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제도의 장점과 단점을 각각 따로 정리한 글은 이미 많다.
그런데 목록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장점 한 줄을 뒤집으면 그대로 단점 한 줄이 된다.
목돈이 묶이지 않는다는 집주인의 장점은 그 목돈이 무담보로 남의 손에 있다는 세입자의 단점이고, 집값의 7할에 집 전체를 쓴다는 세입자의 장점은 집값이 3할만 빠지면 보증금이 집값을 넘는다는 위험과 같은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세는 임대차 계약의 탈을 쓴 대출 계약이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 대신 그 집에 산다. 이 한 문장에서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파생된다. 아래에서는 그 구조가 어디서 왔고, 지금 왜 무너지고 있으며, 월세로 바뀌면 세입자가 실제로 얼마를 더 내게 되는지 숫자로 따져본다.
전세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인가
한국에만 있다는 통념은 정확하지 않다.
목돈을 맡기고 집을 쓰는 계약은 기원전 15세기 메소포타미아 누지의 기록에 나오고,
1804년 나폴레옹 법전에는 안티크레시스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페루, 그리고 인도의 수라트와 벵갈루루에는 지금도 같은 방식의 계약이 있다.
한반도의 기록은 조선 세종 때 등장했다는 설과 고려 전당제도에서 왔다는 설로 갈린다.
지금과 같은 형태는 1899년 황성신문에서 처음 확인되며, 조선총독부 관습조사보고서는 전세금이 집값의 절반에서 7~8할이 통례라고 적었다.
한국이 특이한 지점은 규모다.
다른 나라에서는 주변부 관습으로 남은 계약이 한국에서는 임차 가구의 3분의 2가 쓰는 주류 방식이 됐다.
전세가 1970년대 한국에서 주류가 된 이유
집이 부족하고, 금리가 높고, 집값이 오르는 세 조건이 동시에 성립했기 때문이다.
산업화로 농촌 인구가 대도시로 몰려 주택은 항상 모자랐다. 은행 금리는 두 자릿수였고 개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집값은 거의 매년 올랐다.
이 조건에서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0%로 돈을 빌려 은행에 넣어두기만 해도 이익이었고, 집값 상승분은 온전히 자기 몫이었다.
세입자는 월세를 내지 않으니 소득이 그대로 저축이 됐고, 2년 뒤 돌려받은 보증금에 저축을 얹어 더 큰 전세로, 결국 자가로 옮기는 사다리를 탔다.
법률신문에 실린 장보은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의 칼럼은 이 시기를 두고 전세가 당사자 모두에게 효용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 걸음 더 나가 전세를 민간 주거금융 시스템이라고 규정한다. 공공임대주택이 부족하고 노후소득이 불안한 나라에서 은행이 하지 못한 주택금융 기능을 집주인과 세입자가 나눠 맡았다는 해석이다.
![1975년 여의도 아파트 단지를 위에서 찍은 흑백 항공 사진
전세 장점과 단점이 같은 구조에서 나오는 방식
세입자가 담보 평가와 신용 심사 없이 수억 원을 빌려준다는 사실 하나가 모든 장단점의 출발점이다. 아래 표는 같은 항목을 양쪽에서 읽은 결과다.
전세제도 장단점을 같은 항목의 양면으로 정리한 표
| 구조 | 장점으로 읽으면 | 단점으로 읽으면 |
|---|---|---|
| 월세가 없다 | 세입자 소득이 저축으로 쌓인다 | 세입자의 전 재산에 가까운 목돈이 무담보로 묶인다 |
| 집주인이 무이자 자금을 쓴다 | 대출 없이 주택을 보유할 수 있다 | 그 자금으로 갭투자가 가능하고, 집값 하락 시 반환 능력이 사라진다 |
| 보증금이 집값의 7할 안팎 | 3할 값으로 집 전체를 쓴다 | 집값이 3할 빠지면 깡통전세가 된다 |
| 만기 2년 일시 상환 | 이사 시점에 목돈이 한꺼번에 돌아온다 | 다음 세입자가 없으면 반환이 막힌다 |
| 은행이 개입하지 않는다 | 절차가 단순하고 비용이 없다 | 심사도 회수 장치도 없다 |
KDI는 2022년 하반기 금리 급등 이후 집값이 전세가 아래로 떨어지는 깡통전세와, 재계약 시 집주인이 보증금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 역전세가 함께 늘었다고 분석했다.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시기와 겹친다. 전세사기는 위 표 오른쪽 열이 한꺼번에 현실이 된 경우다.
월세 비중 70%, 전세는 지금 어떤 속도로 사라지고 있나
2026년 1~4월 누계로 서울 임대차 거래의 70.0%가 월세였고 전국은 68.5%였다.
전국 월세 비중은 2022년 48.7%, 2024년 58.0%였으니 4년 만에 20%포인트가 올랐다.
6월 통계에서는 서울 비아파트 월세 비중이 78.1%, 서울 아파트가 52%로 아파트마저 처음 절반을 넘겼다.
이 하락은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임차 가구 중 전세 비율은 1995년 67.2%, 2020년 39.9%였다. 25년에 걸친 완만한 감소 위에 최근 4년의 급감이 얹힌 형태다. 장기 요인은 1인 가구 증가다. 소형 주택에 사는 1인 가구는 초기 목돈 부담이 큰 전세보다 월세를 택하는 비율이 높다.
단기 요인은 양쪽이 동시에 전세를 떠난 데 있다.
집주인은 전세사기 이후 세입자 확보가 어렵고 갭투자 규제로 전세금의 쓸모가 줄어 월세 수입을 택했다. 세입자는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감안하면 월세가 낫다고 계산했다.
여기에 전세대출 규제 강화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집주인 실거주가 늘면서 전세 매물 자체가 줄었다.
전세를 월세로 바꾸면 세입자 부담은 얼마나 늘어나나
전환율에 따라 같은 보증금이 월 75만 원이 되기도, 107만 원이 되기도 한다.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전환율 상한은 기준금리에 2%를 더한 값으로 정한다. 기준금리 2.5%인 지금은 4.5%다. 전세 3억을 보증금 1억 월세로 바꾸면 2억이 전환 대상이고, 2억에 4.5%를 곱해 12로 나누면 월 75만 원이다.
문제는 이 상한이 기존 계약 갱신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새 세입자와 맺는 신규 계약은 시세대로 정할 수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2026년 상반기 보증 심사에 적용한 지역별 전월세전환율 평균은 6.4%였고, 같은 2억을 6.4%로 돌리면 월 107만 원이 된다.
전세 3억을 4% 안팎으로 대출받을 때 월 이자는 100만 원 수준이다.
월세와 전세대출 이자가 비슷해진 구간에 이미 들어와 있고,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더하면 월세를 택하는 계산이 성립한다. 다만 전세대출 이자는 2~4%의 정책금융이 받쳐주지만 월세에는 대응하는 지원이 없다. 한국의 월세가 다른 대도시보다 낮게 유지된 배경으로 전세라는 경쟁 상품의 존재가 거론되는 이유다.
전세가 사라진 뒤 월세가 어디까지 오를지는 아직 어떤 기관도 수치로 답하지 않았다.
전세제도 폐지가 아니라 보증금 안전망이 답인 이유
전세는 시장이 만든 관습이라서 폐지할 법안 자체가 없다. 시장은 이미 법 없이 전세를 밀어내고 있고, 그 속도가 4년에 20%포인트다. 남은 문제는 아직 전세로 사는 가구의 보증금을 어떻게 지키느냐다.
김학렬 소장은 전세사기와 역전세의 해법을 전세 퇴출이 아닌 보증금 반환 안전망과 갭투자 차단에서 찾는다.
장보은 교수는 임대인 규제나 전세 부양책보다 보증금 반환을 담보하는 법제 개선에 집중하자고 제안하며, 전자계약이 확산되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발생 시점을 현행 익일에서 앞당기는 방안을 예로 든다.
두 제안의 공통점은 돈을 빌려주는 쪽에 은행이 대출 전에 하는 일, 즉 담보 확인과 회수 장치를 붙여주자는 데 있다. 구조를 바꾸는 대신 구조의 빈칸을 채우는 쪽이다.
세입자 입장에서 실용적인 결론은 하나다.
전세 계약서를 대출 약정서로 취급하는 것이다. 은행이 3억을 내주기 전에 확인하는 항목, 등기부의 선순위 채권, 집값 대비 보증금 비율, 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가 곧 전세 세입자가 계약 전에 챙겨야 할 목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