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포털 경제면에 뜬 표 하나를 보고 잠깐 멈칫했다. 대만 1인당 GDP가 한국을 앞섰다는 기사였는데, 댓글 반응이 묘하게 갈렸다. “대만이 그렇게 잘살아?“라는 반응과 “대만 가보면 딴 세상인데"라는 반응이 나란히 달려 있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며칠 파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반응이 동시에 맞는 이유가 있었다. 국가 통계로는 대만이 앞섰는데, 그 통계를 밀어올린 건 사실상 회사 하나다. TSMC. 그리고 그 회사가 번 돈이 대만 국민 지갑으로 흘러가는 경로는 생각보다 좁았다.
대만 1인당 GDP, 정말 한국을 추월했나
시작은 2001년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폭스콘을 비롯한 대만 제조업체들이 인건비를 좇아 줄줄이 본토로 넘어갔다. 대만 본섬은 그때부터 제조업 공동화를 겪었고, 2003년부터 2024년까지 20여 년 동안 한국이 경제 규모와 1인당 소득에서 대만을 꾸준히 앞섰다. 이 구도가 오래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최근 역전 소식이 더 낯설게 느껴진 것 같다.
변곡점은 생성형 AI였다. 첨단 파운드리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한 TSMC 실적이 급등하면서, IMF 최신 전망치 기준 대만 1인당 GDP가 42,103달러로 한국(37,412달러)을 약 4,700달러 앞질렀다. 향후 5년 안에 격차가 1만 달러 이상 벌어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숫자만 보면 완전한 역전승 서사다. 그런데 이 통계가 대만 국민 개개인의 삶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별개 문제다.
대만 물가는 싼데 대만 중위소득은 왜 한국보다 낮을까
대만 여행 가본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물가가 싸다. 딤섬 프랜차이즈 팀호완의 샤오마이만 봐도 한국에서 7천 원대인 게 대만 현지에서는 6천 원 선이고, 우육면이나 택시, 숙박비 같은 내수 서비스 물가는 대체로 한국의 1.5배 가까이 저렴하다더라. 이게 이상한 일이다. 나라 전체 부는 늘었다는데 왜 밥값은 그대로일까.
답은 식당이나 택시 요금 같은 대면 서비스 가격이 외국인이 아니라 그 나라 일반 노동자의 임금과 가처분소득에 수렴한다는 데 있다. 1인당 GDP는 총생산을 인구로 나눈 숫자일 뿐이라, TSMC 같은 초거대 기업 하나가 천문학적 이익을 내면 서민 지갑은 그대로여도 국가 평균만 치솟는다. 흔히 말하는 평균의 함정이다.
이걸 확인하려면 중위소득을 봐야 한다. 국민을 소득순으로 세웠을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소득 말이다. 대만의 월 중위소득은 45,000 대만달러, 한화로 약 200만 원(2026년 기준)이다. 반면 한국은 2년 전인 2024년 기준으로 이미 288만 원을 기록했다. 시차를 감안해도 현재 기준 한국이 대만보다 월 100만 원 가까이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1인당 GDP는 대만이 앞섰는데, 정작 중간에 있는 시민의 실질 소득은 한국이 확고하게 위라는 얘기다. 이 정도면 두 지표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TSMC 순이익 75조 원은 어디로 가나
그럼 TSMC가 번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25년 기준 TSMC의 연간 순이익은 1조 7,178억 대만달러, 한화로 약 75조 9,600억 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이 실적을 두고 “소름 끼칠 정도로 좋다"고 평했을 정도의 규모다. 대만 증시 시가총액의 40%를 이 회사 하나가 차지하는데, 그 이익이 서민 생활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 데는 세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다.
첫째는 배당의 해외 유출이다. TSMC는 지난해 주당 18 대만달러를 현금 배당해 순이익의 27%를 주주에게 돌려줬다. 실제로 최근 배당성향을 여러 증권 데이터에서 찾아보면 25%대에서 30%대 초반 사이로 나오니 이 숫자가 특별히 과장된 값은 아니다. 문제는 받는 사람이다. 미국 상장예탁증서인 ADR 지분만 20%고, 외국인 투자자 지분을 합치면 70%를 넘는다. 배당금 대부분이 대만 가계가 아니라 해외 기관 투자자 주머니로 곧장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둘째는 설비투자의 해외 분산이다. 순이익의 나머지 73%는 재투자로 들어가는데, 올해 투자 규모만 1조 8,000억 대만달러로 당해 순이익을 넘어선다. 그런데 이 돈이 애리조나, 구마모토, 드레스덴으로 쪼개져 나간다. 대만 내 일자리나 내수 설비 투자로 1:1 연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자료를 찾아보면 설비투자가 전년 대비 33%나 늘었는데, 이 확장분의 상당수가 해외 팹 몫이라는 걸 감안하면 대만 국내 낙수효과는 그만큼 옅어진다.
셋째는 임직원 혜택의 극단적 편중이다. TSMC가 지난해 인건비로 지출한 총액은 3,405억 대만달러,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1억 9,000만 원이다. 본사가 있는 신주시는 부동산이 급등하고 합계출산율이 1.0명까지 올라가는 등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 직원이 대만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딱 0.3%다. 나머지 99.7%에게는 닿지 않는 격리된 생태계라고 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TSMC 외국인 지분과 ADR, SK하이닉스와 비교해보니
여기서 하나 더 확인해보고 싶었던 게 있다. TSMC 본주와 ADR 사이 가격 차이다. 최근 SK하이닉스도 ADR을 상장하면서 화제가 됐는데, 이때 나온 비교 기사들을 보면 TSMC ADR이 대만 본주보다 최대 20% 이상 비싸게 거래되고, 이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가 재밌는데, 대만 금융당국이 본주를 ADR로 새로 예탁할 때는 승인을 받아야 하는 반면 ADR을 취소해서 본주로 되돌리는 건 자유롭다더라. 일방통행 구조다 보니 두 시장 사이 가격이 벌어진 채로 굳어진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이 구조를 피하려고 본주와 ADR 간 상호 전환을 3일 안에 가능하게 만들어서 괴리율을 줄이려 한다고 하니, 결이 다른 설계인 셈이다.
이 얘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TSMC의 외국인 지분 구조가 단순히 “배당이 해외로 샌다” 정도로 끝나는 얘기가 아니라 아예 주식 유통 구조 자체가 해외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서다. 대만 정부 입장에서는 이 구조를 손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TSMC 시총이 워낙 크다 보니 섣불리 건드렸다가 자본 유출이나 주가 충격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을 테니까.
법인세는 걷었는데 대만 국방비가 먼저 가져간다
TSMC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세전 이익의 약 16%, 실제 금액으로는 2,676억 대만달러를 법인세로 낸다. 이론상으로는 이 세수를 대중교통이나 건강보험, 보육 지원에 투입하면 서민 체감 생계비가 낮아지는 간접 낙수효과가 생길 법하다.
그런데 최근 5개년 예산 지출 추이를 보면 얘기가 다르게 흘러간다.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27.4% 선에서 정체돼 있는 반면, 양안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방비 비중은 2022년 14.6%에서 2026년 18.1%로 뛰었다. TSMC가 만든 세수 증가분이 상당 부분 첨단 무기 도입과 군사력 유지에 흡수되고 있다는 뜻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워낙 현실적인 나라라 이 선택 자체를 탓하기는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서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복지 확대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신대만달러는 왜 전 세계에서 제일 저평가됐을까
여기서부터가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대목이다. 2026년 1월 이코노미스트 빅맥지수를 확인해보니, 신대만달러가 미국 달러 대비 약 59~61% 저평가된 걸로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통화라는 타이틀을 대만이 갖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6.12달러인 빅맥이 대만에서는 2.4달러 선이니 체감이 될 만하다.
더 눈에 들어온 건 이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관련 데이터를 찾아보니 2016년부터 2023년 사이에는 대만달러 저평가율이 47~52% 구간에 머물러 있었는데, 최근 3년 사이 58~60%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저평가가 새로 생긴 현상이 아니라 원래도 낮았던 게 최근 들어 더 깊어졌다는 뜻이다.
환율 수혜와 피해가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도 여기다. TSMC는 해외에서 달러로 대금을 받아 대만달러로 환전하는 구조라, 대만달러가 1% 약세를 보일 때마다 영업이익률이 0.3%포인트 올라간다고 공식 공시에 나와 있다. 반대로 대만달러로 월급 받는 99.7%의 서민들은 해외 직구비, 여행 경비, 수입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실질 구매력이 그만큼 깎여나간다.
왜 이렇게까지 저평가가 고착됐을까. 정부가 대만달러 약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건 아니다. 대만은 미국 재무부 환율 관찰대상국에 올라 있어서 그러기도 쉽지 않다. 원인은 오히려 민간 금융 구조에 있다. 대만 생명보험사들이 굴리는 자산 규모가 대만 GDP의 1.4배에 달한다더라. 참고로 한국은 생명·손해보험사를 다 합쳐도 GDP의 49% 수준이라고 하니, 격차가 꽤 크다. 대만 안에는 이 돈을 마땅히 굴릴 대형 투자처가 없어서, 생보사들이 대만달러를 팔고 해외 달러 자산을 계속 사들인다. 이 지속적인 달러 매수 수요가 저환율 구조를 떠받치는 결정적 동력이라는 설명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설명이 꽤 설득력 있다고 느꼈다.
다만 이 지표를 너무 확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조심스럽다. 실제로 대만 중앙은행은 빅맥지수 결과에 대해 환율은 외환시장 수급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단일 상품 가격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반박한 적이 있다더라. 2016년 노무라가 발표한 아이폰 지수를 근거로 들었는데, 그때는 오히려 미국 달러가 가장 저평가된 걸로 나왔다는 얘기였다. 빅맥지수 자체가 이코노미스트도 인정하듯 “가벼운 지표"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으니, 저평가율 숫자 하나로 대만 경제 전체를 재단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겠다 싶다.
용인·광주 반도체 클러스터가 새겨둘 대목
여기까지 정리하고 나니 대만 경제가 ‘TSMC의 나라’와 ‘서민의 나라’로 완전히 갈라져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소수 엔지니어와 해외 주주에게 부가 몰리고, 고환율과 국방비 증액으로 99.7% 서민의 삶은 월 200만 원대 중위소득에 머물러 있다. 1인당 GDP라는 평균 지표 하나로는 절대 안 보이는 그림이다.
한국도 지금 용인과 광주를 거점으로 초대형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고 있다. 대만 사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첨단 기술의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 못지않게 성장의 과실이 협력업체와 지역 생태계, 서비스 산업, 일반 노동자에게로 돌아가는 배분 구조를 미리 설계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대기업 실적에 취해서 대만식 네덜란드병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선제적으로 새겨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다만 이게 정말 대만만의 특수한 함정인지, 아니면 초거대 단일 기업이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구조라면 어디서든 반복될 문제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참고자료
- https://www.taiwannews.com.tw/news/6300812
- https://www.mappr.co/thematic-maps/big-mac-index/
- https://finance.biggo.com/news/4d5e8ba7-efd7-4c85-b674-dbcef4455a39
- https://bigmacindex.app/country/taiwan/
- https://datatrack.trendforce.com/Chart/content/4201/the-big-mac-index-taiwan
- https://www.choicestock.co.kr/stock/news_view/110105
- https://www.choicestock.co.kr/stock/news_view/128518
- https://simplywall.st/ko/stocks/us/semiconductors/nyse-tsm/taiwan-semiconductor-manufacturing/dividend
- https://www.investchosun.com/site/data/html_dir/2026/07/10/2026071080070.html
- https://namu.wiki/w/TSMC
- https://ko.tradingeconomics.com/taiwan/inflation-cpi
- https://ko.tradingeconomics.com/taiwan/gdp-growth-annual
- https://www.imf.org/en/Publications/WEO
- 유튜브 스튜디오경향 <TSMC가 멱살 잡고 캐리한 역대급 대만 경제 호황 살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