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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자급률 47%의 착시, 밥상 물가의 진실

phoue

4 min read --

"라면** 1개에 2천 원 한다는데 진짜예요?" **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이렇게 되물었다.

MBC 뉴스는 일부 컵라면 값이 실제로 2천 원을 넘었다고 전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가격표를 되묻는 상황이니, 장바구니 물가는 이미 개인의 불평 수준을 넘어선 정치 이슈다.

그런데 이 질문엔 절반의 답만 있다.

최근 채소류 가격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대로 내려와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쌀과 고기 값만 유독 오른다. 날씨나 유통 마진 탓으로 돌리기엔 뭔가 어긋난다.

진짜 원인은 매달 발표되는 물가지수 뒤, 정부가 매년 내놓는 자급률 통계 안에 숨어 있다.

OECD 2위, 밥상 물가가 말하는 숫자

한국의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는 2024년 기준 OECD 평균보다 46% 높다.

OECD 38개국 중 1위인 스위스(147)에 이어 2위로, 지수로는 146이다. 일본(121), 미국(107), 프랑스(100), 독일(95.2), 영국(91.4) 모두 한국보다 낮다.

국가 식료품 물가지수(OECD 평균=100, 2024년)
스위스 147
한국 146
일본 121
미국 107
프랑스 100
독일 95.2
영국 91.4

채소와 식료품이 진열된 마트 매대
채소와 식료품이 진열된 마트 매대

*한 해만의 일이 아니다. 2022년엔 이스라엘에 이어 2위, 2023년엔 스위스를 제치고 1위였다.

3년 내내 1~2위를 벗어난 적이 없다.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굳어진 자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소비자물가 지표만 보면 오히려 안정된 것처럼 읽힌다.

2026년 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0% 상승에 그쳤고, 신선식품지수는 채소·과실 값 하락으로 0.2% 떨어지기까지 했다. 정부는 명절 성수품 수급 관리와 가축전염병 방역으로 체감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런 대책은 채소·과실처럼 국내에서 기르는 품목엔 통하지만, 애초에 수입에 기대는 곡물·사료 가격의 구조 자체를 바꾸진 못한다. * *

식량자급률 47.9%는 왜 착시인가

정부가 발표하는 ‘식량자급률’ 47.9%는 사료용 곡물을 뺀 숫자다. [사료까지 포함한 진짜 ‘곡물자급률’은 21.6%](https://www.foodandclimate.or.kr/2026/04/16/food-self-sufficiency-trap/)에 그친다. 소비하는 곡물의 거의 80%를 해외에서 들여온다는 뜻이다. 쌀을 뺀 나머지는 더 심각해서, 식용 기준으로 밀 1.5%, 옥수수 4.3%까지 떨어졌다.

더 감춰진 부분도 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라면 속 밀가루, 초콜릿의 카카오는 이 통계 자체에 잡히지도 않는다.

자급률 47.9%라는 숫자가 이미 낙관적인 쪽으로 편집된 숫자라는 얘기다.

전망은 더 나쁘다. OECD와 FAO가 함께 낸 ‘농업전망 2026-2035’는 한국 곡물자급률이 2023~2025년 평균 19.2%에서 2035년엔 16.8%까지 떨어질 거라 본다. 쌀 재배면적이 축구장 13만 개 넘게 사라지는 동안, 밀·옥수수 수입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흐름이다.

곡물시장을 쥔 ABCD, 식량자급률 낮은 나라의 약점

자급이 안 되면 결국 국제 시장에서 사와야 하는데, 이 시장은 사실상 네 개 기업이 나눠 가진다.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

벙기(Bunge),

카길(Cargill),

루이드레퓌스(LDC), 앞글자를 딴 ‘ABCD’다.

이들 네 곳이 세계 곡물 생산·유통의 80%를 차지하고, 그중 카길 혼자 40%를 쥐고 있다.

대형 곡물 저장고와 화물선이 있는 항만 터미널
대형 곡물 저장고와 화물선이 있는 항만 터미널

이들이 이렇게 오래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곡물 자체보다 인프라에 있다.

곡물은 항구의 저장·운송 시설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상품이라, 이 설비를 먼저 확보한 소수 기업이 신규 진입을 사실상 막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한국이 밀과 옥수수를 사려면 이 네 곳 중 한 곳을 거칠 수밖에 없고, 협상 테이블에서 가격을 정하는 쪽은 늘 저쪽이다. 식량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해일수록 ABCD의 실적은 오히려 좋아졌다는 보도도 있다.

식량자급률 21.6%라는 숫자는 결국 ‘가격을 못 정하는 처지’를 뜻하는 다른 표현인 셈이다.

관세 장벽까지 사라진 자리, 밥상 물가로 돌아오다

여기에 관세 장벽까지 낮아지며 특정 공급국 의존은 더 커지고 있다.

한미FTA에 따른 미국산 쇠고기 관세는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낮아지다 2026년 1월부터 완전히 0%가 됐다. 2024년 한 해 수입 쇠고기 46만 1천t 가운데 미국산이 22만 2천t, 절반에 가까웠다.

관세가 사라지면 당장 소비자 가격엔 도움이 된다. 하지만 특정 국가 한 곳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올라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밀과 옥수수는 애초에 곡물자급률 통계에서부터 수입 의존이 드러나지만, 육류처럼 통계상으론 자급률이 멀쩡해 보이는 품목도 이런 식으로 조용히 특정 국가 쪽으로 쏠릴 수 있다. 그 나라의 환율, 수출 정책, 물류 파업 하나에 국내 밥상 물가가 그대로 흔들릴 여지가 커진다는 얘기다.

자급률이 낮은 상태에서 관세 방어막까지 없어지면, 남는 건 ‘가격을 정하지 못하는 구조’뿐이다.

식량자급률, 가격을 정하지 못하는 나라의 선택

식량안보법 제정 논의가 국회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0년 쌀 흉작 때 식량자급률이 44.1%까지 떨어지며 40%선 붕괴 우려가 나온 뒤로, 이 숫자를 법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우리 농지와 농업 여건상 자급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논의의 초점을 ‘자급률을 얼마나 올릴 것인가’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인가’**로 옮겨야 한다고 짚었다.

농지와 인구 구조를 생각하면, 자급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은 사실 많지 않다.

대신 시도해볼 수 있는 건 수입선을 한두 나라, 한두 기업에 몰아주지 않고 나눠두는 일,

그리고 완주 로컬푸드처럼 유통 단계를 줄여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잇는 방식으로 국내 공급 기반을 조금씩 넓히는 일이다.

곡물을 스스로 다 길러낼 수 없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 어떤 경로로, 얼마나 들여올지를 분산해두는 일은 지금부터도 가능하다. 식량자급률 숫자 하나에 안심하기 전에, 그 숫자가 무엇을 빼고 계산됐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참고자료
  1. MBC 뉴스, 「OECD 2위 '먹거리 물가'‥"이제 집밥도 부담"」, 2025.6.16
  2. 뉴스1, 「韓 식료품 물가, 구매력 기준 OECD 2위…스위스 다음으로 비싸」, 2026.7.9
  3. 연합뉴스 월간 마이더스, 「[그래픽 뉴스] 한국 음·식료품 물가 OECD 2위 외」, 2026.8.5
  4. 식량과기후변화, 「식량자급률의 함정 — 47.9% 너머의 수입 의존」, 2026.4.16
  5. 농민신문, 「정부 ‘식량안보 강화’ 손놨나」, 2026.1.12
  6. 파이낸셜뉴스, 「2035년 韓 곡물자급률 16%대 추락…식량안보 취약해져」, 2026.7.2
  7. 조선비즈(economychosun), 「'ABCD' 등 글로벌 대기업에 한국은 '식량 잠식' 상태」
  8. 한국경제, 「식량 인플레에 웃는 곡물기업…빅4, 작년에만 45억달러 벌었다」, 2021.7.29
  9. KDI 경제정보센터, 「1월 소비자물가는 2.0% 상승」,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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