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샌프란시스코 유니언스퀘어 사진을 우연히 봤는데, 광장 전체가 튤립밭이었다. 뒤로는 오래된 백화점 건물이 서 있고 앞으로는 색색깔 꽃이 카펫처럼 깔려 있는데,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쭈그리고 앉아서 꽃을 한 아름씩 뽑아 들고 있었다. 저게 뭔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이게 벌써 5년째 하는 캠페인이더라. 그것도 그냥 동네 축제 수준이 아니라, 올해는 아마존이 스폰서로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까지 붙어 있었다.
아마존이 꽃에 돈을 댄다는 문장 자체가 좀 이상하게 읽혔다. 물류와 클라우드로 먹고사는 회사가 왜 광장에 심는 튤립에 이름을 건다는 건지.
유니언스퀘어 인 블룸이 뭐길래
이 캠페인 이름은 ‘유니언스퀘어 인 블룸(Union Square in Bloom)‘이다. 유니언스퀘어 얼라이언스가 진행하는 다섯 달짜리 화훼 캠페인으로, 매년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진다. 시작은 훨씬 초라했다. 2021년 팬데믹으로 다운타운 사무실과 매장이 텅 비었을 때, 샌프란시스코 플라워마켓이 시청에 먼저 제안을 하나 던졌다 — 대규모 꽃 설치물로 회복이 눈에 보이게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지금 생각하면 소박하다 못해 좀 낭만적인 발상이다. 사무실이 텅 비고 상점이 문을 닫는 상황을 꽃으로 해결하겠다니. 그런데 그 아이디어가 2022년 런던 브리드 당시 시장의 다운타운 회복 계획 속 간판 프로그램으로 정식 채택됐다는 게 재밌는 지점이다. 임시방편이 정책이 된 셈이다.
8만 송이 튤립, 왜 매년 3월에 뿌리나
캠페인의 얼굴 격인 행사가 ‘아메리칸 튤립 데이’다. 매 시즌 시작마다 열리는 캠페인의 대표 이벤트로, 8만 송이 튤립이 광장을 통째로 꽃밭으로 바꾸고, 방문객은 티켓 없이 무료로 한 다발씩 가져갈 수 있다. 이게 SNS에서 매년 3월 국제 언론에 실리는 사진의 정체다.
숫자로만 보면 마케팅 이벤트인데, 화훼업계 쪽 시선으로 보면 결이 좀 다르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새삼 언급될 만큼 이 업계에는 ‘도시와 공원’을 엮어 생각하는 오랜 전통이 있고, 이 캠페인도 그 계보 어딘가에 걸쳐 있다는 논리다. 이게 얼마나 설득력 있는 계보인지는 판단이 안 서지만, 적어도 화훼업계 스스로는 이걸 결혼식·장례식 꽃 시장 바깥의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캠페인은 튤립 데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여름 내내 매장 정면과 호텔 차양에 꽃 장식을 엮어 넣고, 아트 아카데미 유니버시티 학생들이 참여하는 야외 패션쇼, ‘블룸스 앤 버블스’ 바 크롤, 그해 캠페인을 가장 잘 살린 매장을 뽑는 ‘블루미 어워즈’까지 여름 내내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2026년 8월엔 아트&컬처 위크(8월 17~23일)와 두 번째 블룸 뮤직 시리즈(8월 20일), ‘블룸된’ 매장을 뽑는 시민 투표까지 붙으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다운타운 공실률과 꽃, 대체 무슨 상관인가
솔직히 말하면 이 연결이 처음엔 잘 안 믿겼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공실 문제는 꽃 몇 다발로 어떻게 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2020년 초까지만 해도 20년 만에 최저 수준이던 사무실 공실률이, 팬데믹 1년 만에 역대 최고치로 뒤집혔고 유니언스퀘어, 소마, 예르바부에나, 파이낸셜 디스트릭트가 통째로 텅 빈 빌딩과 셔터 내린 매장으로 뒤덮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2023년까지도 파월 스트리트 한 블록에서만 대형 매장 예닐곱 곳이 통째로 비어 있어서, 이 공간들이 새 세입자를 구할 거라고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그러니 꽃 캠페인이 ‘해결했다’는 식으로 말하면 과장이다. 이 글을 쓴 화훼마켓 대표 본인도 다운타운 공실은 여전히 실질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이며 꽃 한 시즌으로 상업용 부동산 사이클이 고쳐지는 게 아니라고 인정한다. 다만 흐름은 있었다. 올해 필리핀 패스트푸드 체인 졸리비가 마켓 스트리트 매장을 열자 개장일에 줄이 블록을 돌았고,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키스가 이 구역에 플래그십 매장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인과관계라고 못 박긴 어렵지만, 최소한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이긴 하다.
이 대목에서 진짜 궁금해지는 건 왜 하필 ‘꽃’이었을까 하는 거다. 팝업 매장 지원, 임대료 보조, 세금 감면 같은 정책 수단은 이미 시청이 따로 하고 있었다. 런던 브리드 시장 행정부가 ‘베이컨트 투 바이브런트’라는 이름으로 아이스크림 가게, 베이커리, 카페, 예술 단체, 화훼점 등을 임대료 없이 빈 매장에 입점시키는 프로그램을 이미 운영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정책성 지원과 별개로 꽃 캠페인이 따로 살아남아 몸집을 키운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아마 이건 팝업 지원 정책이 ‘입점’을 만드는 일이라면, 꽃 캠페인은 ‘거리를 걷고 싶게 만드는’ 일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지나가야 매장도 살고, 매장이 살아야 임대도 되는 순서니까. 실제로 이 도시의 공실 문제를 다룬 다른 기사들을 보면 한 틱톡커가 올린 샌프란시스코 빈 매장 영상이 280만 조회수를 넘겼는데, 그 이유로 온라인 쇼핑 확산과 함께 좀도둑, 높은 임대료, 소상공인 지원 정책 부재를 꼽는 걸 보면, 이 도시의 이미지 문제 자체가 공실률만큼이나 큰 변수였던 셈이다. 꽃은 그 이미지를 가장 값싸고 빠르게 뒤집을 수 있는 수단이었을 거고.
후원사 명단이 왜 중요한 신호인가
2026년 유니언스퀘어 인 블룸 후원 및 배경 정리
| 구분 | 내용 |
|---|---|
| 캠페인명 | 유니언스퀘어 인 블룸 (Union Square in Bloom) |
| 운영 주체 | 유니언스퀘어 얼라이언스 |
| 2026년 신규 후원 | 아마존 (2026년 8월 5일 발표) |
| 기존 후원사 | JP모건체이스, 리바이스트라우스 |
| 2026년 로컬가든 프로그램 후원 | 아마존, JP모건체이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개발공사, 유나이티드항공, 유니언스퀘어 재단 |
| 시 정부 측 지원 | 대니얼 루리 시장실, 경제·인력개발국 |
| 시작 연도 | 2020년 아이디어 제안, 2022년 정식 프로그램화 |
2026년 8월 5일, 아마존은 유니언스퀘어 얼라이언스와 정식 파트너십을 맺고 동네 미화·플레이스메이킹 자금 지원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올해 로컬가든 프로그램은 JP모건체이스, 아마존,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개발공사, 유나이티드항공, 유니언스퀘어 재단이 후원하고, 여기에 대니얼 루리 시장실과 경제·인력개발국의 시 정부 차원 지원이 더해졌다.
2022년, 반쯤 텅 빈 채 다들 불안해하던 광장을 맞이했던 후원 명단과는 확연히 다른 구성이라는 게 이 캠페인을 쓴 당사자의 설명이다. 포춘 500대 기업이 화단 미화 사업에 이름을 거는 일이 흔하지는 않으니, 이건 그 자체로 ‘이 동네가 이제 투자할 만하다’는 신호를 대신 보내주는 셈이다. 자선이 아니라 계산된 베팅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 모델, 다른 도시에서도 먹힐까
화훼업계 입장에서 이 사례가 흥미로운 건, 사진발 좋은 튤립밭보다 오히려 복제 가능한 파트너십 구조 자체다 — 화훼 전문성과 시와의 관계를 제공하는 도매 꽃시장, 장소와 인허가, 커뮤니티 조직력을 대는 다운타운 상권 연합, 그리고 미화를 자선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경제 전략으로 보기 시작한 대기업 후원사, 이 세 축이 맞물리는 구조다.
이게 진짜 다른 도시에도 이식 가능한 공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샌프란시스코 플라워마켓은 1800년대 후반부터 노던캘리포니아의 재배자와 도매상을 도시의 플로리스트, 호텔, 이벤트 공간과 연결해온, 미국에 몇 남지 않은 도매 꽃시장이라는 특수한 인프라를 이미 갖고 있었다. 이런 오래된 도매 인프라가 없는 도시라면 같은 방식이 그대로 통할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하나는 확인이 되는 것 같다. 도심 공실 문제를 ‘어떻게 채울까’로만 접근하면 임대료 보조나 규제 완화 같은 딱딱한 해법으로만 흘러가기 쉬운데, ‘어떻게 다시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까’로 질문을 바꾸면 꽃 같은 답도 나올 수 있다는 것. 물론 이것만으로 공실률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정확한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수치는 이번 자료에서 찾지 못했다. 그 부분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참고자료
- Thursd, 'San Francisco's Flower-Powered Downtown Comeback', 2026-08-17
- San Francisco Chronicle, 'What comes next for S.F.'s emptying downtown?', 2023-05-06
- SPUR, 'Downtown on a Precipice: Why San Francisco Must Recover', 2021
- San Francisco Chronicle, 'Can pop-ups save downtown San Francisco?', 2022-07-05
- San Francisco Chronicle - Sunday Edition, '8 pop-ups coming to empty downtown S.F. storefronts'
- SFGate, 'Video of vacant storefronts in downtown SF goes viral', 2023-10-18
- Union Square Alliance 공식 발표 자료 (Union Square in Bloom 캠페인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