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 뉴스 알림이 하나 떴다.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법원 인가”. 순간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 다행이다, 이제 끝났구나. 작년 3월에 회생절차 들어갔다는 소식 듣고, 여름엔 매장이 통째로 문 닫았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기사를 몇 개 더 열어보니 분위기가 좀 달랐다. “파산 위기는 넘겼지만”, “과제는 남았다” 같은 문구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었다. 인가가 났다는데 왜 다들 조심스러운 걸까 싶어서 좀 더 파봤다.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인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9월 2일 오후 3시,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재판장 정준영 법원장)에서 홈플러스 관계인집회가 열렸다. 재판부는 표결 직후 회생담보권자조 100% 찬성, 회생채권자조 75.90% 찬성, 주주조 100% 찬성으로 회생계획안이 가결됐다고 선포했고, 가결 즉시 법원이 인가 결정을 내렸다. 채권단 동의를 얻어 인가를 받기까지, 지난해 3월 회생절차에 들어간 지 약 1년 6개월이 걸린 셈이다.
숫자만 보면 압도적 찬성 같지만, 회생채권자조 75.9%라는 수치를 좀 더 들여다보면 얘기가 다르다. 회생채권자조에서는 총 의결권액 약 2조4816억원 가운데 약 1조8836억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법정 가결 요건(의결권 3분의 2 이상 동의)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반대표를 던진 채권자가 6000억원어치 가까이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일부 채권자들은 회생계획안의 실현 가능성 자체에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관리인 자격으로 출석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피해를 본 채권자들에게 깊이 사과한다고 밝히며, 흑자 점포 위주로 사업을 정리하고 일부 점포를 즉시 매각해 채권 변제 재원으로 쓰는 것이 이번 계획안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표결에는 법정 요건이 따로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회생계획안이 통과되려면 담보권자조는 의결권 4/5, 일반 채권자조는 2/3, 주주조는 과반 이상의 동의를 각각 얻어야 한다. 담보권자조와 주주조는 100%로 여유 있게 넘겼지만, 채권자조는 75.9%로 2/3(약 66.7%)를 겨우 10%포인트 남짓 웃도는 수준이었다. 조 하나라도 기준을 못 채웠다면 오늘 인가 자체가 무산될 수 있었다는 뜻이라, 숫자만 보고 넘기기엔 아슬아슬한 결과였다.
‘인가’라는 단어가 실제로 뜻하는 것
여기서부터가 좀 헷갈리는 지점이다. 뉴스 제목만 보면 “인가 = 회생 완료"처럼 읽히는데, 실은 아니다. 회생계획안대로 채무를 이행하는 것을 법원이 허용했다는 의미일 뿐이고, 실제로 변제가 수행되기 시작해야 회생절차가 종료 수순을 밟는다. 즉 오늘 일어난 일은 “숙제를 하겠다는 계획서가 통과됐다"는 것이지, 숙제를 다 했다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 실제로 돈을 갚아나가는 몇 년의 시간이 남아 있고, 그 사이에 계획이 틀어지면 다시 법원이 파산을 선고할 수도 있는 구조다. 이 회사는 이미 한 번 그 문턱까지 가봤다 — 지난해 여름, DIP(회생절차용 긴급운영자금) 조달을 둘러싼 갈등으로 회생절차가 사실상 멈춰섰던 적이 있고, 심지어 회생절차 폐지 결정까지 나왔다가 뒤집힌 이력도 있다. 그러니 “인가났다"는 소식에 곧바로 안심하기 어려운 것도 이해가 간다.
애초에 왜 이 지경까지 왔나 — 세일앤리스백이라는 구조
사실 이 사건에서 제일 궁금했던 건 오늘의 표결 결과보다, 도대체 매출 6조원대 대형마트 체인이 어쩌다 법정관리까지 갔느냐는 쪽이었다. 답을 찾다 보니 결국 “세일앤리스백"이라는 단어로 모인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약 7조원에 인수했다. 이후 10년 동안 반복된 방식이 매장 부동산을 팔고, 그 매장을 다시 임차해서 계속 영업하는 세일앤리스백이었다. 매장은 그대로 운영되니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회사 재무구조는 완전히 달라진다. 자기 건물에서 장사하던 회사가, 팔아버린 건물의 세입자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매달 나가는 임차료가 새로 생긴다.
숫자로 보면 체감이 좀 더 명확해진다. 세일앤리스백 방식으로 영업을 지속하면서 임차료 부담이 늘었고, 2023년 한 해 리스부채 관련 현금유출액만 4516억원에 달했다. 한국신용평가는 홈플러스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2019년 7351억원에서 2023년 3214억원으로 절반 넘게 줄어든 반면, 연간 6000억원 수준의 임차료·이자비용을 감당하기엔 현금창출력이 크게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벌어들이는 돈은 반으로 줄었는데, 나가는 고정비는 그대로거나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여기에 최근엔 조금 더 무거운 질문도 따라붙었다. 홈플러스가 자산 유동화로 약 4조원을 현금화한 뒤에도 결국 회생절차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회생 가능성을 알고도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판매했는지가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금융감독원이 상환 능력 설명에 의문을 제기했고 검찰이 본사를 압수수색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 다만 이 부분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결론을 단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세일앤리스백,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패턴을 보다가 문득 몇 년 전 미국에서 봤던 뉴스가 떠올랐다. 토이저러스 얘기다. 2005년 KKR·베인캐피탈·보나도 리얼티가 토이저러스를 66억달러 규모 차입매수로 인수했는데, 인수 자금 대부분을 회사 자체가 떠안는 구조였다. 사려는 쪽이 빚을 내고, 갚는 건 인수당한 회사 몫이 되는 방식 — 표현은 다르지만 원리는 세일앤리스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가 벌어들이는 현금이 투자·재고·매장 리뉴얼이 아니라 이자 갚는 데로 먼저 빠져나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결국 토이저러스는 2017년 파산을 신청했고 이듬해 미국 내 매장을 전부 정리하며 3만3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 사이 인수 주체였던 사모펀드들은 자문료·경영수수료 명목으로 수백억원대를 이미 회수해간 뒤였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시어스도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물론 홈플러스 사례를 그대로 겹쳐 읽을 순 없다 — 인수 구조도, 규제 환경도, 지금 진행 중인 결말도 다르니까. 다만 “부채를 지고 인수한 뒤 부동산을 유동화해 자금을 회수하고, 회사는 임차료 부담을 떠안는다"는 큰 틀만큼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모양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홈플러스 측은 이 프레임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MBK파트너스는 회생절차 개시 이후 기존 투자금 2조5000억원 전액을 무상소각했고, 지금까지 단 1원의 투자금도 회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회생절차 자체도 법원이 지정한 관리인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지 대주주가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조가 아니라고도 설명했다. DIP 대출을 끌어오는 과정에서 김병주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이 자택을 담보로 내놓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걸 보면, 최소한 이번 급한 불을 끄는 국면에서는 대주주 쪽도 자기 돈을 걸긴 걸었다는 뜻이긴 하다. 다만 이 해명이 “10년간의 세일앤리스백으로 이미 얼마를 회수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라서,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인가는 났는데, 남은 숙제는 뭔가
가장 먼저 눈에 걸리는 건 공익채권이다. 납품업체 미지급금 등을 포함한 5000억원대 공익채권을 갚아야 하는데, 공익채권은 회생계획안 표결 대상이 아니면서도 일반 회생채권보다 우선해서 변제해야 하는 성격을 지닌다. 분할 상환에 동의하지 않은 공익채권자들이 일시 변제를 요구하면 홈플러스의 유동성 부담이 다시 커질 수 있다. 공익채권 분할상환 동의율은 66%대였고, 법원은 이 정도면 인가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바꿔 말하면 남은 34%는 아직 설득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영업 자체를 되살리는 일이다. 홈플러스 측은 자가점포 19곳을 매각하고 M&A를 추진해 채권 변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7월 13일부터는 본사와 전국 67개 대형마트 점포 문을 닫고 영업을 임시 중단했다가, 한 달 뒤인 8월 13일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는 이력도 있다. 매장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사이 떠난 손님이 돌아올지는 별개 문제다.
홈플러스 일반노조는 ‘트레이더 조’ 모델 등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영업 활성화 방안을 조속히 입증해야 한다면서, 고용 보장과 휴직자 복귀 역시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채권자든 노동자든, 계획안이 ‘가결’됐다는 사실보다 그게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더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는 조금 더 배경에 가려져 있는 문제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을 둘러싼 형사 책임 논란과 검찰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점. 이 결과가 어느 방향으로 나든, 홈플러스 회생계획 이행 자체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여지는 남아 있다.
기사 제목만 보면 “고비 넘었다"로 끝나는 이야기 같았는데, 들여다볼수록 오늘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채무 변제가 실제로 몇 년에 걸쳐 진행되고, 공익채권 34%가 여전히 미동의 상태고, 점포 매각과 영업 정상화가 동시에 걸려 있는 상황이라 — 이게 몇 년 뒤에 “홈플러스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로 남을지, 아니면 세일앤리스백으로 시작해 결국 소리 소문 없이 정리 수순으로 이어진 또 하나의 사례로 남을지는, 솔직히 지금 시점에선 나도 잘 모르겠다.
참고자료
-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60768
-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60753
- https://www.khan.co.kr/article/202609022134015/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9020184g
- https://view.asiae.co.kr/article/2026090218263128199
- https://edaily.co.kr/News/Read?mediaCodeNo=257&newsId=04677286645576184
- https://www.bloter.net/news/articleView.html?idxno=672524
- https://namu.wiki/w/%ED%99%88%ED%94%8C%EB%9F%AC%EC%8A%A4%20%EB%B2%95%EC%9D%B8%ED%9A%8C%EC%83%9D%20%EC%A0%88%EC%B0%A8%20%EC%8B%A0%EC%B2%AD%20%EC%82%AC%EA%B1%B4
- https://www.fnnews.com/news/202605151939040811
-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061640011
- https://www.bloter.net/news/articleView.html?idxno=632558
- https://www.sj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86494
- https://inthesetimes.com/article/how-private-equity-killed-toys-r-us
- https://prospect.org/2018/03/20/private-equity-looting-r-us/
- https://www.thenation.com/article/archive/sears-toys-r-us-hedge-funds-bankruptcy-retail-work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