왜 패시브 투자가 이겼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이유가 지금의 역설을 만든 뿌리이기 때문이다.

1965년, 시카고 대학의 유진 파마는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전문가들이 시장을 이길 수 있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대답은 거의 도발적이었다.

시장 가격은 이미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그 정보를 분석해서 초과 수익을 내려는 시도는, 원칙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 효율적 시장 가설이다.

폴 새뮤얼슨은 이 이론을 실무에 적용했다.

1974년 그는 투자 전문가들의 성과를 분석한 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S&P 500 지수를 그냥 복제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라. 그게 대부분의 액티브 펀드보다 낫다.’

보글이 그 말을 들었다. 2년 뒤 뱅가드 첫 인덱스 펀드가 나왔다.

그로부터 수십 년간 데이터가 쌓였다. 그리고 데이터는 냉혹했다.

S&P 다우존스가 매년 발표하는 SPIVA 스코어카드는 같은 결론을 반복해서 내놓는다.

10년이라는 기간을 놓고 보면, 미국 대형주 액티브 펀드의 84%가 S&P 500 지수를 이기지 못한다.

국제 주식은 85%, 신흥국은 87%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숫자는 더 나빠진다.

왜인지는 산수로 설명된다.

모든 투자자의 수익 합계는 시장 수익률과 같다.

액티브 펀드는 여기에 수수료를 부과한다. 따라서 수수료를 제한 후의 평균적인 액티브 투자자는, 반드시 시장 평균을 밑돈다. 이것은 통계적 경향이 아니라 수학적 필연이다.

윌리엄 샤프가 이것을 1991년에 논문 한 편으로 증명했다.

그 논문의 제목은 단 세 글자였다: “The Arithmetic of Active Management.”

비용이 결정한다.

뱅가드의 2025년, 2026년 연속 수수료 인하 이후 주요 인덱스 펀드의 보수는 연 0.03~0.06% 수준이다.

같은 자산을 담은 액티브 펀드는 평균 0.39%를 받는다.

1억 원을 20년 동안 운용한다고 치면, 이 차이만으로 수천만 원이 갈린다.

개인 투자자에게 패시브 투자는 혁명이었다.

복잡한 분석도, 탁월한 직관도, 운도 필요 없다. 그냥 지수를 사면 된다. 전문가의 80%보다 잘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이, 지금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있다.

2. 유동성이 마지막 10분에 몰리다

이야기를 잠깐 뒤로 돌리자.

당신이 인덱스 펀드 매니저라고 상상해보자. 당신의 임무는 단순하다.

S&P 500 지수를 최대한 정밀하게 복제하는 것. 지수와의 격차, 즉 추적 오차(Tracking Error)를 0에 가깝게 유지하는 것이 당신의 핵심 지표다.

그러면 당신은 언제 주식을 사고 팔아야 하는가?

답은 하나다. 지수가 종가로 계산되는 그 순간에, 당신도 종가로 거래해야 한다.

오전 10시에 사면 그날 오후 종가와 당신의 매수 가격 사이에 오차가 생긴다.

이것이 추적 오차다. 패시브 펀드에게 추적 오차는 실패다.

따라서 패시브 매니저는 마감 동시호가(Market-on-Close, MOC)에 거래한다. 반드시.

문제는 패시브 펀드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패시브 자산이 커질수록, 마감 직전 거래량이 늘어난다.

->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마감 세션의 유동성이 좋아진다.

-> 유동성이 좋아지니, 다른 투자자들도 마감에 거래하기 시작한다.

-> 그러면 마감 거래량이 더 늘어난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유동성이 유동성을 부른다(Liquidity begets liquidity)”**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피드백 루프처럼 들린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선진 유럽 시장에서 하루 거래량의 35%가 마감 동시호가 한 세션에 집중된다는 말을, 다른 방향에서 읽으면 이렇게 된다: “장중 6시간의 유동성이 비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 거래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현상의 실제 결과를 이미 경험했을 것이다.

오전에 주문을 내면 매수-매도 스프레드가 넓다. 호가창에 물량이 없다. 내 주문 하나가 가격을 움직인다.

-> 이것이 단순한 하루의 이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추세라는 것이, 지금 자본시장 연구자들이 공통으로 도달하고 있는 결론이다.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기능의 쇠퇴다.

과거의 마감 동시호가는 하루 동안 시장 참여자들이 각자의 분석과 판단으로 거래한 결과를 집약하는 장이었다.

지금의 마감 동시호가는 다르다.

패시브 펀드와 그에 연계된 자본이 “오늘 지수는 여기서 끝나야 한다"는 수급 압력을 만들어낸다.

기업의 가치 변화와 무관하게, 순전히 인덱스 추종 자금의 물리적 힘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더 극단적인 순간이 있다.

분기마다 지수가 재구성(Reconstitution)되는 날이다.

지수에서 빠지는 종목을 패시브 펀드 전체가 동시에 팔고, 새로 들어오는 종목을 동시에 산다.

이날 해당 종목의 가격은 기업과 아무 관계없는 이유로 수 퍼센트씩 움직인다.

이 가격으로 거래를 강요당하는 패시브 펀드의 실제 성과는, 백테스트에서 보이는 지수 성과보다 낮아진다.

이것이 패시브 투자의 첫 번째 역설이다.

추적 오차를 줄이려는 행동이, 집단적으로는 추적 오차를 만들어낸다.

3. 시장을 움직이는 자와 시장을 만드는 자

An aerial view of a dense city grid at nigh
An aerial view of a dense city grid at nigh

패시브 투자가 커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술적으로는 간단하다. 더 많은 자본이 인덱스에 따라 움직인다.

기업의 실적이나 전망을 분석하지 않고, 지수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다. 지수에 포함되어 있는 한 팔지 않는다.

이것이 충분히 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버드 대학과 시카고 대학의 연구자들이 **“비탄력적 시장 가설(Inelastic Markets Hypothesis)”**을 제안했다.

핵심 주장은 주식 시장의 수요 곡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탄력적이다. -> 소액의 기계적 자금 유입만으로도 주가는 펀더멘털 가치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패시브 자금은 그 기계적 유입의 가장 거대한 형태다.

더 정확한 숫자가 있다.

패시브 소유 비중(Passive Ownership)이 1표준편차 증가할 때, 해당 종목의 급등 가능성은 19.4%포인트, 급락 가능성은 19.2%포인트 올라간다.

통상적인 대형주의 역사적 평균 꼬리 위험이 23~26%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패시브 소유 비중 하나가 주가 변동성의 상당 부분을 설명하는 변수가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주식 간의 상관관계다.

1962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 주식들의 평균 쌍별 상관계수는 5.7%였다.

A라는 주식과 B라는 주식이 함께 움직일 확률이 그 정도였다.

패시브 투자가 대중화된 이후인 1998년부터 2020년까지, 이 숫자는 13.4%로 올라갔다. 두 배 이상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분산 투자의 논리는 상관관계에 기반한다.

서로 무관한 자산을 섞어 보유하면 하나가 내려갈 때 다른 것이 버텨준다.

하지만 패시브 인덱스 펀드에 대규모 자금이 들어오고 나갈 때, 인덱스에 포함된 모든 종목이 펀더멘털 이유가 없는데도 동시에 오르고 동시에 내린다.

결과적으로 모든 종목을 가지고 있어도, 진짜 의미에서의 분산은 줄어든다. -> 패시브 투자 자체가 시장 전체의 상관관계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개별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손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 시장의 본래 기능은 자원 배분이다.

좋은 기업에 돈이 몰리고, 나쁜 기업에서 자본이 빠져나가는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려면 투자자들이 기업을 분석하고, 그 분석을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

패시브 자금이 시장을 지배할수록, 기업을 분석하는 사람의 비중이 줄어든다.

기업이 좋은 결과를 발표해도, 지수에서 빠지면 팔린다.

기업이 나쁜 결과를 발표해도, 지수에 남아있으면 계속 보유된다.

가격이 기업의 가치를 말하는 능력, 즉 가격 발견 기능이 약화된다.

이것은 학계의 우려가 아니라 측정된 현실이다.

패시브 소유 비중이 높은 종목일수록 기업 고유의 정보가 가격에 반영되는 속도가 느려지고, 일시적 잡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는 게 계량 연구로 확인됐다.

4. 다섯 번 연속 이겨도 아무 의미 없는 이유

이쯤에서 이렇게 반론할 수 있다.

그래도 패시브가 액티브보다 낫지 않나?

설령 시장이 변형되더라도, 개별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수료 없이 시장 평균을 따르는 게 최선이지 않나?

이 반론은 맞다. 그리고 동시에 충분하지 않다.

SPIVA 데이터는 동일가중(equal-weighted) 방식이다. 각 펀드에 같은 무게를 준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아무도 모든 펀드에 같은 금액을 넣지 않는다. 잘하는 펀드에 돈이 몰린다.

자산가중(asset-weighted) 방식으로 다시 계산하면 숫자가 달라진다.

특히 채권 시장에서 극적으로 달라진다.

동일가중 기준으로는 미국 하이일드 채권 액티브 매니저의 54%가 5년 기준 벤치마크를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자산가중 기준으로는 이 자산의 86%가 벤치마크를 이겼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소수의 탁월한 대형 채권 액티브 펀드가 실제로 큰 차이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채권 시장은 주식 시장과 다르다. 장외 협상, 사모 신용, 파편화된 유동성. 규모와 네트워크를 가진 액티브 운용사가 실질적인 우위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더 중요한 지적이 있다.

SPIVA는 패시브가 얼마나 잘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패시브는 시장 수익률 그 자체다.

액티브의 평균이 시장 수익률보다 낮은 이유는, 80%가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수수료 때문이다.

수수료를 낮추거나 없애면, 액티브 성과의 분포가 달라진다.

2024년, S&P 500 지수 상위 5개 종목이 전체 지수 수익률의 94%를 만든 분기가 있었다.

이 상황에서 액티브 매니저들은 어떻게 해야 했는가?

분산 투자 규정상 엔비디아나 애플을 지수 비중만큼 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니 졌다.

이것은 액티브의 실패가 아니라, 메가캡 집중이라는 시장 구조의 변형이 만든 결과다.

그리고 그 집중 현상 자체가, 패시브 투자의 팽창과 무관하지 않다.

5. 세 개의 회사가 세상을 표결한다

 Three massive identical towers in a financial district
Three massive identical towers in a financial district

비용이 수렴하면 자본도 수렴한다.

패시브 펀드들은 같은 지수를 추종하고, 같은 전략을 쓴다. 차별점은 수수료뿐이다.

가장 낮은 수수료를 제공하는 곳에 자본이 몰리는 건 논리적 귀결이다.

그 귀결의 결과: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이하 빅쓰리)가 미국 패시브 주식형 펀드 자산의 90% 이상을 점유한다.

세 회사의 운용자산 합계는 24조 달러를 넘는다. 미국 GDP의 90%에 육박하는 숫자다.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주주총회 표결을 생각하면 이해된다.

S&P 500 기업의 88%에서 빅쓰리가 단일 최대주주다. 미국 상장 기업 의결권의 25%를 이들이 행사한다.

어떤 정부도 이런 수준의 주주 집중을 가진 적이 없다.

전통적인 주주 자본주의 이론에서 최대주주는 경영진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나쁜 경영진을 바꾸기 위해 위임장 싸움을 한다.

주가가 계속 낮으면 주식을 팔거나, 이사회를 직접 압박한다.

-> 빅쓰리는 이 중 어느 것도 하기 어렵다.

패시브 펀드는 지수 구성이 바뀌지 않는 한 주식을 팔 수 없다.

“출구(Exit) 전략"이 없다. 따라서 경영진을 압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를 처음부터 포기한 상태다.

동시에 의결권 행사에 드는 비용은 어떤 경쟁사도 부담하지 않는다.

내가 거버넌스 캠페인을 벌여 기업 가치를 높여도, 그 이익은 동일한 지수를 복제하는 모든 패시브 펀드가 나눠 가진다.

이것은 무임승차(Free-rider) 문제다.

경제적 유인이 없으므로, 깊이 있는 기업 감시를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빅쓰리의 행동 양식을 단순히 감시 태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틀렸다.

이들은 실제로 대규모 스튜어드십 전담 조직을 운영한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주총 표 대결이 아니라 **“조용한 관여(Quiet Engagement)”**다.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 경영진을 직접 만나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경영진은 표 대결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조율한다.

그 결과 공개적인 갈등은 드물다. 하지만 그것이 감시가 잘 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세 곳의 거대 자산운용사가 수천 개 기업의 지배구조 방향을 동시에 틀고 있다는 의미다.

2017년 P&G 주주총회는 이 힘의 크기를 한 번 보여줬다.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의 이사 진입 안건을 두고, 블랙록과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찬성, 뱅가드는 반대했다.

세 회사의 표가 엇갈렸고, 결과는 수백만 주 차이였다.

세 곳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거대 기업의 이사회 구성을 바꾼다.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권력이다.

선출되지 않았고, 규제되지 않았으며, 해체할 방법도 명확하지 않다.

*패시브 투자자들이 자신의 돈을 맡긴 이들 회사가 그 돈을 활용해 기업 지배구조를 좌우한다. *

그런데 그 투자자들은 자신의 의결권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6. 한국 ETF의 300조 원, 그 내부에서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한국 시장은 몇 가지 면에서 세계 어느 곳보다 더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2025년 10월, 국내 ETF 시장 순자산총액은 250조 원을 넘었다. 12월 말에는 297조 원이었다. -> 5년 전과 비교하면 네 배 이상 성장한 숫자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 등록된 ETF 상품 수는 451개 이상으로, 아시아에서 단연 최다다.

여기서 “451개 상품"이라는 숫자를 다르게 읽으면 이렇다.

투자자의 선택이 분산되어 있다. KODEX 200과 TIGER 200은 같은 코스피200 지수를 복제한다.

두 상품을 구별하는 건 수수료와 브랜드 신뢰도 정도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운용사가 각자의 버전을 출시한다.

이* 파편화는 유동성 분산을 의미*한다.

은 지수를 복제하는 여러 상품으로 자금이 쪼개지면, 각 상품의 유동성이 낮아지고 스프레드가 넓어진다.

투자자는 같은 지수를 사면서 더 높은 거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한국 ETF 자금의 상당 부분은 연금 계좌에서 나온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자금이 ETF로 흘러들어오는 구조가 세제 혜택과 함께 정착됐다.

이 자금은 성격이 다르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게 아니라 수십 년 뒤의 노후를 위한 자금이다.

이 장기 자금이 시장 지수를 그대로 복제하는 ETF에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 코스피 지수에는 삼성전자가 수십 퍼센트를 차지한다.

KODEX 200을 사는 건, 사실상 삼성전자를 대량 보유하면서 나머지를 조금씩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산 투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집중 노출이다.

글로벌 ETF의 경우는 반대 문제다. S&P 500 ETF를 사면, 미국 빅테크 7개 종목의 비중이 30%에 육박한다.

2024년 이 종목들이 지수 수익률의 대부분을 만들었다. 2025년에 그렇지 않으면? 지수 전체가 그 충격을 받는다.

분산처럼 보이지만 분산이 아닌 것. 이것이 현대 패시브 ETF의 실제 모습이다.

7. 다음 혁명은 더 조용하게 올 것이다

 A single person sitting alone at a minimal workstation
A single person sitting alone at a minimal workstation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처럼 제시되는 것이 있다.

다이렉트 인덱싱(Direct Indexing)이다.

개념은 간단하다.

ETF를 사는 대신, 지수를 구성하는 수백 개 개별 종목을 직접 내 계좌에 보유하는 것, 알고리즘이 대신 리밸런싱을 해준다. 소수점 매수 덕분에 소액으로도 가능하다.

이것이 그냥 ETF와 다른 점은, 맞춤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정 업종을 빼거나, 비중을 조정하거나, 나만의 ESG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세금을 개인 상황에 맞게 최적화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 선점을 위해 경쟁 중이다.

블랙록은 Aperio를, 뱅가드는 Just Invest를 인수했다.

한국에서도 소수점 매수가 일반화되고 연금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이 방향의 수요가 형성되고 있다.

다이렉트 인덱싱이 앞서 말한 문제들을 해결하는가?

부분적으로만 그렇다.

시장 차원의 동조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같은 지수를 기반으로 구성된다면, 유동성 쏠림과 가격 발견 약화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이다.

특히 세금 최적화(Tax-Loss Harvesting) 측면에서는

ETF 구조는 세금 이연 효과가 크지만, 펀드 수준에서 관리된다.

다이렉트 인덱싱에서는 개인 계좌 수준에서 실현 손익을 조율할 수 있다.

그리고 의결권 문제도 다르다. 직접 보유한 주식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투자자 본인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다이렉트 인덱싱은 여전히 비용이 높고, 작동 구조가 복잡하다.

일반 개인 투자자가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알고리즘 비용이 낮아지면서, 5~10년 후에는 지금의 ETF처럼 대중화될 가능성이 있다.

혁명은 조용히 온다.

첫 번째 혁명이 “인덱스를 사라"였다면, 두 번째 혁명은** “인덱스를 당신의 방식으로 직접 가져라”**가 될 것이다.

8. 시장이 혁명을 소화할 수 있는가

마감 동시호가로의 유동성 집중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한 가지 제안이 있다: 마감 시간을 랜덤하게 끝내는 임의 종료(Random End) 방식의 시범 도입이다.

정확히 언제 마감이 오는지 모르면, 모든 패시브 펀드가 동시에 쏟아붓는 인센티브가 줄어든다. 유럽 일부 거래소에서 실험적으로 시행됐다.

의결권 집중 문제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패스스루 보팅의 의무화가 논의된다.

패시브 펀드는 의결권을 펀드 보유자에게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소액 투자자들의 참여율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방향은 맞다.

국내에서도 다이렉트 인덱싱 활성화를 위한 세제 지원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연

금 계좌 내 개별 주식 보유에 대한 양도소득 통산 범위 확대가 한 방향이다.

그러나 이 정책적 제안들이 작동하려면, 먼저 문제가 존재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인식은 쉽지 않다.

패시브 투자의 문제는 드라마틱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 발견이 약화됐다고 해서 갑자기 폭락이 오는 것이 아니다.

유동성이 마감에 쏠렸다고 해서 개인 투자자가 바로 느끼는 것이 아니다.

빅쓰리가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명백한 피해자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서서히 진행되는 구조적 변형이다.

마치 강의 흐름이 바뀌듯. 수년 동안은 차이를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강바닥이 달라진 것을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A close-up of water flowing over smooth river stones
A close-up of water flowing over smooth river stones

패시브 투자는 옳다.

이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수수료를 최소화하고,

시장 평균을 복제하고,

장기 보유하는 것은 개인 투자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 중 하나다.

-> 통계가 그것을 말하고, 수십 년의 실증이 그것을 확인한다.

그런데 패시브 투자는 시장을 전제한다.

->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고, 가격이 정보를 담고, 기업 감시가 작동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가격이 더 이상 기업의 가치를 효율적으로 반영하지 않는 시장에서의 패시브 투자는, 무엇을 복제하는 것인가?

기업 실적과 무관하게 메가캡 종목이 지수에 쏠린 시장의 평균을 따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시장 평균"인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은 없다.

패시브 투자가 가져온 이익은 실재하고, 그것을 누리는 수억 명의 개인 투자자가 있다.

동시에 패시브 투자가 누적적으로 만들어내는 시장 구조 변형도 실재하고, 그것의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그 방법이 집단적으로 모이면, 시장 자체를 바꿔버린다.

그리고 바뀐 시장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아직 아무도 끝까지 본 사람이 없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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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P Dow Jones Indices. (2025). SPIVA U.S. Scorecard Year-End 2024. New York: S&P Glo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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