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면 찬 공기가 얼굴에 닿는다. 이때 우리는 보통 “차가운 공기가 나온다"고 말한다. 틀렸다. 냉장고는 찬 공기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냉장고 안의 열을 빨아들여 뒤판 코일로 뱉어낼 뿐이다. 냉장고 뒤에 손을 대보면 항상 따뜻한 이유가 그것이다.
LNG 공장은 이 원리를 지구에서 가장 큰 규모로 실행하는 시설이다. 천연가스를 얼리는 게 아니라, 가스에서 열을 뽑아내 어딘가로 던져버리는 거대한 열의 재배치 장치다. 그리고 이 재배치 작업 하나에 왕왕 원자로 하나에 맞먹는 전력이 들어간다.
기체 하나를 액체로 만드는 데 원자로 하나가 필요한 이유
천연가스는 지하에서 뽑아 올릴 때 기체다. 상온, 상압 상태의 메탄 분자는 서로 멀찍이 떨어져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걸 배로 실어 나르려면 문제가 생긴다. 부피가 너무 크다. 같은 에너지를 배 한 척에 담으려면 기체 상태로는 탱크 600개가 필요한데, 액체로 바꾸면 탱크 1개로 끝난다. 기체 상태보다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 운반과 저장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숫자로만 보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압축을 실제로 몸으로 느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축구공 만한 부피의 천연가스를, 부피는 그대로 두고 무게만 600배로 만든다고 상상해보자. 아니, 반대로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하다. 지금 여러분이 사는 아파트 한 채 분량의 천연가스를, 액화라는 과정을 거치면 김치냉장고 하나에 다 넣을 수 있게 된다.
이 압축이 가능한 이유는 압력이 아니라 온도다. 메탄을 영하 162도까지 냉각하면 분자 운동이 멈추다시피 하면서 스스로 뭉쳐 액체가 된다. 메탄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하여 부피를 600분의 1로 압축시킨 무색투명한 초저온 액체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영하 162도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 온도까지 내려가는 동안 가스 안에 있던 열을 전부 어딘가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열은 사라지지 않는다. 옮겨질 뿐이다.
이 옮기는 작업이 LNG 공장의 전부다.
냉장고와 공장은 같은 기계다
여기서 구조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나온다. 집에 있는 냉장고, 자동차 에어컨, 그리고 수십억 달러짜리 LNG 액화 플랜트는 사실 같은 기계다. 크기만 다를 뿐, 작동 원리는 정확히 일치한다.
냉동 사이클의 핵심은 냉매라는 물질이 압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열을 나르는 것이다. 냉매를 압축기로 눌러 압력을 높이면 온도가 오른다. 이 뜨거워진 냉매를 실외기에서 바깥 공기와 접촉시켜 열을 버린다. 그다음 냉매를 좁은 구멍으로 팽창시키면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온도도 함께 뚝 떨어진다. 이 차가워진 냉매가 냉장고 내부를 지나가며 음식의 열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압축기로 돌아간다. 이 순환이 끝없이 반복된다.
LNG 공장이 쓰는 방식도 원리는 같다. 다만 냉매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종류를 섞어 쓴다는 점이 다르다. 혼합냉매(MR) 공정에서는 단일 냉동 사이클만 사용하며, 이 사이클에는 경질 탄화수소를 혼합한 냉매가 필요하다. 왜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섞을까. 천연가스는 상온에서 영하 162도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냉매 하나로는 이 넓은 온도 구간을 효율적으로 커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합냉매는 특별히 선택된 경질 탄화수소들의 혼합물을 사용하며, 이는 천연가스의 냉각 곡선을 모방하도록 조정될 수 있다.
메탄, 에탄, 프로판, 질소 같은 성분들을 정교한 비율로 섞어 하나의 냉매를 만든다. 이 혼합냉매는 끓는점이 서로 다른 성분들의 조합이기 때문에, 온도가 내려가는 각 구간마다 다른 성분이 주로 증발하며 열을 흡수한다. 상온 근처에서는 무거운 성분이, 극저온 근처에서는 가벼운 성분이 일을 맡는 식이다. 냉장고 뒤 코일 하나로는 어림도 없는 온도 낙차를, 냉매의 조성 자체를 설계해서 뚫어내는 것이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 중 하나는 프로판으로 먼저 어느 정도 식혀두고, 그다음 혼합냉매로 마저 액화까지 밀어붙이는 이중 구조다. 천연가스는 C3-MR(프로판 예냉 혼합냉매), SMR(단일 혼합냉매), DMR(이중 혼합냉매), AP-X 같은 액화 공정을 통해 냉매로 냉각되고 액화되며, 최적의 액화 방식은 LNG 생산량과 건설 부지 조건 같은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천연가스는 주 열교환기, 냉동 압축기, 구동기, 냉매 냉각용 열교환기 같은 설비를 이용해 예냉, 응축, 과냉각 과정을 거쳐 LNG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름표가 아니다. 어떤 공정을 쓰든 본질은 하나다. 냉매를 압축해 열을 버릴 위치로 보내고, 냉매를 팽창시켜 차갑게 만든 다음, 그 차가움을 천연가스에게 전달한다. 냉장고가 음식의 열을 훔쳐 뒤판으로 버리듯, LNG 공장은 천연가스의 열을 훔쳐 대형 냉각기로 버린다. 다른 건 규모뿐이다.
훔친 열은 어디로 가는가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냉장고 뒤판은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만 따뜻하다. 그런데 LNG 공장이 매일 처리하는 가스의 양은 냉장고 몇백만 대 분량이다. 그 열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답은 공기와 바닷물이다. 압축기가 냉매를 눌러 뜨거워지면, 그 열은 거대한 공랭식 열교환기(대형 선풍기 다발을 떠올리면 된다)나 해수를 끌어와 식히는 냉각 시스템을 통해 대기와 바다로 방출된다. 이 방출 단계가 바로 전력이 집중적으로 소모되는 지점이다. 냉매를 압축하는 압축기를 돌리려면 거대한 가스터빈이나 전기모터가 필요하고, 대형 LNG 플랜트 한 기의 압축기 구동 전력은 도시 하나를 밝힐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이쯤에서 원자로 얘기로 돌아가보자. 앞서 말한 “원자로 하나에 맞먹는 전력"은 과장이 아니다. 연간 수백만 톤의 LNG를 생산하는 대형 플랜트는 압축기 구동에만 수백 메가와트급 전력을 쓴다. 이 전력의 목적은 단 하나, 가스 안의 열을 밀어내는 것이다. 혼합냉매 공정을 이용한 전형적인 액화 플랜트를 건설하는 비용은 10억 달러를 넘어서지만, 이 높은 비용은 효율성 향상으로 정당화된다. 이 비용 대부분이 결국 열을 밀어내는 압축 설비와 그것을 돌릴 동력원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LNG는 이제 안전한 상태일까. 여기서 미묘한 반전이 하나 있다. 영하 162도의 액체는 완전히 안정된 상태가 아니다. 저장탱크 안에서도 외부에서 스며드는 미세한 열 때문에 LNG는 계속 조금씩 증발한다. LNG선에서 LNG를 하역하면 하역량만큼 저장탱크의 압력이 줄어드는데, 이 현상은 탱크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생산기지에서 발생하는 증발가스를 배로 공급해 압력을 보상한다. 완벽하게 가둔 것 같아 보이는 저온의 액체도, 사실은 끊임없이 다시 기체로 돌아가려는 힘과 씨름하고 있는 셈이다. 액화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도착하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관리다.
우리가 잊고 있던 청구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보면,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LNG는 청정에너지로 홍보된다. 실제로 천연가스는 석탄, 석유 등 다른 화석연료에 비해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이 적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에너지원으로, 유럽과 한국의 택소노미에도 포함되어 있다. 맞는 말이다. 태워서 쓸 때는 그렇다.
그런데 태우기 전 단계, 그러니까 지금까지 설명한 액화 과정에는 이야기가 없다. 부피를 600분의 1로 줄이기 위해, 우리는 이미 상당한 에너지를 미리 쓴다. 그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압축기를 돌려 냉매를 순환시키고, 그 냉매가 훔친 열을 대기 중으로 던져버리는 데 들어간다. 소비자가 가스레인지에서 확인하는 열량 뒤에는, 그 가스를 실어 나르기 위해 이미 소모된 또 하나의 열량이 숨어 있다. 이 숨은 청구서는 가격표에도, 탄소 배출량 계산에도 종종 누락된다.
이건 LNG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압축해서 효율적으로 만든다"고 말할 때, 그 압축 자체에 들어간 비용은 잘 보이지 않는 자리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를 압축해 전송할 때 드는 연산 비용, 물류를 압축해 배송할 때 드는 재포장 비용도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무언가를 작게 만드는 일은 공짜가 아니다. 작아진 결과물만 보이고, 작게 만드는 과정에서 사라진 열과 에너지는 청구서 뒷면으로 넘어간다.
다음에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일 때, 그 파란 불꽃이 얼마나 먼 길을 거쳐 왔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그 길의 어느 지점엔가, 원자로 한 기 분량의 전기가 오직 열을 훔쳐내는 데만 쓰였다는 사실과 함께.
참고자료
- 한국가스공사 - 천연가스투어 생산단계
- 한국가스공사 - LNG생산기지 연구개발 자료
- SK이노베이션 E&S 미디어룸 - 에너지백과 액화천연가스(LNG)
- 한국도시가스협회 - LNG 산업 연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가스공사
- ScienceDirect - Comprehensive review of current natural gas liquefaction processes on technical and economic performance
- Chiyoda Corporation - LNG Plants, Transition Energy Services
- US Patent 5,916,260 - Liquefaction process
- US Patent 6,062,041 - Method for liquefying natural gas
- US Patent 4,548,629 - Process for the liquefaction of natural gas
- IEEE Xplore - Natural Gas Liquefaction Process for Small-scale LNG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