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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압권의 진짜 의미? 흥미로운 단어 어원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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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정 4 min read --

한양으로 향하던 조선의 젊은 선비에게 ‘관광(觀光)‘은 여행이 아니었다.

그가 걷는 길의 끝에는 임금의 얼굴, 그러니까 ‘나라의 빛’이 있었다. 몇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단어로 배낭을 메고 떠나는 설렘을 표현한다.

지금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단어 다섯 개를 파헤쳐 보면 이렇게 원래 뜻과 지금 뜻이 완전히 갈라진 순간들이 자꾸 튀어나온다.

관광, 압권, 취재, 출신, 그리고 낙방까지 — 조선의 제도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언어의 흔적들이다.

1. ‘관광’은 원래 임금의 얼굴을 보려는 안간힘이었다

관광이라는 말은 중국 고전 『주역(周易)』의 ‘관국지광(觀國之光)’, 즉 ‘나라의 빛을 본다’는 구절에서 나왔다. 여기서 빛(光)은 나라의 문물과 임금의 덕망을 가리켰고, 조선의 선비에게 그 빛을 본다는 건 과거에 급제해 임금을 알현한다는 뜻이었다.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향하는 선비의 옛 그림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향하는 선비의 옛 그림

문제는 그 문이 지독하게 좁았다는 것이다.

기록을 보면 3년에 한 번 열리는 정기 시험 식년시의 문과 합격 정원은 단 33명, 무과는 28명뿐이었다.

조선 502년 동안 식년시와 별시를 합쳐 848회가 열렸는데, 그중 부정기 시험인 별시가 581회로 오히려 정기 시험보다 훨씬 많았을 만큼 시험 자체가 잦아졌지만, 그럴수록 몰려드는 응시자도 함께 불어났다.

평생 여러 차례 낙방하는 쪽이 오히려 흔한 일이었고, 대부분의 선비는 결국 임금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한양까지 오간 여정과 그 길에서 마주친 산천, 풍물뿐이었다.

돌아와* “관광하고 왔습니다"라고 말하던 이 체념 섞인 표현*에,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구식 ‘투어리즘(tourism)‘이 들어오자 ‘나라의 풍물을 본다’는 의미적 토대가 그대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임금의 빛을 보려던 좌절이 여행이라는 설렘으로 뒤집힌 셈인데, 지금 우리가 아는 여행이라는 뜻은 그렇게 자리 잡았다.

2. ‘압권’은 정말로 종이를 눌러서 생긴 말이다

과거 시험 채점이 끝나면 시험관들은 응시자가 쓴 두루마리, 곧 시권(試券)을 성적순으로 쌓았다.

이때 1등, 장원(壯元)의 답안지가 나머지 전부의 맨 위에 얹혔다. 여기서 나온 말이 압권(壓卷) — 말 그대로** ‘두루마리를 누르다’**다. 원래는 1등 답안지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에 가까웠다.

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들
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들

시간이 흐르며 이 말은 비유로 번졌다.

1등 답안지 한 장에 머물지 않고, 여러 사건이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한 대목을 가리키게 됐다.

“그 영화의 마지막 추격 장면이 단연 압권이었다"처럼. 재미있는 건 ‘최고’나 ‘걸작’ 같은 다른 추상어들은 과거 제도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오직 압권만이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짓누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끌고 다닌다. 다른 두루마리를 문자 그대로 깔고 앉은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니, 추상적인 서술어보다 훨씬 생생하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과거 제도가 사라진 지금까지 이 말이 유독 널리 쓰이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3. 취재(取才)와 취재(取材), 발음은 같고 한자는 다르다

기자를 떠올리면 바로 나오는 단어, 취재(取材).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취재’라는 말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자도, 뜻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조선의 **취재(取才)는 ‘재주(才) 있는 인재를 뽑는다(取)’**는 뜻으로, 문과·무과와는 별개로 하급 행정관이나 기술관을 채용하던 특별 시험이었다.

표: 조선시대 취재(取才)와 현대 언론 취재(取材) 비교

구분 취재(取才) — 조선시대 취재(取材) — 현대
한자 취할 취(取), 재주 재(才) 취할 취(取), 재목 재(材)
의미 재주 있는 인재를 뽑는 시험 기사거리를 모으는 활동
유래 조선시대 인재 등용 제도 근대 일본의 언론 용어

지금 쓰는 취재(取材)는 근대 일본에서 신문기자들이 **‘기사 재료(材)를 구하는(取) 행위’**를 가리키던 말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개화기에 신문이라는 매체가 들어오면서 이를 부를 전문 용어가 필요했고, 발음이 같은 이 단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언론계에는 이런 식으로 넘어온 일본어 잔재가 취재 말고도 여럿이다. 경찰서를 돌며 취재하는 ‘사쓰마와리’, 기사의 핵심을 잡는다는 뜻의 ‘야마’ 같은 말들이 여전히 편집국 안에서 관행처럼 쓰인다.

한자 표기만 다른 두 ‘취재’가 한국어 안에 공존하게 된 셈인데, 지금은 언론 용어 쪽이 압도적으로 이겼다.

4. ‘출신’은 합격 증서에 새겨진 자부심이었다

과거에 급제하면 붉은 합격 증서, 홍패(紅牌)를 받았다. 여기엔 합격자가 공식적으로 관리가 되었음을 밝히는 말, ‘출신(出身)‘이 또렷이 적혔다. 서울역사박물관 자료를 보면 이순신 장군의 무과 홍패에도* “무과(武科) … 급제(及第)하여 출신(出身)한 자(者)*“라는 문구가 남아 있다.

출신은 ‘어디서 왔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가 공인한 엘리트로서 ‘세상에 나아갔다’는 영예로운 선언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무과급제 홍패
이순신 장군의 무과급제 홍패

과거 제도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대학 시스템이 물려받았고, 신분 상승의 통로였던 그 욕망은 학벌주의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개인의 능력을 증명하는 기관이 시험장에서 대학으로 옮겨가자 ‘출신’이라는 말도 자연스레 ‘어느 대학을 나왔다’는 뜻으로 넓어졌다.

지금은 ‘서울대 출신’처럼 학교를 가리킬 때 가장 흔히 쓰이지만, ‘삼성 출신’, ‘엔지니어 출신’처럼 배경이나 소속을 나타내는 말로도 폭넓게 쓰인다.

따지고 보면 ‘출신’이라는 한 단어 안에 좁은 문을 통과해야 인정받던 시대의 감각이 그대로 압축돼 있는 셈이다.

시험장이 대학으로, 홍패가 졸업장으로 바뀌었을 뿐 ‘어디를 통과했느냐’로 사람을 설명하는 습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5. ‘탁방’은 사라지고 ‘낙방’만 남았다

낯선 옛말 하나를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다.

‘탁방내다’. ‘뽑다’라는 뜻의 탁(擢)과 ‘합격자 명단’을 뜻하는 방(榜)이 합쳐진 말로, 과거 급제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는 영광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 말은 지금 거의 쓰이지 않는다. 성공을 뜻했던 ‘탁방’의 자리는 ‘합격’이라는 밋밋한 단어가 대신 차지했다.

반대로 ‘방에서 떨어지다’, 곧 낙방(落榜)은 여전히 널리 쓰인다.

이 비대칭은** ‘떨어지다’라는 은유의 힘** 때문일 것이다.

실패의 좌절감은 중립적인 ‘불합격’보다 낙방 쪽이 훨씬 생생하게 옮긴다. 반면 ‘탁방’은 합격이라는 무미건조한 한자어에 밀려날 이유가 딱히 없었는데도 자리를 내줬다.

강렬한 부정적 경험과 엮인 말이 절차적인 성공의 말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건, 언어가 가진 꽤 흥미로운 역설이다.

관광에서 낙방까지, 이렇게 다섯 단어를 따라가 보면 결국 남는 건 하나다.

**제도는 사라져도 그 제도를 겪던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은 말 속에 화석처럼 남는다. **

이 중 어떤 단어의 원래 뜻이 가장 낯설게 느껴지셨는지, 댓글로 들려주시면 좋겠다.

참고자료
  1. 관광(觀光) - sillokwiki (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EA%B4%80%EA%B5%AD%EC%A7%80%EA%B4%91(%E8%A7%80%E5%9C%8B%E4%B9%8B%E5%85%89)
  2. 장원의 답안지를 가리키는 말 '압권(壓卷)' - YTN 사이언스 (https://m.science.ytn.co.kr/view.php?s_mcd=1166&key=201609050601265907)
  3. 무과 합격자와 그들의 합격증 홍패,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 서울역사박물관 (https://museum.seoul.go.kr/chd/board/NR_boardView.do?bbsCd=1059&seq=20210223093337909)
  4. [한자로 보는 문화] 落榜(떨어질 낙/패 방) - 부산일보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00119000112)
#어원#관광#압권#유래#우리말#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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