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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위기, 일본은행이 금리를 못 올리는 이유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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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엔화 뱅크런 얘기를 정리해서 글을 하나 올렸다. 일본은행 국채 평가손실 45조엔, 생명보험사 15조엔 같은 숫자를 SVB 사태랑 나란히 놓고, 결론은 “예금 인출 행렬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 진짜 위험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쪽이다"였다. 그때는 그걸로 정리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일본 경제 전반을 파고든 다른 자료를 하나 더 붙잡고 읽다가, 뭔가 걸리는 지점이 생겼다. 국채 손실 얘기랑 엔저 얘기를 따로따로 취급했는데, 사실 이 둘이 완전히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일본 제조업이 해외로 빠져나간 얘기, 초저금리가 고착된 얘기, 다카이치 내각이 재정 준칙을 손보겠다고 한 얘기 — 이게 다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일본은행은 왜 금리를 올리겠다고 몇 번이나 예고해놓고도 실제로는 못 움직이고 있는가. 그 답을 좇다 보니 국채 손실과 캐리 트레이드가 사실 같은 사건의 두 얼굴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정리됐다.

엔화는 왜 안전자산 자리에서 밀려났나

일단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부터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엔화가 오랫동안 안전자산으로 불렸던 건 금리가 높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자를 거의 안 줘도 전 세계가 엔화를 쥐고 싶어했다. 이유는 단순한데, 20세기 일본이 철강이든 가전이든 반도체든 세계에서 제일 잘 만들어 파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물건을 팔면 외화가 도쿄로 밀려들었고, 정작 국내에서 유통되는 엔화는 상대적으로 귀했다. 품귀 현상이 난 물건 가격이 오르듯, 엔화 값도 자연스럽게 단단했다.

그런데 산업의 문법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얘기가 꼬이기 시작했다. 도면대로 오차 없이 깎아내는 장인정신으로 1등을 해봤던 조직일수록, 실패를 전제로 빠르게 엎고 다시 짜는 속도전 앞에서 오히려 굳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설비, 인사 평가, 하청 공급망까지 전부 과거의 승리 공식에 맞춰져 있으니 방향을 트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을 거다. 여기에 결정타가 하나 더 있다. 오래 이어진 엔고 시절 인건비를 못 버틴 일본 기업들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아예 생산 거점을 지어버렸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일본 대기업들은 지금도 글로벌 시장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데, 그 돈이 일본 본토로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해외에서 만들어서 해외에서 파니까 그렇다. 심지어 그 해외 공장을 짓는 밑천 자체가 과거에 쌓아둔 비축 외화를 헐어서 나온 거였다는 대목에서, 외화가 들어오는 문은 좁아지고 나가는 문만 넓어지는 구조가 완성됐다.

일본 수출항의 컨테이너 크레인, 해질녘 산업 풍경
일본 수출항의 컨테이너 크레인, 해질녘 산업 풍경

금리를 올리면 왜 국채와 캐리 트레이드가 동시에 흔들리나

바깥벌이가 예전 같지 않으니 일본 정부는 내수라도 데우려고 초저금리를 오래 고수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하나의 정책이 두 갈래로 갈라져 나가는 지점이 생긴다. 원자재와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저금리로 엔화가 약해지면, 그 즉시 수입 물가가 튀어 오른다. 안살림을 데우려고 불을 지폈는데 그 불씨가 장바구니를 태우는 모순인 셈이다. 동시에 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미국이나 유럽의 고금리 자산에 넣는 엔캐리 트레이드 통로도 활짝 열렸다. 금리는 단순한 대출 이자율이 아니라, 그 나라의 돈이 안으로 도는지 밖으로 새는지를 가르는 수문 역할을 한다.

이제 반대로 일본은행이 금리를 실제로 올린다고 해보자. 이론상으로는 엔화가 강해지면서 문제가 풀려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개의 다른 파열음이 동시에 터진다. 하나는 채권 가격이다. 금리가 오르면 이미 발행돼 있는 저금리 국채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행 자신부터 2025회계연도 기준 보유 국채 평가손실이 45조엔을 넘겼고, 시중은행과 생명보험사 쪽 손실도 각각 조 단위로 쌓여 있는 상태다. 다른 하나는 캐리 트레이드다. 엔화가 강해지는 순간 싼 이자로 돈을 빌려온 투자자들은 이자 부담과 환차손을 동시에 떠안게 되고, 서둘러 엔화를 되사서 빚을 갚으려 든다. 그 과정에서 보유하고 있던 해외 자산을 팔아치우는데, 이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게 무섭다. 2024년 8월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렸을 때 니케이225가 하루 만에 12.4% 급락했고 코스피도 8.77% 밀렸다. 2025년 12월에는 총재가 금리 인상을 예고만 했는데도 니케이가 1.89% 빠지고 뉴욕 다우지수까지 흔들렸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금리 인상이라는 스위치 하나가 채권 시장과 외환·주식 시장 두 방향으로 동시에 충격파를 보낸다. 하나를 잠재우려고 누른 버튼이 다른 하나를 건드리는 구조다. *

국채 손실은 뱅크런이 아니지만, 다카이치 재정과 만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번 글에서 짚었듯, 이 국채 손실이 곧바로 은행 파산으로 이어질 거라는 시나리오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일본 금융청은 이 손실이 미국 SVB 사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선을 그었는데, 근거가 꽤 설득력 있다. SVB는 스타트업·벤처캐피털 예금이 몰린 극도로 쏠린 구조였던 반면 일본 지방은행은 가계 예금 중심이라 하루아침에 인출 행렬이 생기기 어렵고, 회계상으로도 만기보유증권(HTM)으로 분류된 국채는 시가 손실을 재무제표에 즉시 반영할 의무가 없다. 메가뱅크 몇 곳은 국채 평가손실이 이익 예상치의 10%도 안 된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문제는 이 손실이 멈춰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자라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일본 30년물 국채금리가 30년 만에 3%에 근접했다는 소식이 나왔는데, 이게 단순히 시장 변동성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다카이치 내각이 지난달 내놓은 경제재정운영 기본방침 초안에서 재정건전성 관련 문구를 아예 뺐고, 2027회계연도 이후 연간 10조엔 규모의 확장재정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방침도 함께 나왔다. 기초재정수지 흑자 목표를 연 단위에서 다년간 지표로 바꾸고, 추경 편성 관행 자체를 없애겠다고도 했다. 재정 건전화도 병행하겠다는 인터뷰가 뒤따르긴 했지만, 시장이 먼저 반응한 건 지출 확대 쪽 신호였던 것 같다. 국채를 계속 더 찍어내야 하는 나라에서, 그 나라 중앙은행이 금리까지 올리기 시작하면 국채 이자 부담 자체가 재정을 더 옥죄는 셈이 된다. 국채 손실이 SVB식 뱅크런으로 번질 위험은 낮더라도, 재정 확장과 겹치면서 국채 시장 자체의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는 쪽으로는 확실히 무게가 실리는 그림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다들 잘 안 짚는 부분이 있다. 정부가 돈을 풀겠다고 하는데도 정작 일본 국민과 기업들은 지갑을 더 꽉 닫고 있다는 점이다. 40년 주기로 대지진이 온다는 인식이 워낙 깊게 박혀 있어서, 정부가 마른 논에 물을 대도 각자 항아리에 현금을 쟁여두는 쪽을 택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오사카나 긴자 같은 번화가 유동인구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는 대목도 그렇고. 재정을 풀어도 돈이 안 돈다면, 확장재정의 효과는 떨어지고 국채 부담만 남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돈을 풀어도 성장동력이 잘 안 보인다는 문제

여기서 하나 더 걸리는 대목이 있다. 다카이치 내각이 재정 준칙까지 손보면서 돈을 풀겠다는 곳이 어디냐는 거다. 대표적으로 차세대 반도체 국책사업인 라피더스에 2.9조엔을 투입해 2027년 2나노 양산을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정작 지원을 결정하는 주무 부처인 경제산업성 내부에서조차 성공 확률을 20~30%로 본다는 얘기가 나왔다. 실적이 전무한 회사가 TSMC·삼성·SK하이닉스가 버티고 있는 시장에서 저가 공세로 치킨 게임을 하겠다는 그림인데, 반도체는 가격보다 성능과 수율이 관건이라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다. ‘피지컬 AI’ 국책사업으로 밀고 있는 노에트라 쪽도 비슷하다. 향후 5년간 1조엔을 투입한다는데, 여기 참여한 소프트뱅크·NEC·혼다·소니는 통신·엔터테인먼트 회사거나 최근 전기차 개발을 접은 회사들이라, 정작 피지컬 AI 기술과는 거리가 있는 조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라인야후 사태도 겹친다. 보안 유출을 이유로 네이버와의 기술 협력을 끊고 라인을 가져간 지 얼마 안 돼, 국가 방위·경제 안보 관련 기밀 데이터를 미국 민간 클라우드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자체 데이터 처리 역량과 보안 기술의 한계 때문이라는데, 데이터 주권을 되찾겠다며 시작한 일이 오히려 다른 나라 클라우드에 더 의존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왜 이 얘기를 굳이 꺼내냐면, 지금 일본이 처한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가장 깔끔한 해법은 사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실물경제 자체를 다시 키우는 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성장동력에 걸어야 할 국책사업들이 이런 상태라면, 돈을 푼다고 해서 곳간이 다시 채워질 거라고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본은행이 그래서 못 움직이는 이유

여기까지 오면 왜 일본은행 총재가 그렇게 여러 차례 금리 인상을 경고했는데도 시장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는지 좀 이해가 간다. 시장에서 9월 회의 25bp 추가 인상 확률을 87%까지 올려 잡았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구조 자체가 풀리는 건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것 같다. 저금리를 유지하면 엔저와 수입 물가, 캐리 트레이드 유출, 비축 외화 소진이 계속 맞물려 돌아간다. 그렇다고 금리를 확 올리면 국채 평가손실이 더 커지고, 캐리 트레이드가 한꺼번에 청산되면서 아시아 증시까지 흔들리고, 안 그래도 확장재정을 하겠다는 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까지 늘어난다. 어느 쪽을 눌러도 다른 쪽에서 문제가 커지는 구조라, 이걸 딜레마라고 부르는 게 딱 맞는 것 같다.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구두 경고 수준을 넘어 일본 정부와 직접 시장 공조 개입에 나섰다는 얘기도 이 맥락에서 보면 다르게 읽힌다. 미국 국채를 세계에서 제일 많이 사주는 나라의 통화가 흔들리면, 그 여파가 미국 국채 시장으로도 번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거다. 다만 말로 붙잡아둔다고 구조적인 문제 자체가 풀리는 건 아니라서, 시장 안팎에서는 구두 개입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지점까지 온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이 이 얘기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

솔직히 처음 이 자료들을 읽을 땐 남의 나라 통화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화와 엔화의 상관계수가 2025년 하반기 0.94까지 올랐다는 분석을 보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과 일본을 별개 시장이 아니라 하나의 아시아 자산군으로 묶어서 본다는 뜻이라서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이 7월 초 1559원까지 오르면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수출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 법인에 쌓아두고 있었던 게 한 원인이었는데, 이후 SK하이닉스가 미국 ADR을 발행하고 일부 기업이 달러 환류 속도를 조절하면서 1400원대로 내려온 전례가 있다. 지금 기초 체력에 맞는 환율 자리는 대략 1400원대이고, 1550원 근처는 이란 사태 같은 특수 변수가 겹쳤을 때 얘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몇 가지를 계속 눈여겨볼 생각이다. 일본은행이 9월 이후 실제로 금리를 올리는지, 아니면 또 예고만 하고 미루는지. 30년물 국채금리가 3%를 넘어서는지, 그리고 다카이치 내각이 말한 재정 확장이 정말 연 10조엔 규모로 실행되는지. 엔캐리 청산이 다시 한번 니케이·코스피 급락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되는지. 그리고 우리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가 꼬박꼬박 국내로 들어오는지도. 이 중 하나만 어긋나도 그림이 꽤 달라질 수 있어서, 어느 하나로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좀 이른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은

이번 글을 쓰면서 느낀 건, 국채 손실이든 엔저든 캐리 트레이드든 따로 떼어놓고 보면 각각 그럴듯한 설명이 붙지만, 붙여놓고 보면 결국 하나의 문 앞에 서 있다는 거였다. 일본은행이 어느 쪽으로 문을 열어도 다른 쪽에서 바람이 들이친다. 이게 조만간 확실하게 결론이 날 문제인지, 아니면 몇 년째 이런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텨질 문제인지는 나도 확신을 못 하겠다. 다만 적어도 “엔화 뱅크런이 오느냐 안 오느냐"라는 질문 자체가 이 상황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만은 이번에 좀 더 분명해진 것 같다.

참고자료
  1.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55207
  2.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314226i
  3. https://kr.investing.com/news/economy-news/article-2000432
  4. https://namu.wiki/w/%EB%8B%A4%EC%B9%B4%EC%9D%B4%EC%B9%98%20%EC%82%AC%EB%82%98%EC%97%90/2026%EB%85%84
  5. https://ko.tradingeconomics.com/japan/interest-rate/news/463427
  6.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757388
  7. https://finance.yahoo.com/economy/policy/articles/96-billion-japan-bond-losses-190236239.html
  8. https://www.risk.net/risk-quantum/7963190/jgb-sell-off-drives-late-2025-record-markdowns-at-japanese-banks
  9. https://www.japantimes.co.jp/business/2026/05/25/companies/japan-bond-yield-surge-regional-banks-gap/
  10. https://www.morningstar.com/markets/how-japans-bond-selloff-impacts-banks-insurers
  11. https://kbthink.com/investment/issues/yen-carry-trade-unwind.html
  12. https://namu.wiki/w/2025-2026%EB%85%84%20%EC%9B%90%ED%99%94%20%EA%B3%A0%ED%99%98%EC%9C%A8%20%EC%82%AC%ED%83%9C
  13. https://ko.tradingeconomics.com/japan/currency
  14. https://eiec.kdi.re.kr/policy/domesticView.do?ac=0000186430
  15.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60608000460
#boj-dilemma#yen-crisis#jgb-yield-loss#carry-trade-unwind#takaichi-fiscal-policy#japan-current-account#won-yen-correlation#financial-stability-risk#japan-manufacturing-hollowing#boj-rate-h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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