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나이를 쓰는 사람은 전 세계에 10억 명이 넘는다. 이 서비스는 매분 220억 개의 토큰을 처리한다.
그런데 최근 몇 달 사이, 이 서비스를 만든 회사는 이상한 평가를 받았다. AI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평가다.
검색창에 뭔가를 검색해본 적이 있다면 이미 이 회사의 서비스 안에 있는 셈이다. Gmail을 쓰거나 안드로이드 폰을 쓰거나 유튜브를 본 적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이 글에서 다룰 회사가 다음에 무엇을 하기로 결정하느냐는, 벤치마크 순위표보다 당신의 하루에 더 가깝게 걸쳐 있다.
사진: StockCake (CC0, 무료 이용)
밀린다는 증거
밀린다는 증거는 세 갈래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신호는 제품 자체였다. 최상위 모델인 제미나이 3.5 프로는 개발자 행사에서 ‘다음 달 출시’를 예고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이 지나고, 또 몇 달이 더 지났다. 그 사이 공개된 건 대부분 가볍고 빠른 ‘플래시’ 모델이었다.
이어서 나타난 신호는 개발자들의 지갑에서 왔다. 코딩 도구 시장의 지출 점유율을 보면 앤스로픽의 Claude Code가 42%, 오픈AI의 Codex가 21%를 차지한다. 구글의 몫은 이 둘에 크게 못 미친다.
코딩은 단순한 재주가 아니다. 문제를 쪼개고, 도구를 스스로 불러오고, 오류를 고쳐나가는 능력이다. 이 능력에서 밀린다는 건 다음 세대 AI 비서 시장의 주도권을 넘겨준다는 뜻에 가깝다.
세 번째 신호는 사람이었다. 노암 섀지어와 존 점퍼가 회사를 떠났다. 입사 27년 차였던 제프 딘도 창업을 위해 나갔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딥마인드 회장직으로 자리를 옮겨 신약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빈자리에는 제품화와 상업화를 총괄하는 코라이 카북추올루 부사장이 들어섰다. 딥마인드라는 이름은 남았지만, 실권은 다른 손으로 넘어갔다.
27년을 한 회사에서 보낸 사람이 스스로 걸어 나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 이건 예외적인 이탈 한 건이 아니라, 조직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옮겨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분당 220억 토큰이라는 숫자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초당으로 나누면 약 3억 6천만 개. 200자 원고지 한 장을 채우는 데 필요한 토큰이 대략 150개쯤이라고 하면, 이 회사는 1초마다 원고지 240만 장 분량의 글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 규모를 감당하는 회사가 왜 벤치마크 1위 경쟁에서는 자꾸 밀리는 것처럼 보일까.
규칙을 바꾸는 종
생물학에는 ‘니치 구축(niche construc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자연선택은 보통 환경에 가장 잘 맞는 개체가 살아남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어떤 종은 다른 전략을 쓴다. 환경에 맞추는 대신, 환경 자체를 바꿔버린다.
비버는 이빨이 가장 날카로운 포식자가 되려고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댐을 짓는다. 강물의 흐름을 바꾸고 연못을 만들어, 그 연못이 자신에게 유리한 서식지가 되게 만든다. 나무를 가장 잘 갉는 개체가 이기는 게 아니라, 강 전체의 지형을 바꾼 개체가 이긴다.
지금 오픈AI와 앤스로픽이 하는 경쟁은 ‘누가 이빨이 더 날카로운가’에 가깝다.
몇 주, 길어야 몇 달 간격으로 벤치마크 1위가 바뀐다. 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투자 유치도 생존도 장담하기 어렵다. 모델을 만드는 것 자체가 사업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다른 자리에 서 있다. 검색, 안드로이드, 유튜브, Workspace — 이미 강 전체를 갖고 있다. 이 회사에 필요한 건 가장 날카로운 이빨이 아니라, 그 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흐르게 만드는 댐이다.
기술 산업의 역사를 보면 이 패턴이 낯설지 않다. 가장 뛰어난 제품을 만든 회사가 아니라, 유통망과 생태계를 가진 회사가 결국 시장을 흡수한 사례가 반복돼 왔다.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것과, 사람들이 매일 발 딛는 땅을 소유하는 것은 다른 게임이다.
댐을 짓는 방식
댐은 네 군데에서 동시에 세워지고 있다.
첫 지점은 모델 자체의 재설계다. 모든 질문에 가장 큰 모델을 투입하는 대신, 구글은 작업 단위로 모델을 쪼갠다. 직전 세대 최상위 모델의 성능을 넘어서면서도 속도는 네 배 빠르고 단가는 훨씬 싼 ‘플래시’ 모델을 기본값으로 깔아둔다. 정말 어려운 문제에만 무거운 모델을 꺼내 쓴다.
두 번째는 칩 설계다. 8세대 TPU부터는 ‘학습용’과 ‘추론용’을 아예 나눈다. 이 결정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다. AI 경쟁의 승부처가 몇 달씩 걸리는 대규모 훈련이 아니라, 매일 수십억 번 반복되는 일상적인 응답 — 추론 — 단계로 넘어갔다는 선언이다.
세 번째는 제품의 형태다. ‘제미나이 스파크’로 대표되는 방향은 질문에 답하는 챗봇을 넘어선다. Gmail과 드라이브, 캘린더, 유튜브, 크롬에 유기적으로 붙어 실무를 대신 처리하는 24시간 에이전트를 목표로 삼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메일함에 도착한 회의 요청을 읽고, 캘린더의 빈 시간을 찾아 답장을 보내고, 관련 문서를 드라이브에서 찾아 미리 정리해둔다. 사람이 챗봇을 여러 번 여닫는 대신, 서비스가 배경에서 계속 일한다.
그리고 아마 가장 영리한 지점은 마지막이다. 검색 AI 모드의 답변에 타깃 광고를 붙인다. 대출이나 보험처럼 구매 의향이 뚜렷한 질문일수록 광고가 붙을 확률은 50%를 넘는다.
경쟁사에게 답변이 길어진다는 건 토큰 비용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구글에게 답변이 길어진다는 건 광고를 붙일 자리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 변화는 소비자에게 두 방향으로 온다. 하나는 무료 또는 저렴한 AI 서비스를 더 오래, 더 널리 쓸 수 있게 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답변 안에 광고가 점점 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섞여 들어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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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댐에는 조건이 있다.
‘성능이 비슷한데 싸다’는 혁신이다. ‘성능이 떨어지는데 싸다’는 그냥 저가형 모델이다. 구글의 전략 전체가 이 한 줄 위에 세워져 있다. 플래시 모델이 실제로 작업을 해낸다는 전제, 에이전트가 실제로 실무를 대신한다는 전제가 무너지면 남는 건 ‘싸구려’라는 평판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은 왜 연구실을 고르는가. 노암 섀지어도, 존 점퍼도, 제프 딘도 결국 프론티어를 좇아 움직였다. 세계 최고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조직에는 세계 최고의 인재가 모인다. 비용과 효율을 우선하는 2등 조직에는, 적어도 그 인재들의 셈법 안에서는 그만한 자석이 없다.
코딩 에이전트 시장에서 이미 벌어진 격차도 같은 문제를 가리킨다. 인프라를 아무리 촘촘히 갖춰도 정작 개발자들이 매일 쓰는 도구에서 밀리면, 그 인프라 위에서 돌아갈 에이전트 시장 자체를 경쟁사에 내주게 된다. 강의 지형을 바꾸는 것과, 그 강에 물고기가 계속 살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애초에 왜 구글이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보인다.
초대형 모델을 10억 명 전원에게 적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지구상의 연산 자원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규모가 크다는 것, 그 자체가 자유이자 감옥이다.
오픈AI와 앤스로픽은 잃을 사용자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껏 최고 성능을 밀어붙일 수 있다. 구글은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을 책임지고 있어서, 그 자유를 스스로 포기해야 했다.
10억 명, 분당 220억 토큰.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는 구글이 밀린다는 평가와 어긋나 보였다.
지금 다시 보면 다르게 읽힌다. 이건 실패의 반대편에 있는 숫자가 아니라, 애초에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문제는 이 게임의 승패가 아직 갈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딩 에이전트의 완성도와 서비스 생태계의 수익성, 이 두 가지가 앞으로 몇 년 사이에 답을 내놓을 것이다. 가장 똑똑한 모델을 만드는 회사가 이길지, 가장 저렴하게 가장 많은 사람에게 매일 쓸 수 있는 서비스를 주는 회사가 이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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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에 검색창에 뭔가를 물어보고 답이 길게 돌아온다면,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이 답이 길어진 이유가 더 정확해지려는 노력 때문인지, 아니면 광고를 붙일 자리가 하나 더 필요해서인지.
참고자료
- Axios 보도 — 구글 제미나이 3.5 프로 출시 지연 관련 취재
- Fortune 보도 — 구글 AI 조직 핵심 인력 이탈 관련 취재
- OpenRouter 코딩 도구 지출 점유율 데이터 (Claude Code, Codex 등)
- 구글 딥마인드 조직 개편 및 코라이 카북추올루 체제 전환 관련 보도
- 구글 제미나이 사용자 지표 — 월간 활성 사용자 10억 명, 분당 220억 토큰 처리
- 구글 8세대 TPU 학습·추론 분리 아키텍처 관련 발표
- 제미나이 스파크(Gemini Spark) 에이전트 제품 방향 관련 자료
- 검색 AI 모드 광고 결합 및 매칭률 관련 자료
- 티타임즈TV — 구글의 바뀐 AI 사업 전략 분석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